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안빠져요.

평생토록 나를 괴롭혀온 그녀석에 대해.

by 진하린

살이 안 빠져요.


살이 너무 안빠져요. 진짜 심하게 안 빠져요. 나는 코로나 때도 4kg가 쪘어요. 난 돼지인 걸까요? 그런데 돼지는 체지방률이 15%라고 들었어. 나는 25%니까, 난 돼지보다 못한 것일지도 몰라.

근육이 많으면 뭐해 무거워서 몸이 힘들어 하잖아. 그래서 나는 살이 빠져야해요. 그런데 살이 안 빠져요.


이 세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고, 나는 먹는 걸 사랑해. 그러니까 살이 안 빠져요. 정말 힘들다. 그런데 운동도 좋아해. 하지만 운동을 자주 해도 아웃풋 보다 인풋이 많으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래서 살이 안 빠져요.


빵이 얼마나 맛있는데, 고소한 버터의 향과 발효로 인해 폭신폭신해진 텍스쳐. 그리고 고열에 바삭해진 외피까지. 어찌나 완벽한지. 탄수화물과 지방의 혼합은 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다. 그저 식욕의 노예로 만들어버리지. 정신따윈 본능을 극복할 수 없어. 그저 입에 넣는 거야.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한입 씹을 때마다 주르륵 새어나오는 육즙이 입 안을 따뜻하게 감싸면, 그 순간 전율이 흐른다. 고기의 결이 어금니로 파쇄되며 여러가닥의 근섬유로 갈라질 때, 찬란한 살찌움의 순간이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망가져버린 발목은 오늘도, 내일도 비명을 지른다. 제발 살려줘. 나는 아틀라스가 아니야. 천구를 짊어진 게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살려줘. 내게 가해지는 하중을 줄여줘.

천구를 짊어진 아틀라스는 죄를 짓기라도 했지, 발목은 심지어 죄를 지은 적도 없다. 이 어찌 억울하지 아니하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제발 돼지야 살을 빼주렴.


하지만 나는 화답한다. ‘미안해. 살이 안빠져’ 그러면서 또 외로움이라는 핑계로, 입이 심심하단 핑계로 그저 우적우적 간식을 집어먹는다. 배는 고프지 않다. 그저 맛이 있는 것을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위해 먹는다. 배는 부르지 않다. 아무리 더 먹어도 그저 입에 들어간다.


그렇게 나는 또 다시 살이 찌고 다시 하소연한다.


"살이 안 빠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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