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한 살의 기록 1
31살 직장인으로 평범하디 평범한 내게 단 하나, 변태 같은 취향이 있다면 단발이다. 머리가 어깨에 닿을락 말락 기르면 미용실을 예약한다. 어김없이 3개월이다.
사각사각사각. 오른쪽 귀부터 가위질이 시작되면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지난 3개월간 쌓여온 스트레스와 고민이 머리카락 끝에 모여 잘려나가는 기분. 한참의 사각거림 끝에 목 주변을 두르고 있던 가운을 탕 털면 그렇게 상쾌할 수 없다.
“이번에도 엄청 짧아요”.
미용사 언니의 경고에도 귀밑 3cm에 S컬로 단단하게 말려 뻗치는 컬이 좋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단발은 금기어였다.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상가 미용실에 갔고, 미용실 아주머니는 바람을 넣었다. 영화 <타짜>의 배우 김혜수 머리가 유행이라고. 난 아직도 내 주변에서 동조한 친구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내 머리카락은 반곱슬이었고, 아주머니가 캐릭터 딸기를 닮았다며 드라이해준 머리는 등굣길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 날 1학년 8반 교실 뒷문을 열었을 때, 사물함에 기대있던 친구들은 일제히 나를 바라봤고 소리를 질렀다. 한 친구는 친히 교실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가지고 내 뒷머리를 보여줬고, 다른 친구는 사진을 찍었다. 어쩐지 바리깡으로 마무리하더라니.
점순이란 수치스러운 별명이 생긴 것도 그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는 김유정 소설 ‘동백꽃’이 실려있었고, 짧고 거친 점순이 삽화에 친구들은 나를 보며 키득거렸다. 예민한 사춘기 소녀 별명이 점순이라니.
그 후 쭉 머리를 길러왔다.
26살이었나. 왜 때문에 단발을 결심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유 단발머리가 예뻐 보였나. 볼륨 매직의 위력을 알게 됐고, 머리를 자를 때마다 볼륨펌을 결제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어떤 이유에서든 26살 이후로 석 달에 한 번씩 1시간 거리에 있는 약수역 단골 미용실에 간다.
물론 기르고 싶은 유혹이 없는 건 아니다. 같은 스타일의 원피스를 입고 긴 웨이브 머리를 휘날리는 친구의 뒷모습을 찍어줬을 때. 같은 자리에서 찍은 나는 애 엄마처럼 나왔을 때. 셀카가 예쁘게 안 나왔을 때. 어떻게 화장을 해도 일 잘하는 직장인처럼 보일 때. 주로 내 외모에 자신이 없을 때 머리 탓을 했다. 머리 탓을 해야 내 외모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다.
매번 미용실 문을 열기 직전까지 입안에서 ‘끝만 다듬어주세요’라 웅얼거리다가 자리에 앉으면 결심한 듯 얘기한다.
“평소처럼 짧게 잘라주세요”
사실 난, 단발을 좋아하기보다 머리를 자르는 순간을 즐기는 듯하다. 상한 것들을 거침없이 잘라내는 행위가 내 성격과 달리 단호한 듯해 속이 시원하다. 그래서 단발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