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내 삶의 이야기.. 다시 산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2막 Intro>
난 가장 일찍 출근했었다. 항상...
누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돈을 더 주는 건 아니다.
다만, 아버지에게 받은 것들 중 하나, 그건 바로 성실함이었고, 그 중에 출근을 포함하여 그 어떤 약속에도 늦는 경우가 없다.
항상 약속시간 보다 1시간에서 40분, 못해도 30분 전 도착을 기조로 살고 있다. 뭘 어떻게 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내려 주신 DNA이다.
우리 아버지는 팔순을 향해가는 나이에 아직도 가게에 출근하시고 손님이 없는 가게를 5시 30분에 문을 여신다. 그러기 위해서 댁에서 나서시는 시간은 4시 50분,,
나의 기상 시각 4시 30분~ 집에서 나오는 시간 5시 10분, 회사 도착 시간 6시 10분…
오늘 나는 사무실 조명 스위치를 맨 먼저 켜고, 아직 밖은 어두운 창가를 바라보며 의자 각도를 조절해서 몸을 뒤로 비스듬히 누였다.
어느 순간 눈이 감기고 자연스럽게 잠에 빠져든다. 다음 동료들이 출근하려면 최소 1시간 30분가량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시간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1절>
“지난 번 여행은 어땠나?”
감은 눈을 떠보니 좌우가 보이지 않는 칠흙 같은 공간에서 정면에 너울되는 빛만이 보이고 그 빛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흡사 도깨비불 같은…
“….”
“아직 아무 생각이 없나 보군.”
“어떤 여행을 말씀하시는 건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무슨 여행이긴, 과거로의 여행이지, 네가 돌이키고 싶은 과거로 말이다.”
나는 아직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그 꿈 같은 그걸 말하는 건가하고 넘겨짚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 말이다.”
그 빛은 나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는 듯했다.
“그 꿈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냥 꿈이라고 밖에는…”
“내가 함께 가는 그 곳은 너의 과거이고, 네가 돌이키고 싶은 과거, 그리고 네 선택을 바꿀 수 있던 순간이다.”
“네에?”
“나는 너와 그 과거로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바꿀 수는 없지만 네가 지금의 삶이 어떠한 선택과 과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있겠지…”
“바꿀 수 없는 과거에 가서 바라보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냥 잠자코 따라오거라.”
내 블레임은 무시되었고, 나는 그 빛과의 설전을 뒤로하고 잠 속에 잠에 빠져들었다.
<2절>
커피숖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자기들만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 눈앞에는 신촌점 영플라자 영케쥬얼 파트장인 김성실 대리님이 앉아 계셨다.
“박주임! 나 이번에 퇴직하기로 했다.”
“네?”
“음, 우리 파트가 3명인데, 내가 빠지면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마음은 좀 걸리긴 하지만
내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서…”
우리 영케쥬얼 파트는 김대리님과 몇 개월 앞서 입사한 신주임 그리고 입사 후 얼마되지 않은 나, 이렇게 오붓하게 3명이었다. 그 중에 대빵인 김대리님이 우리 앞에서 퇴직 신고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떠났다.
김대리님도 엘리트였다. 연세대 출신에 출신 학교 근처에 동기 학우들 상대로 장사하라는 의미인지는 몰라도 신촌점으로 배치 받아서 나름 인정받던 인재였는데, 외국계 보험회사에 도전하기 위하여 떠나신다고 했다.
그 김대리가 떠나고 후임으로 구봉식 대리가 왔다. 완전 딴판인 파트장이었다. 솔직히 깐깐한 김대리보다 훨씬 더 재밌었고, 편했으며 딱 백화점에 어울리는 관상(?)이셨다. 그러니 자연히 인기도 많았다.
역시 ‘관상은 과학’이다.
하지만, 내 맘속에는 김대리가 지피고 떠난 불씨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내 삶을 여기 백화점에 맡기고 가는 것이 맞을까? 내가 모처럼 제안한 아이디어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시해버리고… 내가 여기에 계속 있는 것이 나한테 도움이 될까?’
끊임없는 자문자답의 시간….
<3절>
“차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파전과 동동주가 놓인 민속주점의 주황 불 조명 아래에서 플로어 매니져이자 이전 차과장님 후임으로 본사에서 오신 신차장님께 그간 고민한 결과를 한 마디로 토했다.
“박 주임! 생각을 한 번 더 해봐. 박주임은 전무님께서도 관심인재로 관리 중이시고, 의류패션팀에서 핵심인재야. 여기서 잘 버티면 본사 상품본부도 갔다가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차장님께 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길인데??”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제가 평소에 하고 싶고 가고 싶었던 곳이 있습니다.”
“아 거참….”
<4절>
영케쥬얼 파트 김대리님 후임 구대리님과 백화점 흡연장에서 커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관둘꺼야?”
“네 대리님!”
“음... 너 따르던 그 언니들 어떡하고?”
“에이 무슨 소리세요?”
“ㅎㅎㅎ..”
“난 네 결정을 존중해.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 난 불교도도 아니라서 그 뭐냐? 윤회사상 그런거 믿지 않아. 인생 한번이니까 살고 싶은대로 살아야지...”
‘아 그래서 구대리님은 그렇게 막 사시는 거구나~~’
혼잣말을 혼자서 삼켰다.
구대리를 이야기하자면 이미 관상은 과학이라고 했다. 뺀질뺀질한 외모에 키는 작지만 얼마나 로숀을 쳐발랐길래 광이 나다 못해 기름이 흘러내릴 것 같은 흰 피부…
해외 명품 정장에 명품 구두, 명품 시계, 넥타이, 양말, 심지어 빤스도 캐빈 클라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동차가 빤스(벤츠가 부러워서 빤스라고 부름)다!
