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시국-피에타> 작품은 결코 작가의 수준을 넘을수 없다
세계를 여행 다니면서, 운이 좋게도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걸작들을 보고 있자면, 선의 매끄러움, 행동의 자연스러움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서 '과연 인간이 조각한 것이 맞을까? 우리는 단지 그 돌의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모든 대리석 안에 이미 조각상은 깃들어 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그 형상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
지금껏 삶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쌓여, '나의 인생에 더해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이 일련의 축적된 경험들이, 인생이라는 대리석의 불 필요한 부분을 제거해주고 '삶의 해상도'를 높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평소 '삶을 사는 것'과 '조각을 하는 것' 이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춤을 추듯 인생을 살고, 마라톤을 하듯 인생을 살아라는 뜻을 이해하려면, 직접 춤을 쳐보고 마라톤을 해보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삶과 조각의 연관성을 직접 이해해보고 싶어, 조각 중의 조각 ‘피에타’를 보고 싶다는 희망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렇게 드디어 피에타가 있는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피에타는 바티칸 시국의 성 베드로 성당에 위치해있다.)
로마를 떠나는 날 방문하려 했는데, 이날 마침 교황이 나오는 날이어서, 성당 입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하려고 눈물을 머금고 있었지만, 1시 이후에 입장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일정을 조금 무리해서 방문했다.
그렇게 산 건너 물 건너와서도 못 볼뻔한 피에타를 마주한 순간 '환희의 울컥함'을 느꼈다. 위엄 있으면서 애처롭게 그 공간을 지키고 있는 피에타는 차원이 다른 ‘위대한’ 작품이었다.
감정, 겸손, 돌아봄
내가 이 피에타를 감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사실 피에타도 한낱 죽은 돌덩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돌에서는 감정이 느껴졌다. 피부의 보드라움, 핏줄의 선명함, 마리아의 애처로운 미소까지. 그리고 이 감정들은, '어느 차원을 넘은 위대한 작품'만이 품을 수 있다는 게 눈에 비치는 피에타 통해 느껴졌다.
500년도 더 지난 당시에도 피에타는 엄청난 걸작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이름이 없으니 , 사람들 스스로 작가를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걸 24살의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그렇게 이 피에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신은 이 세상을 만들었음에도 그 어디에도 그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고작 돌을 조각했을 뿐인데 이렇게 자만하다니”라고 후회하며 그 이후에 어떤 작품에도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최고는 절대 자신의 입으로 최고라고 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한 최고라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미켈란젤로는 24살에 이 걸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24살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참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24살의 나이에 이 걸작을 만들 수 있는지, 5년 후 24살의 나는 과연 어떤 조각을 하고 있을지, 24살의 나는 19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등 나의 미래에 대한 질문과 현재의 나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느낀 건 이것들이 아니다.
“왜 스스로 위대해져야 하는가”
피에타를 보기 전 미켈란젤로의 또 다른 걸작 최후의 심판을 볼 수 있었다. 그림 곳곳의 요소를 보면. 단순히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미켈란젤로만의 폭넓고 심도 있는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끊임없이 관찰과 사유를 통해 스스로 ‘위대해졌기에’, 그의 그림과 조각은 단순히 작품이 아닌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작품은, 그 작가의 삶과 세계관의 또 다른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작품이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결코 작가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가 먼저 위대해져야만, 차원을 넘어선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면서 그려봤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미켈란젤로가 이 걸작을 만든 24살에 다시 이곳에 온 나의 모습을. 그리고 정말 간절히 원한다. 19살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돼있기를.
2019. 11.07
In Vati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