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가 크면 꼭 세계여행시켜줄게"

만불로 인생여행을 시작하다.

by YULLY

"엄마, 내가 크면 꼭 엄마 세계여행 시켜줄게!"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매번 해왔던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가 다들 한번 쯤 부모님께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다들 하는 말이니까 말이라도 기분 좋게 하려고. 그 다음엔 그 말을 하면 엄마가 환하게 웃으셔서. 그리고 마지막엔 항상 가족을 챙기느라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사해서 진심으로. 이렇게 꼬맹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해오던 말을 이젠, 실제로 지키기로 했다.


호주에 거주한지 벌써 2년.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에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해외취업을 주선해 주었다. 호텔관광을 전공했던 나는 호텔인턴쉽을 시켜주고 비용도 지원해준다는 말에 준비 중이던 관광계열 창업을 잠시 미루고 호텔인턴십 참여를 택했다. '1년만 다녀오자' 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호주 거주 중 리조트 근무 및 창업 등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 계획과 다르게 2년을 있다 오게 됐다. 기상천외했던 호주 워홀 라이프는 후에 기회가 되면 적어나가도록 하고 우선 호주에 오며 꼭 이루고자 했던 4가지 목표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첫째가 모두가 그렇듯이 나 또한 영어였고, 둘째가 이력서에 적을 경력 한 줄.

셋째는 귀국 후 여전히 창업을 하고자 한다면 그에 조금이나마 도움될 자금력을 만들어 오는 것 그리고 넷째가 엄마와의 세계여행 이었다.


호주에 간지 약 한달 째 되던 날 블로그에 남겼던 기록을 참조하자면 이렇다.


'2014.04.01

시드니에 와서 우리 집 강아지가 하늘로 갔다는 소식을 접했다. 처음 접하는 가까운 생명체의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리고 죽음이란 것에 대해 실감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엄마의 소원을 꼭 들어드리고 싶었다.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욱 함께 하고 싶고 후회 없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여기서 모은 자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돈은 다시 모으면 된다. 우선 엄마가 건강하고 잘 걸어 다니실 수 있을 때 같이 꼭 다녀오고 싶다.'


그렇게 2년간 틈틈이 모은 돈으로 귀국할 때 엄마를 시드니로 초대했다.

그리고 엄마와 나의 인생여행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시드니에 도착 하는 날, 처음으로 비행기를 혼자 타 보신 날. 난 긴장해서 공항에 30분 일찍 나가있었다. 출국할 때 A항공사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제 3국으로 출국하는 티켓과 호주 비자, E-TAS를 잘 챙겨 드리고 프린트까지 해드렸으나 모 항공사 직원으로부터 한국으로의 귀국티켓이 없으면 출국시켜줄 수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컨디션을 봐가며 여행지를 즉석적으로 조정/변경할 심산으로 다음여행지의 티켓만 사두었던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제 3국으로 가는 티켓이 있으면 되는 걸로 알고 있다고 강력히 어필하고 재확인을 부탁 드렸고 그 직원은 다시 확인해본 결과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며 엄마는 그렇게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괜시리 입국 재심사를 당할까 하는 불안감과 함께 2년만에 만나는 엄마와의 재회에 설렘에 잠을 설쳤고 도착예상시간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한 나는, 일찍 도착 하느리만 못한 실수를 하게 된다.



도착 예정시간이 지나고 수속을 받고 나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출국 게이트 밖으로 나오시질 않는다. 갑자기 불안해 지기 시작했지만 길이 엇갈릴까 싶어 다른 곳을 찾아보지도 못하고 쓴 침만 삼켰다.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경우의 수를 수없이 생각하다 어이없는 사실을 한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비행기 대부분이 A exit 으로 들어오고 있어서 당연히 그렇겠지 라고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자세히 다시 확인해 보니 엄마가 탑승한 비행기만 B exit으로 표기되어있었던 것. 아차! 싶었던 나는 얼른 옆의 출구로 냅다 달려갔다. 낯선 환경과 함께 마중 나오기로 했던 딸래미가 오지 않았다는 생각에 엄마가 불안하실까 싶어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B exit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계신 엄마의 모습에 안도와 함께 쓸데 없는 걱정이었구나 싶은 허탈한 웃음이 터졌다. 그 자리에 배낭을 야무지게 매고 앉아 아무렇지 않게 옆에 백발의 호주 노부인과 바디랭귀지로 대화하고 손에 사탕까지 쥐어주는 그 모습에 나는 그때부터 성이 강씨인 우리 엄마를 ‘깡여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발 전 보내 온 야무지게 준비한 깡여사의 인증샷. 언니에게 물어보니 이 여행을 위해 한달 전부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 하기위해 건강 관리를 했다고 한다.//문제의 exit B



시드니 공항 전경,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똥줄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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