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스터 샷까지 맞았는데 오미크론에 걸렸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by 케빈
2022.01.06(수) PCR 검사를 받아 음성으로 확인돼 2022.01.08(토) 인천공항에 귀국했고, 2022.01.09(일) 오전 오미크론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20대 남성으로 21년 7월, 9월 한국에서 화이자 1,2차를 12월 독일에서 화이자 부스터 샷을 접종했습니다.


2022.01.05(수) 오후 2시, 독일 뮌헨에서 PCR 검사

2022.01.06(목) 오후 1시, PCR 음성 결과 통보

2022.01.07(금) 오후 6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한국행 비행기

2022.01.08(토) 오후 3시 인천공항에 도착 후 검역 무증상 통과

2022.01.09(일) 오전 11시 도보로 보건소로 이동후 PCR 검사

2022.01.10(월) 오전 7시 양성 판정



수요일 오후 1시, 독일 뮌헨에서 PCR 검사를 받았다. 24시간이 지난 다음날 '음성' 결과서를 받을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 뉘른베르크에서 출발해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 중 약간의 피곤함이 있었지만 앞 줄에 앉은 아기가 울어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생긴 피곤함으로 여겼다. 한국행 비행기 탑승 전 진행한 열체크 그리고 인천공항에 도착 후 검역도 아무 이상 없이 통과했다.


국내 백신 접종 완료자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한 후 KTX를 탑승했다. KTX를 타면서 몸살 기운이 조금 올라왔는데 이전에도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거나 피로도가 쌓이면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기에, 긴 비행으로 생긴 증상으로 여기고 큰 염려를 하지 않았다. 이후 동대구역에 도착해 지하철로 갈아타 자택으로 이동했다. 2번의 비행과 1번의 고속 철도, 2번의 긴 지하철을 탄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보건소에 연락하니 바로 PCR 검사를 받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 도보로 왕복 1시간가량 걸어서 보건소에 도착해서 검사를 받았다. 줄이 엄청나게 길어서 '오늘 안에 검사받을 수 있을까?' 했는데 30~40분 기다리니깐 차례가 되었다. 검사를 받고 와서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잤다. 보건소에 갈 때부터 조금씩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기침이 시작되고 자기 직전에는 몸에 열도 있었지만, 확진자를 만난 적도 없고 부스터 샷까지 맞았으니 그냥 컨디션 회복이 좀 늦어지는구나로 생각했다.


알람 소리를 들었는데 몸살이 많이 심해져서 더 누워있었다. 갑자기 가족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어제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떴다는 것이다. 오미크론으로 판정돼 생활치료소에서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고 전해줬다. 곧이어 상담원 분이 전화가 와서 방문한 장소가 어디인지, 현재 증상은 어떤지 물어봤고 오미크론 확진자라서 4시 이전에 경주 생활 치료소로 이송될 것이니 그전에 가져갈 옷들을 챙기라고 알려줬다.


처음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내가 코로나에 걸리다니, 그 뉴스로만 보던 COVID-19에 걸리다니, 한국에서 2차 접종하고 독일에서 부스터까지 맞았는데 코로나 걸릴 수가 있어?'라며 어이없어했다. 한편으로는 단순한 컨디션 난조가 아니라 코로나라는 사실을 알게 돼 모든 게 선명해져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확진 판정을 받은 후부터 증상들이 속속 발현되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고, 기침이 잦았고, 코를 엄청 풀었다. 바닥에 누워있으면서 이송팀을 기다렸다.


전날 푼 짐을 그대로 다시 싸면 되었다. 손빨래를 해야 한다길래 입을 수 있는 옷과 속옷을 다 챙겼다. 생존 맞춤 키트인 책, 독서대, 스탠드,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을 챙겼다. 이것만 가지고 다니면 전 세계 어디든 인터넷만 되면 한국이든, 독일이든 바다 앞 휴양지든,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자가격리 시설이든 나만의 오피스가 되었다.


