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인생은 그 자체로 복잡하고, 고통은 그 안에서 언제나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다. 사람들은 이 질문 앞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한다. 철학을 탐구하거나 종교에 몸을 맡기기도 하고, 주어진 삶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작은 행복에 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이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일이다.
삶이란 원래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주 그 경계를 나누려 한다. 나와 다른 선택, 나와 다른 길이 있으면 그것을 쉽게 부정하고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는 이를 독재라 불렀고, 그런 억압은 삶을 더 깊은 어둠으로 몰아넣었다.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며,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일이다. 그러나 때로는 명확한 기준 없이 다양한 선택 앞에 놓이면, 우리는 또 다른 불안에 빠지게 된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는 이 혼란을 더 깊게 하고,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만 간다.
이 혼란 속에서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디오니소스는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춤을 추는 신이다. 니체는 바로 그 춤을 추라고 말한다. 고난을 마주하되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삶이 비극적일수록, 그 비극 속에서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유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모르 파티(Amor fati), 내 운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한편, 니체와 대조적인 인물로 쇼펜하우어가 있다. 니체는 젊은 시절 한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으로 가득 찬다고 생각했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의했다. 그러나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 두 철학자는 뚜렷하게 갈라섰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에서 멀어지라고 했다. 피할 수 없다면, 예술을 통해 잠시 잊으라고 했다. 예술이야말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의 예술관은 마치 상처 입은 영혼이 잠시 안식을 찾는 마취제와도 같았다.
반면, 니체는 고통을 도피처가 아니라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이란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마취제였다면, 니체에게 예술은 고통을 승화시키는 투쟁의 도구였다. 예술은 삶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고통을 격앙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힘이었다.
최근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현대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지친 사람들은 그의 철학을 통해 잠시나마 쉴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다. 쇼펜하우어의 말은 지친 사람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처가 되었다. 하지만 니체는 이 도피가 오히려 삶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현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야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니체는 이성과 과학으로만 세상을 해석하려는 시도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가 보기에, 세상을 원자로나 물질로만 설명하려는 것은 세상이 가진 고유의 빛을 지워버리는 행위다. 물질로만 분석된 세상은 의미를 잃고, 허무함만을 남길 뿐이다. 그래서 그는 디오니소스적 유희를 중요시했다. 삶의 혼돈 속에서도 우리는 춤출 수 있어야 하며, 고통 속에서도 유희의 순간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삶에는 정해진 길이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각자 선택해야 한다. 삶의 이상을 추구하며 고요히 관조할 수도 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나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표현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하는 것이다. 세상도, 나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가 알고 있던 나 자신이 더 이상 내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변화 속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바로 그 고통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새로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대인에게 다가온다. 쇼펜하우어는 피할 곳을 제공하지만, 니체는 고통 속에서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