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문제는 성급함과 태만함에서 나온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성급한 판단과 결정은 익지 않은 열매를 따 먹는 것처럼 나쁜 결과를 만들어낸다. 목표가 있지만 태만하면 허풍쟁이가 된다. 이 두 단어를 조금 더 깊이 바라보면 일상에서 이렇게 적용될 수 있다. 뜻하는 바는 절대 쉽게 달성되지 않으니 계속해서 정진하라. 만약 너무나 손쉽게 무언가를 얻었다면 잘못된 것이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되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것은 오로지 운에 내 운명을 맡기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결과를 만들어냈다고 칭찬하거나 찬양하기 보다는 그 과정 속에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삶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두 갈래의 길을 마주하게 된다. 어차피 될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그만두거나 언젠가는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자는 허무주의로 가득차 태평하다. 어차피 될 일 없는 세상에 뭔가를 이루었다는 것들에 대해서 그저 핀잔을 늘어놓는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겠냐, 그게 정말 네 힘으로 이룬 것이냐, 얼마나 더 잘 되는지 두고보자 같은 뾰족한 송곳을 들고 다닌다. 반면에 후자는 모든 이들의 성공을 축복한다.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의 성공에 스스로를 대입한다. 그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흔들렸을까, 진심이 닿아 만든 결과에 얼마나 기뻤을까, 앞으로도 그 험난했던 과정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전진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지지다. 이것은 그들을 통해 나를 응원하는 것과 같다.
어제도 나의 성급함과 태만함에 흠칫 놀라며 자책했다. 작은 실수와 실패가 모여 나는 왜 이따위일까 자괴감에 빠졌다. 세상이 어떻게 될지, 나의 삶은 또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계속된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오늘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다. 나를 성급함과 태만함으로 망칠 것인지, 인내와 근면으로 다시 일으켜세울 것인지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