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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멘 Feb 18.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같은 서른하나 _ 일

 기사를 쓰면 개운한 느낌이 아닌 ‘놓치지 않았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하나에 집중해 취재할라치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보도자료, 사건 사고, 뉴스 등에 떠밀려 ‘아 여기서 멈추고 기사를 털어버릴까’하는 유혹에 빠진다. 과거 비슷한 사례는 없는지 찾아보고, 비판적인 시각을 더해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시사점을 더 찾아볼 수 있는데, 이젠 그게 보이는 연차가 됐는데, 시간이 문제다.     


 우린 소수인원이라 당일 출고되는 기사 수가 중요하다. 기사 하나당 주어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새로운 소식을 빨리 많이 전하는 게 중요할까 중요한 이슈를 심층 보도하는 게 중요할까.   

        

 수많은 양자택일의 순간은 국장님도 나만큼이나 고민이신가 보다. 얼마 전 방송사만 집중 취재하라 지시하셨는데, 하루 지나 신문사에서 발생한 소식도 취재하란 지시에 ‘이를 어쩐담’ 고민했다. 결국,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니, 중요도는 내가 선별해야 하는데 여전히 어렵다.     


 타 매체 선배는 ‘일주일에 한 발짝만 더 나아간다’는 마음을 가져보라 충고했다. 매번 기사 쓸 때마다 실천하는 건 어려우니 일주일에 하나만 열심을 다 해 취재해보라는 거다. 간단하지 싶었는데 생각보다 자주 갈등 상황에 놓였고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쉬운 길을 택했다. 선배가 2주에 한 번씩 써보라던 A4 용지 한 장 분량의 기자 수첩은 엄두도 못 냈다. 끙.     


 사건 기사만 작성하다 보니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에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니, 또 다른 지인은 내게 책을 써보라고 했다. 하루하루 사라지는 사건 기사 외에 분야를 정해 기록으로 묶어두는 결과물을 만들어 보라는 거다. 취재의 연장선상에 있기에 어렵지 않을 거고, 당신은 유능하니 쉬울 거라는 덕담도 함께 건넸다.   

       

 2년 전 아예 기자를 그만두려 할 때 친한 선배는 내게 전문 분야를 키워 책을 쓰든 아니면 그만두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매체에 가라고 조언했다. 난 비슷한 분야로 이직했고, 남은 선택지는 전문분야를 키워 책을 쓰는 것인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도조차 못 했으니 이번에도 난, 고민만 하는 투덜이가 되고 말았다.     


 문장에 대한 고민도 부쩍 늘었다. 문장을 못 쓰기 때문이다. 자료를 한 번 보고 딱 이해해 읽는 이도 쉽게 좌르륵 써내고 싶은데 생각처럼 안 써지는 게 문장이다. 머리로는 이미 뚝딱 기사가 나왔는데 내가 써낸 기사 첫 문장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실력의 모자람은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어 투덜거리지도 못하고 한숨만 쉰다. 다른 이의 기사를 따라 써보고 문장 구조를 연습해도 당최 늘지를 않으니 내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가 부끄러워지곤 한다.     


 최근엔 돈에 대한 고민까지 생겼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고 나니 문득 내가 버는 돈이 초라해 보였다. 내가 왜 이 직업을 택해서 추운 겨울 길바닥에 앉아 기사를 쓰고, 여기저기 듣기 싫은 질문 해가며 욕을 먹고, 소송 위협에 마음 졸이며, 퇴근 시간도 일정치 못해 평일 약속을 못 잡는지 화가 났다.


 동료랑 밥 먹으며 푸념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동료는 내게 돈 많이 받는 대신 광고 기사를 쓰라고 하면 쓰겠냐고 물었고, 난 왜 선택지가 그것뿐이냐며 대답을 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나는 이 일을 계속할 것 같다.


 영하 5도 날씨에 한 시간 동안 길바닥에 앉아 타자를 두드려도 다음 날 내가 쓴 기사를 공유한 관계자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니까. 취재 과정이 고달팠지만 의미 있는 기사로 언급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피로가 풀리니까.     


 대학원 수업시간에 선배 기사로 공부한다는 후배 연락에 힘이 나니까. ‘이 건에 대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질문해온 동료의 연락에, '이 분야는 김 기자가 오래 써왔잖아'라며 온 토론회 섭외 연락에 미소 짓게 되니까. 부당한 일을 봤을 때 침묵하고 못 넘어가겠으니까, 기사 덕분에 힘내 싸우겠다는 피해자 연락에 원동력을 얻으니까.      


아마 나는 당분간 이 일을 계속할 거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 하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세계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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