질문이 결여된 사회
뉘른베르크에 사는 친구 덕분에 세계여행 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이 독일이었다. 이 시간 동안 베를린의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부터 뉘른베르크 '나치 전당대회장'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순간들을 마주했다.(나치 전범들을 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 현대 의학교육의 핵심 윤리가 되는 뉘른베르크 강령의 그 뉘른베르크가 맞다)
독일 곳곳에서 그 순간들을 마주할 때면 인간의 광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치 전당대회장에 올라섰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선명하다. 광기의 선두자인 ‘히틀러’가 내 두 발과 같은 곳에 서서, 내 두 눈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다. 그리고 이 참혹한 공포는 참혹한 질문으로 변했다. "어떻게 이토록 끔찍한 만행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지만 뚜렷한 대답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던 찰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이 책에서 드디어 대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히틀러의 오른팔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효율적'으로 학살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 그는 나치가 전쟁에서 패하자 아르헨티나로 망명했다. 하지만 1960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의해 체포되었고 예루살렘의 ‘정의의 집’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그리고 이 재판을 방청한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쓴 책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책에서 아렌트는 이야기한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는 사유하지 않는 자. 즉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평범한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 특히 책의 부제목에서 그녀의 주장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하지만 그녀를 통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저지른 반인류적 만행이 괴물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질문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과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 즉 정치는 좌빨과 수구꼴통에 어른들은 돈과 권력에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학부모들은 SKY에 목매다는 상황이 '질문 없는 이상주의자' 아이히만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국가도 학생도 학부모도 모두들 '어떻게' 하면 챗바퀴를 더 빨리 돌리는가에만 집중하지 그 누구도 결코, '왜' 돌리는지는 질문하지 않는다. 아니 질문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자고 나란 우리는 질문은 나쁜 것이라고 배웠으니. 그리고 현재 행해지는 이러한 공교육을 스탠퍼드대 부학장(폴 킴 교수)은 '범죄'라고 칭한다.
“2~5세 사이에 4~5만 개의 질문을 하는데, 아이가 초,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질문 수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질문을 전혀 안 해요. 왜 그렇겠어요? 주입식 교육이 아이를 망쳐놓고, 질문하는 문화가 아닌 데에서 살게 하기 때문이에요. 강하게 표현하면 범죄나 마찬가지예요. 모든 나라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나라에서 현재 행하는 공교육을 저는 범죄라고 봅니다. 사람을 저렇게 질문하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로 키우니, 어떻게 보면 독재 국가를 유지하는 데에 아주 적절한 교육 방법이죠”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를 다닌 사람으로서 이는 명백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범죄행위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게다가 학교와 가정에서 이 범죄행위를 열심히 실행한다면 그것이 범죄자와 무엇이 다르며, 유대인 대학살을 주도한 아이히만과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렌트는 자신이 바라본 아이히만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이 참혹한 이야기를 끝맺었다. “피고는 자신이 결코 사악한 동기에서 행동한 것이 결코 아니고, 누구를 죽일 어떠한 의도도 갖지 않았으며, 결코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는 없었으며, 또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이 문장에서 피고(=아이히만)를 ‘국가’와 ‘교육’과 ‘부모’로 바꾸고, 유대인을 ‘국민’과 ‘학생’과 ‘자녀’로 바꾸었을 때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무지는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하지만 모르는데도 '배우려 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으며, 사고하지 않는다'면 그건 범죄라고 생각한다.
나치는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고, 대한민국은 782만 명의 미래를 학살하고 있다. 진심으로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사유하십니까?”
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저자 '한나 아렌트'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평론가, 철학자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유대인이었기에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등을 집필했습니다.
2. 폴 킴 교수님은 스탠퍼드 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이자 최고 기술경영자입니다. 폴 킴 교수님의 이야기는 저서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에서 가져온 것을 밝힙니다.
3. 대한민국 782만 명(6~21세)은 통계청의 국가통계지표 인 '2020년 학령인구'에서 발췌했습니다.
4. 청소년 (9세~24세)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입니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10만 명당 자살 7.7명 교통사고 3.4명 암 2.7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5. 국책연구기관인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6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성적이 40.7%로 청소년의 자살 이유 중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p.s '질문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라면 그 누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