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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ypyo Sep 11. 2024

절제의 미학

흔히 성공의 조건 중에 절제를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로 아이에게 빵을 먹지 말라 했을 때, 그것을 참은 아이가 후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일 것이다. 조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팀 플레이를 해야 승부에서 이긴다. 다툼이 생겼을 때도 흥분하면 지게 된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찰 만큼 절제의 미덕은 우리 일상에 너무나 많다.

우리 인간은 절제에 취약한 동물이다. 그래서 통제한다. 사회성을 기른다는 말은 규율과 도덕을 학습해 절제하는 상태에 머문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자극이 적은 안정된 곳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절제에 취약한 존재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반대로 오히려 그런 인간의 본능을 거스르는 곳에서는 큰 기회가 있다. 하이 리스트 하이 리턴.

최근 책을 두 권 샀다. 더 이상 책을 둘 곳도 없고, 책 사는 돈도 버거워져서 전자책이나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그런데, 꼭 사야겠다는 책이 생겨 두 권을 샀다. 놀랍지만, 주식 책이다. 최근 주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감각으로 맴돌던 것을 체득하는 과정이었는데, 주식판 참여자의 99%처럼 손실만 났다. 올해부터 매일 복기를 시작했다.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다가도 다시 헤매기 일쑤였다. 방황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를 보게 되었는데, 어떤 방향을 찾은 것 같았다. 주의 깊게 보다가 유튜브에 등장하는 두 인물 중 한 분과 블로그 이웃이 되는 지경까지 왔다.

그들을 보고 제일 처음 느낀 것은 그동안 내가 겪어 왔던 세계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찬찬히 살피면 또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그 형태만 달랐지만 지향하는 것은 비슷하다. 진리는 한 길로 통한다. 뭐든지 자세히 보아야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아름답게 보인다. 겉만 보고 판단하며 그 속에 든 것을 지나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이전에 내가 해왔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좀 다르지만…(나는 망했다.)

흔히 주식을 도박처럼 여긴다. 주식은 고위험 자산이고 비참한 결과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변에 주식투자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하다. 그러나 각종 미디어 채널을 보게 되면 성공한 사람들이 꽤 나온다. 그럼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는 무엇이 다른가.

나는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분야든 목표를 세워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나는 그들을 자세히 보면서 모두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공통분모라는 것은 비단 주식투자 분야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바로 ‘절제의 미’라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도전 끝에 얻은 자신만의 철학으로 탄생한 결과이다. 그들은 모두 수도자와 다를 바 없었다. 종교적 신념 아래 절제하며 사는 이들과 발이 부릅트고 갈라진 채 묵묵히 걷는 순례자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김진명 작가의 <카지노>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도박이 기술적 영역이었으면 인간이 이미 정복했을 것이다.”

데이터 기반 결정은 흔한 말이다. 경영자가 관련 자료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데이터 기반 결정은 과거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이 크고 파괴적 창조나 혁신을 일으키기 힘들다. 그 중 무엇이 더 나은가 묻는다면 질문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둘 다 해야 한다. 나는 삶이란 한 극으로 쳐져서 끝없이 밑으로 깊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중심을 잡고 두 날 개를 활짝 펴서 위로 상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욕망이 통제되지 않는 곳에서는 나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스스로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권의 저자는 그런 날개를 펼친 것 같다. 부를 일궜지만 필연히 찾아오는 허무의 감정을 다시 명예로 채우려고 한다. 화려해보이고 쉬워보이지만 그 날개짓을 위한 과정을 우리는 잘알지 못한다. 하지만, 해보면 곧 알게 된다.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방만한지를. 그것을 통해 지금 나의 어려운 상황과 지난했던 과거의 기억이 가능성의 씨앗이 되는 기분이 든다.

결국, 다시 돌아와 절제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중이다. 아이처럼 통제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우리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두 아이가 된다. 하지만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방황이 시작된다. 결국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는 절제가 되지 않는 치명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도전하라는 말은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세계에 적응하면서 나를 다스릴 줄 아는 한 명의 경영자이자 통제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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