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의 인생 P(현재) 막 일상다반사
폐경을 진단받은 후 며칠을 멍 하게 지냈다.
사실 실감이 안 나서였을 것이다. 살이 안 빠지거나 피부가 거칠어지거나 기분이 우울하거나 한건 그저 요 몇 년간 어지러웠던 내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저 한탄스럽기만 했지 이게 호르몬의 변화일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 나이는 폐경이나 갱년기가 될만한 나이였지만 여전히 나는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다니고 유행하는 화장을 하기도 하고 세상의 변화에 눈과 귀를 열고 다니기 때문인지 나이가 꽤 많이 먹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폐경을 진단받고 몇십 편의 유튜브를 찾아보고 블로그를 읽어보면서 알았다. 내 몸의 변화들의 많은 부분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그저 좀 게으르게 살다 보니 살이 좀 붙은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혈압이 높아진 거라 생각했고 맥주를 좋아하는 탓에 머리가 아프고 열이난 다고 생각했다. 그저 집이 더워서 아니면 추워서 땀이 나거나 오한이 난다고 생각했고 기분이 우울하고 무기력함과 우울함이 생기는 건 그저 이별 후유증 정도로만 여겼다.
나는 내 몸에 무지했다.
폐경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이런 내가 너무 이상했고 그래서 내 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우선 가장 명확하게 변한 건 몸무게였다. 사실 운동도 꽤 열심히 하고 음식도 나름 신경 써서 먹던 요즘인 데다가 근부자였던 나는 운동과 식단을 좀 열심히 하면 꽤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졌었기 때문에 몇 달간 갑자기 찐 살들은 금방 빠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무리 해도 몸무게는 내려가지 않았고 조금만 음식을 적게 먹은 날은 어김없이 근육이 빠지고 체지방이 늘었다. 그래서 운동으로 살을 빼고 싶었지만 무리하게 운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뼈마디가 아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갈비뼈의 통증을 시작으로 엘보, 무릎, 손가락, 발목등 안 아픈 관절이 없었고 앉았다 일어서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이었다.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약을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는 게 말이 되는 건가?
그리고 요즘 날씨의 변화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내 몸의 온도가 정말 신기하게 이상했다. 갑자기 뱃속부터 열이 얼굴로 끓어올랐다. 마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넘어졌을 때의 얼굴이 터질듯한 부끄러운 느낌이 갑자기 들면서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났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갑자기 오한이 들정도로 추워져서 전기장판을 켜거나 옷을 껴입었다. 문제는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잘 때 이런 증상들은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고 자다가 깨는 일이 너무 잦다 보니 이게 자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잠을 깨기 일쑤였다. 게다가 이렇게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할 때 너무 어지러웠고 핑하고 머리가 도는 일도 잦아졌다. 자면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아침에 혈압을 재면 혈압이 정말 미친 듯이 높게 나왔고 160에 120 정도가 나오는 날엔 어김없이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티브이에서 보던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기분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수 있을 정도로 두통이 계속되었고 뒷목에 열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피부부터 모발까지 죄다 안 좋아졌다. 얼굴에 알 수 없는 기미 같은 게 생기더니 아무리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도 얼굴은 화장품을 뱉어냈고 마치 시멘트 바닥처럼 푸석거렸고 간지러움증까지 생겨서 다리에는 온통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발 뒤꿈치에 새로 생긴 각질은 그저 우스운 해프닝 정도였다. 머리카락은 미친 듯이 빠졌고 방바닥은 항상 내 긴 머리카락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필터를 씌워도 얼굴이 노인처럼 나왔다. 그게 너무 충격이었다.
그러다 가장 크게 변화를 느낀 건 나의 마음이었다. 이별은 한지는 1년이나 지났는데 이렇게 우울할 일인 걸까? 아무리 전 남자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더라도 그리고 어쩌면 내가 환승이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더라도 너무 우울했다.
뭐랄까 이 세상의 끝을 봐버린 기분이었다.
잠도 잘 못 잤지만 아침에 깨면 그저 다시 이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몸은 점점 아프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고 갑자기 노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그런 기분에 눈물도 안 났다. 인생의 의미 따위 없어진 지금 그저 사라지고만 싶었다. 아빠옆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난 그저 이 모든 게 여러 가지 안 좋은 상황 때문에 우울증이 생겼다고만 생각했고 그저 내 상황이 안 좋아서 생긴 일들이라고만 생각했고 맥주를 자주 먹는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맥주를 점점 줄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증상들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했다. 약도 매일 먹었고 나름 열심히 건강관리도 하던 중이라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증상들은 점점 심해질 것이고 관절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거라는 얘기들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다들 이러고 산다고? 이런 증상들을 견디면서 참으면서 산다고? 이건 병이 아니라고? 이게 맞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거야?
전 남자 친구의 뜬금없는 전화를 받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공황전조 증상까지 느껴지면서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의 친절한 진료덕에 가슴에 용종이 있음에도 약을 먹을 용기가 생겼고 매일아침 약을 먹으면서 내 몸을 조심히 들여다보았다.
몸이 나아지지 않으면 약을 바꾸던지 비호르몬제를 먹던지 주사를 맞던지 많은 옵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선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간절해서 그런지 약을 먹은 첫날부터 몸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우선 약을 먹고 일주일이 되던 날에 한 달에 1kg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빠지는 게 보였다. 뭐랄까 내가 노력하는 대로 몸이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손가락 관절염으로 매일 아침마다 괴로웠던 통증과 산발적으로 퍼져있던 온몸의 관절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뭐랄까 내 관절 사이에 기름 한 방울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몸무게가 유의미하게 빠진 날부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점점 없어지더니 그런 증상이 생기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잠을 깨는 횟수도 예전으로 돌아왔다.
화장품을 아무리 발라도 뱉어내기만 하던 내 피부는 조금씩 화장품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기분 탓인지 얼굴에 약간의 광이 돌기 시작했고 바닥에 머리카락 개수가 줄어들었으며 묘하게 여자다워졌고 필터를 씌우고 사진을 찍으면 뭐랄까 예전처럼 내가 아닌 나를 닮은 이쁘진 않지만 못생기지도 않은 여자로 보였다.
가장 큰 건 마음이었다. 아직까지 우울감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예전처럼 모든 게 다 끝난 세상의 끝에 온 기분은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뭐랄까 묘하게 미래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진 않았지만 이 작은 변화들이 요즘 나를 숨 쉬게 만들어 주고 있다.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란 게 생겼다.
물론 이 호르몬 약들이 모든 만병통치도 아니고 내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해야 하는 건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죽으라고 훅하고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추락하는 건 너무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 게 아닌 내 나이의 변화속도와 함께 서서히 나이 드는 거라면 이젠 분명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너무 다행인 건 이 구원자 덕에 나이 듦에 대해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물처럼 얻은 시간들을 어떻게 쓸지는 나에게 달린 몫일 것이다. 몇 달 사이에 지옥에서 현실로 돌아온 지금 그리고 이제 막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하는 지금
어느 날씨 좋은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손가락이 아무렇지도 않은 희망을 구원자 엔젤에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