명품 덕질…
그 자체가 백화점인 것이다. 그러니 인기가 있지 않다면 이상한 것이다.
물론 그 명품들을 떠 받치는 건 그의 집안의 재력이다. 솔직히 집안이 좋다. 그래서 부러움 그자체.. 그래서 구대리 이야기는 여기서 급히 마무리한다.
“관두려면 너 매일 가서 뵙는 팀장님께도 말씀드려야 하는 거 아녀?”
“네?”
“너 매일 부장님께 가서 유머 하나씩 해야하잖아.”
‘아 씨부레… 맞다.’
난 매일 의류패션팀장인 이부장에게 매일 그분이 여유 있는 시간에 맞춰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유머러스 한 사건 등을 적어도 하나를 공유해주고 와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이것도 갑질 아닌가?
실은 갑질 맞다!
나는 투덜거리며 부장님이 계신 남성 정장 케쥬얼이 위치한 5층 사무실을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여어~ 개그맨 박주임 오셨네. 자! 오늘은 어떤 재미난 소식을 들고 왔을까? 기대되는데...”
“네 오늘은 특별히 깜짝 놀라실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뭔데? 빨리 풀어봐!”
“네, 부장님 저 그만 두겠습니다!”
“…..”
그리고 어퍼컷을 한 대 더 날리면서 KO를 시켰다.
“그리고 부장님 갑질로 시작한 이 개그맨 생활도 오늘부로 그만두겠습니다!”
“…….”
맘 속으로 졸도했으리라..
눈치를 살피니 말문이 막힌 것 보니 충격 먹은 듯하다. 은근히 오늘이 오길 바랬고 한 방 먹이길 바랬던 차인데… 표정을 보니 제대로 먹인 것 같다.
실은 이부장(님이라고 하기도 싫다.)은 갑질과 폭언, 그리고 부하직원 그리고 그 여친들을 엄청나게 하대하는 악덕 상사의 표본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내용들이지만, 업체로의 향응, 접대는 기본….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발렌타인 데이 아이디어를 무참히(?) 한 마디 말로 짓밟은 장본인이었다. (1막 참조)
아마, 현 시대에 그 자리에 있었다면 토르가 휘두른 망치로 발생한 번개처럼 짤렸을 것이다.
그 때는 ‘대한민국’을 목청 터져라 외치고 외치던 탓에 목청이 진짜 터져버린 2002년이 저물고 2003년이 오고 있던 찰나였기에 가능했으리라…
난 그렇게 인생 첫 번째 1인 관객을 대상으로 하던 개그맨 연기를 그만두게 되었고, 나름 인정받던 첫 번째 직장을 떠나는 순간이었으며, 인생 두번째 도전의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5절>
난 늘 꿈꾸었다.
‘이 곳을 떠날 때 폼 나게 정문을 발로 차고 나갈 것이고, 껌을 씹어서 땅 바닥에 뱉고
아주아주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도록 비벼줄 것이라고 흡사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사직서가 수리되고 퇴사가 확정된 날!
나는 발에 힘들 잔뜩 주고 영플라자 메인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너무 세게 차면 문이 깨질 수도 있으니 적당히 차자!’라는 다짐을 연신 해가며
껌을 입안에서 쾌속으로 잡아돌리고 있었다. 아밀라아제와 말타아제를 적당히 섞고 있었다. 마치 세탁기 내에 옷감과 세제가 하나가 되어 가듯이…
이미 입안에서 다음 내 인생의 경로가 정해지고 있는 셈이었다.
적당히 소화효소가 발려진 쫀득쫀득한 껌을 뱉으려고 과녁인 바닥을 향해 쏘려는 순간,
“어머~ 박주임님! 이렇게 마지막인가요?”
평소에 업무지원도 잘해주시고 항상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브랜드의 샵마(샵마스터)분이 인사를 하셨다.
“눼에~ 눼에~”
엉거주춤 답을 하는 바람에 껌을 쏴야 하는 것을 잊어버렸고, 엉거주춤 대충 인사를 나누고 정문으로 향했다.
‘그래 이 한방은 하고 가자! 반드시!’
난 껌 테러 실패를 정문 테러에 집중하리라 다짐하고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공사 중이므로 후문을 이용하세요!]
‘이런 씨부레~ 옻같다!’
하필 정문 센서 작동 오류로 공사 중이어서 지하철 통로와 연결된 상시 문이 열려있는 후문으로 향하면서 투덜되었다.
그렇게 나는 멋드러지게 구상했던 00백화점 퇴사 기념 한방 테러 작전을 실패하면서 그렇게 슬기롭지만은 않았던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6절>
눈을 부시시 떴다.
‘흰 빛! 아니 주황 빛 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더냐? 어떤 후회가 있더냐? 무엇이 문제였느냐?”
“….”
동시에 질문이 너무 많다.
“인생은 한번뿐이니 돌이킬수는 없다. 다만 과거에서 배운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아직은 잘…”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
<7절>
신개념 세탁기 00워시 런칭 플랜 보고를 잘 마무리했고, 사업부장님, 상무님, 팀장님께서도 잘 해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박대리! 드럼 시장이 많이 위축된 상황이라 힘들겠지만, 이번 프로젝트 잘 되면 BP사례가 될 거니깐 잘 해봐!”
존경해 마지 않는 상무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렇게도 꿈꾸던 꿈이 이뤄진 걸까?
2막 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