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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만나다.

그토록 위풍당당한 연주자가 수줍은 20대 청년이 된다는 것

by 케빈


드뷔시의 Claire de lune 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고 곧 푹 빠졌다. 그 유명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물론이고 수많은 곡들에서 타 연주자들에게 없는 엄청난 섬세함이 느껴졌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곡을 들을 때면 '공연장에 가서 직접 들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행복한 상상 을 했다. 그러다 지난 9월, 드디어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콘서트가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만반의 준비를 거쳐 예매 창에 들어갔다. 쾌적한 속도를 위해 피시방은 물론이고 예매용 시계와 다른 콘서트로 여러 번 예매 연습도 했다. 하지만 대구 공연은 예매 오픈이 시작되고 3초 만에 매진되었고 서울 공연은 예매 창 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본 예매에 실패해서 양도 표를 살펴보니 말도 안 되는 프리미엄이 붙어 (당시 2,3배 가격에 거래가 된 걸로 기억한다) '이럴 거면 해외 가서 보고 말지' 라며 망연자실(?) 하고 있었다. 그 공허한 마음으로 한국 공연이 끝나고 어디로 가는지 살펴보는데 눈에 낯익은 도시가 들어오는 것이다. NOV 11 2021. Recital PRINZREGENTENTHEATER MÜNCHEN 딱 마침 독일에 지낼 시점에, 옆동네 뮌헨에서 리사이틀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거의 신의 계시였다. 조성진 피아니스트를 만나라는.


아직 한국에 있을 때라 독일 가족들에게 표를 대신 구매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다음날 "우리가 너한테 주는 생일선물이야!"라는 문장과 함께 티켓사진이 함께 보내졌다. (마침 또 생일이 9월 말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너무 행복했고 독일에 와서도 공연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11월 11일 가족들과 다 함께 공연장에 갔다.


Seong-jin Cho in München


입구에서 백신 접종 체크하고 표 검사 후 입장할 수 있었다. 한국분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다. 클래식계의 BTS라 불릴 만큼 그의 인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이날 관객들 중 30%는 한국인인 것 같았는데 아마 독일에서 음악 전공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공연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비치되어 있었다. 유럽 영화 보면 큰 공간에서 서로 간단히 안부도 나누고 칵테일도 마시고 그런 곳 말이다. 우리는 Aperol Spritz라는 칵테일을 마셨고 공연은 8시 정시에 시작되었다. (맥주의 민족답게 인터미션 때도 맥주를 마실 수 있다)


Aperol Spritz


조명이 어두워지고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문을 열고 나와 차분하되 조금 빠른 걸음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를 보고 있으니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부터 수백, 수천 명의 관객 앞에 앉아 연주하기 직전까지 피아니스트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이날 공연은 크게 3부로 나누어졌는데 가장 기대했고 정말 엄청났던 곡은 Chopin: Scherzo No. 2 in B Flat Minor, Op. 31 이었다. 삶과 죽음, 기쁨과 분노, 굳셈과 부드러움, 섬세함과 강력함이 공존하는듯한 곡 이었다. 마치 혼연일체 渾然一體라는 단어의 정의를 시각으로 구현한 것 같았다. 연주자가 피아노를 넘어서지 않고 피아노 또한 연주자를 압도하는 것이 아닌, 연주자가 지닌 섬세한 열 손가락들이 피아노가 가진 공명한 소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낼 때만이 만들 수 있는 소리 말이다.


*스케르초 :낭만파에서는 극적 ·해학적인 성격을 띤 기교적인 피아노곡을 간혹 스케르초라고 하며, 빠른 4분의 3박자의 세 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다. 쇼팽과 브람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쇼팽은 이 두 번째 스케르초에서 당시 사랑했던 여인에게 구혼했다가 상대 집안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 슬픔과 분노를 녹여냈다고 전해진다
박수와 환호


공연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간이 가진 인지성, 학습성 그리고 표현력은 어디까지인가?' '어떻게 이토록 오차 없이 정확한 시점, 정확한 지점에, 정확한 힘으로 건반을 누를 수 있는가?' 특히 자신의 삶 그 자체를 '헌신 獻身' 하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날 지불한 티켓 값 55 euro는, 연주자가 평생을 바쳐온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가치의 표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된 공연이 끝나고 앵콜 곡으로 3곡을 연주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다 공연장 뒤편에 있는 출구로 나오는 그를 만났다. 다가가서 싸인과 사진 촬영을 (조성진 씨를 눈앞에서 만나다니!) 요청했는데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실제로 만난 그는 아담한 체구에 등이 살짝 굽은듯한 느낌이었다. 건반 위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어야 하는 연주자의 숙명인 것일까? 피아노 앞에서 그토록 위풍당당한 연주자가 무대 뒤에서는 수줍은 많은 20대 청년이 된다는 사실에 신비로웠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토록 투명하고, 섬세하고, 찬란하며 위엄 있는 연주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그저 영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순간을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공연 곡

-Janáček: 1. X. 1905 für Klavier „Sonata“

-Ravel: „Gaspard de la nuit“

-Chopin: Scherzo Nr. 1 h-moll op. 20, Nr. 2 b-moll op. 31, Nr. 3 cis-moll op. 39 und Nr. 4 E-Dur op. 54


앵콜 곡

-Schumann: Waldszenen, Op. 82 - 3. Einsame Blumen

-Chopin Valse brillante in E flat major


스케르초

- ‘해학 ·희롱’을 뜻하는 말로 음악에서는 악곡이나 악장 이름으로서 다음 3가지로 사용된다. ① 교향곡 ·현악4중주곡의 제3악장에 쓰이며, 템포가 빠른 3박자, 격렬한 리듬, 그리고 기분의 급격한 변화 등이 그 특징이다. 중간에 트리오(중간부)를 포함한 세도막형식을 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스케르초는 하이든이 미뉴에트 대신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베토벤도 이를 자주 썼다. 이 후 브람스와 브루크너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다. ② 낭만파에서는 극적 ·해학적인 성격을 띤 기교적인 피아노곡을 간혹 스케르초라고 하며, 빠른 4분의 3박자의 세도막형식으로 되어 있다. 쇼팽과 브람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③ 1600년을 전후하여 유행하였던 가벼운 오락적인 성악곡에 스케르초를 붙였다. 이를테면, 몬테베르디(1567∼1643)의 작품 등이 이에 해당된다. 스케르찬도라는 형용사는 해학적인 연주를 지시하는 표현기호로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스케르초 [scherzo]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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