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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빈 Dec 21. 2019

우리가 스스로 '위대해'져야 하는 이유

<바티칸시국-피에타> 작품은 결코 작가의 수준을 넘을수 없다

세계를 여행 다니면서, 운이 좋게도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걸작들을 보고 있자면, 선의 매끄러움, 행동의 자연스러움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서 '과연 인간이 조각한 것이 맞을까? 우리는 단지 그 돌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모든 대리석 안에 이미 조각상은 깃들어 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그 형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지금껏 삶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쌓여, '나의 인생에 더해진다'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이 일련의 축적된 경험들이, 인생이라는 대리석의 불 필요한 부분을 제거해주고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평소 '삶을 사는 것' '조각을 하는 것' 이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듯 인생을 살고, 마라톤을 하듯 인생을 살아라는 뜻을 이해하려면, 직접 춤을 쳐보고 마라톤을 해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삶과 조각의 연관성을 직접 이해해보고 싶어, 조각 중의 조각 ‘피에타’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렇게 드디어 피에타가 있는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피에타는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에 위치해있다.)


로마를 떠나는 날 방문하려 했는데, 이날 마침 교황이 나오는 날이어서, 성당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려고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1시 이후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정을 조금 무리해서 방문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그렇게 산 건너 물 건너와서도 못 볼뻔한 피에타를 마주한 순간 '환희의 울컥함'을 느꼈다. 위엄 있으면서 애처롭게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피에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한’ 작품이었다.


감정, 겸손, 돌아봄

내가 이 피에타를 감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감정’

 사실 피에타도 한낱 죽은 돌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돌에서는 감정이 느껴졌다. 피부의 보드라움, 핏줄의 선명함, 마리아의 애처로운 미소까지. 그리고 이 감정들은, '어느 차원을 넘은 위대한 작품'만이 품을 수 있다는 게 눈에 비치는 피에타 통해 느껴졌다.


‘겸손’  

500년도 더 지난 당시에도 피에타는 엄청난 걸작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이 없으니 , 사람들 스스로 작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걸 24살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그렇게 이 피에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신은 이 세상을 만들었음에도 그 어디에도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돌을 조각했을 뿐인데 이렇게 자만하다니”라고 후회하며 그 이후에 어떤 작품에도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최고는 절대 자신의 입으로 최고라고 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한 최고라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돌아봄’ 

미켈란젤로는 24살에 이 걸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24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24살의 나이에 이 걸작을 만들 수 있는지, 5년 후 24살의 나는 과연 어떤 조각을 하고 있을지, 24살의 나는 19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등 나의 미래에 대한 질문과 현재의 나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느낀 건 이것들이 아니다.  


“왜 스스로 위대해져야 하는가”

피에타를 보기 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걸작 최후의 심판을 볼 수 있었다. 그림 곳곳의 요소를 보면.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미켈란젤로만의 폭넓고 심도 있는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끊임없이 관찰과 사유를 통해 스스로 ‘위대해졌기에’, 그의 그림과 조각은 단순히 작품이 아닌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작품은, 그 작가의 삶과 세계관의 또 다른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이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결코 작가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위대해져야만, 차원을 넘어선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면서 그려봤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미켈란젤로가 이 걸작을 만든 24살에 다시 이곳에 온 나의 모습을. 그리고 정말 간절히 원한다. 19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돼있기를.


2019. 11.07

In Vat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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