3시 즈음 이송팀이 밑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와 짐을 챙겨서 내려갔다. 처음에는 전문의 분들이 오는 줄 알았는데 증상이 경미해서 그런지 뉴스에서 보는 방호복과 고글, 장갑까지 모두 착용한 구급차 운전자 분만 오셨다. 근처에 다른 확진자 분도 계셔서 함께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구급차를 타면서 한국의 도로문화가 좀 갸우뚱했다. 독일에서 구급차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는 순간 모든 차는 도로를 터주고 응급차량이 지나갈 때까지 정차해있다. 벌금이 강해서 혹은 문화가 잘 정착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정말 칼같이 지켰다. 반면 내가 탄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고 가도 차량도, 보행자도 '내 갈길은 가야 하니 구급차가 알아서 비켜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까지는 아니었지만 정말 1분 1초가 급박한 환자가 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법으로 규정해서라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대구스타디움에 도착한 후 버스에 올라탔다. 5분에 한대꼴로 다른 구급차들이 속속히 도착했다. 1시간가량을 버스에서 기다리니 마지막 분까지 총 19명이 탑승했다. 이후 1시간 반 정도 이동 후 현대차 경주 연수원에 도착했다.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남녀노소 모두 모였다. 도착해서 바로 방을 배정받았고 (1인 1실인 줄 알았는데 2인 1실이다) 방 앞에 샴푸부터 이불까지 모든 물품들이 구비되어있었다. 현대차 시설이라서 그런지 확실히 시설은 좋다. 확진 판정받기 전날부터 열이 올랐는데 도착하고 바로 열을 재보니 38.2도까지 올랐다. 이를 본 의료진이 바로 연락 와서 타이레놀 2알을 당장 먹으라고 했다. 2시간 뒤 재 측정해서 알려 돌라 했는데 다행히 36도로 내려갔다. 기침, 가래, 몸살약 4종류가 제공되었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고 9시 즈음 잤다.


약 먹고 쉬니깐 다음날 컨디션은 금방 올라왔다. 다만 가래 섞인 기침이 계속해서 나왔고, 초반 이틀 정도는 밤에 잘 때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점점 코가 막히더니 3,4일 차에는 미각과 후각이 점점 상실돼 평소의 20%만 사용되는듯했지만 현재는 맛과 향을 다시 느낄 수 있다. 퇴소를 하루 앞둔 지금 특이 증상은 없지만 여전히 가래가 계속해서 나오고, 폐에 무언가 끼여있는 듯한 느낌이다. (입소 다음날 아침 바로 흉부 CT를 촬영하기에 폐에 직접적인 손상은 없는 것 같다)


10일 동안 뭐하면서 생활을 하실지 궁금하실 건데 다행히 몸 상태가 금방 호전돼 해야 하는 것들 하면서 시간 보냈다. 이미 해외 입국자 10일 격리를 준비하고 와서 계획한 것들 하나씩 차근차근 진행했다. 학교 지원서도 작성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할 것이 있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더라도 한 공간에 갇혀있다 보니 6,7일 차가 고비인 것 같다. 그래도 천만다행으로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햇빛이 잘 보인다. 8시, 12시, 18시에 꼬박꼬박 챙겨주는 도시락을 먹으며 10일간 보냈다.


돌아보면 정말 잘못되면 끝도 없이 잘못될 수 있었다. 독일에서 확진 판정받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비행기를 못 타게 되니깐 수수료를 물고 다시 끊어야 하고, 비자도 만료돼 대사관에 전화해서 문의해야 하고, 외국 보험도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특별히 치료는 없지만 약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지) 또 10일 격리를 다시 해야 하면... 확진 판정이 운이 좋다고 절대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면을 보려 한다면 그렇다.


새로운 국면에 맞이했다고 본다. 부스터 샷까지 접종한 20대 남성이 원인을 모르는 돌파 감염이 된 건 여러 가지를 시사해주는 것 같다.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는 건 시간문제이고, 현재의 백신으로는 돌파 감염을 막을 수 없고, 연령도 큰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막대한 의료진 투입과 시설 준비, 숙소에서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의료폐기물, 모든 경제생활이 멈추어버려 일상에 미치는 지장까지 이 모든 수를 고려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모든 의료진과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영남권교육시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