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단편
그리움의 미학
아래층 노부부를 만난 건 지난 초여름이었다. 날은 따뜻했고, 어딘가로 외출을 서둘던 주말 오후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조심스레 대문을 열어보니 아래층에서 왔다며 머리가 희끗하신 어르신께서 편지 한 통을 건네주셨다. 서먹한 인사를 나누고 소파에 앉아 편지를 뜯어보니 층간 소음에 대한 내용이었다. 고민 끝에 편지를 남긴다며, 그동안의 불편을 3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자필로 붙여두셨다.
편지를 읽은 후 너무 죄송한 맘에 얼른, 죄송합니다. 아이에게 더욱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죄송합니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써서 재빨리 아래층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사모님께서 나오셨고 편지를 건네며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드렸다.
다음날, 어르신께서 다시 찾아오셨다. 은테 안경을 슬쩍 만지시며 조용히 건네는 말씀은 아이가 있었는지 몰랐다 미안하다는 예상치 못한 사과였다. 아이는 무조건 뛰어놀아야 된다. 우리도 이곳 출신은 아니지만 딸과 순주들 때문에 일부러 왔다. 우리 때문에 마음이 아팠을 당신들을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다. 앞으로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이후 우리는 흔한 말로 이웃사촌이 되었다. 오며 가며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건 물론이거니와 종종 맛있는 음식을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삭하고 맛이 잘 베인 충청도식 김장 김치 때문에 우리 가족 밥상이 풍성해져 감사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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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행사 때마다 통영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 케이크를 준비한다. 이번 크리스마스를 위한 케이크는 아래층까지 두 개를 샀다. 이브날 저녁에 우리 세 식구는 케이크를 들고 아래층으로 가서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시기 바란다는 인사를 드리며 케이크를 전달했다. 그러자 “아이고 이런 걸 또 무슨...”이라며 주춤하시던 어르신께서 갑자기 “지상이 아버지랑 할 이야기가 있는데...”라며 아내에게 양해를 구했다. 무슨 일일까 당황한 우리는 괜찮다며 나는 아래층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고 아내와 아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정신이 없었다. 10년 된 아파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안은 조금 허전해 보였다. 쭈뼛 서있던 나에게 어르신께서는 부인은 미용실에 가서 잠시 후에 돌아온다며 이야기를 꺼내셨다. 자신이 가끔 담배를 피우는데, 혹시나 해를 끼치지는 않았는지 물으셨다. 어떤 냄새도 맡지 못했던 우리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어르신께서는 우리가 혹시나 미안해서 말을 못 하는 건 아닌가 하시며 연거푸 사과를 건네셨다. 나는 계속해서 다가오는 질문마다 아니라는 말로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술을 한 잔 하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곤란하지만, 한 시간만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은근히 이웃 어르신과 함께 하는 술자리가 기분이 좋긴 했다. 이브날 우리 계획은 틀어졌지만, 내심 바랬던 일이 성사된 기분이었다. 적당히 술을 준비하고 집 앞 분식집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마련했다. 어르신께서는 첫 잔을 소주와 맥주를 섞어 가득히 담아주시고는 “내 아들이 고2 때 죽었소.”라며 운을 떼셨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직장인에서 사업가의 삶. 아들의 죽음 이후 술과 담배에 빠져 방황을 했던 시절로 이어졌다. 말씀 중간쯤 미용실에서 돌아온 사모님께서는 “에휴, 그땐 참 많이 힘들었지”라며 평소 미소 가득한 얼굴에서 한숨을 뱉으셨다. 나는 상상도 못 할 아픔을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딸이 자신이 반대한 결혼을 했고 벌써 아이가 셋이라고 하셨다. 이후 서로 왕래가 뜸하다가, 작년에 딸아이와 손주를 보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기로 결정했고 여전히 사위는 맘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낯선 곳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눌 벗도 없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 바깥양반이 말이 참 많아요. 호호” 하시는 사모님 말씀에 “저는 듣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니 어르신께서는 “이야! 역시 인연이 다며 김치를 먹는 것도 자신은 잎을, 나는 밑둥을 좋아한다며 요란을 떠셨다.” 아무렴 어떠냐 이 순간 이렇게 기쁘고 즐거우면 전부라는 생각에 술도 여러 잔 오갔다. 그리고 월세를 살면서 집주인과 관리사무소에서 겪었던 설움들. 자신의 집과 건물을 두고 잠시 머물고 있는 타지에서 겪지 않아도 될 경험을 하신다며 한숨을 푹푹 쉬셨다. 들리는 것만 따졌을 때는 참으로 야박한 세상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여수로 여행을 다녀오셨는데, 몇 개월 남지 않은 집 계약이 끝나면 그곳에서 머물 생각이라고 하셨다. 나는 웃으며 아쉽지만 두 분께서 더욱 즐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시면 좋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어르신께서 타지에서 얼마나 외로우셨겠냐며 가끔 만나 약주도 한 잔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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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픔은 있다. 상처 가득한 기억들과 불안한 미래가 오늘을 괴롭힌다. 결국 오늘을 사는 우리가 행복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훌륭한 음식을 먹고, 훌륭한 아내와 아이와 함께 웃고 울고, 훌륭한 음악을 듣고, 훌륭한 공간에서 근사한 시간을 보내고, 훌륭한 이웃과 뜻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런 훌륭한 하루가 아픈 상처를 감싸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교회를 못 나가겠어요. 가면 감사해야 되는데... 감사하다는 말이 안 나와. 그냥 슬프고 억울해.”라고 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에 무엇으로 답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웃음과 눈물이 가득 찬 술잔을 들고 무거운 운명의 짐을 잠시나마 함께 견뎌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어르신, 다음에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때는 시간을 빼놓고 드시죠.”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는 이런 것이 아닐까. 나의 아픔과 상처를 알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오늘 바쁘세요.”라고 묻는 문자가 오기를 기다려보는 것. 그리움의 미학이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그리움으로 오늘의 행동이 더욱 경쾌하고 근사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