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eynote

기다리다 지쳐

by 랩기표 labkypy

아들이 일어나자마자 나가자며 보채기에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공원으로 아침 일찍 나왔다. 화사한 물망초가 컵에 꽂혀 눈길을 사로잡은 분식집에서 김밥을 사고 그 옆에 있는 빵집에서 샌드위치까지 들고 와 돗자리를 펴고 앉아 먹었다.


햇살이 진해지자 기분 좋은 아이들의 소리가 공원 곳곳에 퍼졌다. 아들은 처음 만난 아이들과 곧잘 친해졌다. 상대 부모에게 민망해 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던 나도 어느새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오랫동안 정해져 있던 공원의 불문율처럼 느껴져 금방 익숙해졌다.


형이나 누나 뒤를 졸졸졸 좇아 다니며 웃으며 뛰는 아들을 나무 그늘 아래 캠핑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 눈으로 좇았다. 이후 오랜 기다림이 이어졌다. 나의 눈길이 책으로 땅으로 나무로 꽃으로 울타리에 걸친 장미가시로 드나들면서 기다림은 이어졌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모두 기다림이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었다. 배가 고파야 밥을 먹었고, 잠이 와야 잠자리에 들었다. 걸음은 돌이 지나자 유치가 나듯 자연스럽게 시작했고, 언제부터 문장으로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 이제 그럴 때가 되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에게 어색하게 한 가지 알려준 게 있다면 그저 지금은 장난감을 살 때가 아니다는 것 정도다.


한밤중에 아이가 자다가 깨면 몽롱한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아이를 안고 일어선다. 유럽은 부무와 아이가 방을 따로 쓴다지만 이 동방예의지국의 꼰대형 부모는 아이를 옆에 끼고 자지 않으면 불안하다. 침대 끄트머리에서 30도씩 좌우로 몸을 비틀면서 <섬집아기> 노래 부르기를 멈추는 것도 때가 되어야 된다. 아들이 잠이 들어 울음을 멈추고 팔에 힘이 빠지면서 축 처지기를 기다려야 된다. 그때를 못 맞추면 마치 비디오 화면을 되감기 하는 것처럼 다시 일어서서 같은 공정을 반복하는 수고가 발생한다.


이렇게 때를 기다리다가 잠이 달아나면 재밌는 생각이 든다.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체력과 잠이 없다면 때를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짜증과 불만으로 가득 찬 지옥행일 것이란 생각을 한다.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결국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한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구차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거니 애쓰지 않는 것이다. 내게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책이나 영화를 보는 것 또는 복잡한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맺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아이 보는 것에 쏟고 있는 요즘에 충분히 읽고 찬찬히 살피고 꾸준히 쓰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축 처진 팔이 목 뒤 감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마치 대어가 입질하는 듯한 그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가 언제 충분히 때를 기다린 적이 있었나 돌이켜보며 일종의 반성까지 아이가 다시 잠드는 시간, 약 10여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찰나에 스쳐간다.


그나저나 지금 오후 7시, 아이를 쳐다보니 아직은 집에 갈 때가 아닌가 보다...


여유롭게 다시 책으로 눈을 옮겼다가 글을 적는다.


아직, 괜찮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캠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