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 다니는 1인 기업
요즘 가장 핫 하다는 클럽하우스. 클럽하우스는 보이스를 기반으로 하는 SNS (사회관계망 서비스) 플랫폼으로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열풍이다. 인스타그램은 사진, 유튜브는 동영상을 기반으로 한다면 클럽하우스는 오디오 기반 C2C (소비자와 소비자 사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이다. 클럽하우스는 이미 회원이 된 사람에게서 초대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다. 초대장은 클럽하우스에 가입한 시기, 스피커로 참여 정도 등 공헌도가 높을수록 계속 늘어난다. 현재는 안드로이드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애플 앱스토어에서만 앱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일단 가입이 되면 누구나 자유롭게 단톡 방을 열 수 있다. 대체적으로 오피니언 리더들을 중심으로, 취향과 관심사 별로 대화방이 형성된다. Moderator (모더레이터 혹은 방장)이 방을 열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방을 넘나들 수 있다. 대화에 참여하고 싶다면 손 모양 버튼을 누르면 되고, 방장의 권한으로 발언권을 준다. 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지는 않는다. 발언권을 받은 사람은 Speaker (연사)로서 스테이지에 올라온다는 표현을 하는데 프로 파일 사진이 모더레이터와 스피커가 위치한 가장 위쪽 대화 그룹에 위치하게 된다. 스테이지에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사람의 경우 Listener (청취자)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어떤 방들은 강의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은 질문과 대답을 해주는 형식의 대화를 하거나 한 주제를 토론한다.
2월 초 테슬라 창립자인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가 깜짝 출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른 나라에서 발견되지 않는 한국인들 만의 재치가 보이 성대모사 대화방 같은 곳도 있다. 이야기를 듣고 참여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게 되고, 중독성이 심해 이미 '클하폐인'이라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클럽하우스에 들어갔을 때는 한국 사람들이 여는 방이 없었다. 주로 영어권 사업가 모임이나 브랜딩 마케팅 관련 내가 하는 브랜딩 컨설팅 방을 자주 갔다. 그러다 한국인들만 모이는 방이 한둘씩 나타나면서 여행을 이야기하는 방, 마케팅 방, 즉흥 연주 방도 들어가 보게 되었다. 내 직업상 디자인 및 브랜딩 컨설팅, 통역 번역, 이커머스 등을 하는 N 잡러이기에 자연스럽게 N 잡러들이 모이는 방을 즐겨 가는데 거기에서 대두되었던 주제에 관해 얘기해볼까 한다.
N 잡러는 2개 이상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러 (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다. 본업 이외에 여러 부업을 취미활동을 즐기며 시대 변화에 언제든 대응할 수 있도록 전업이나 겸업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말한다. N 잡러는 본업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아실현을 위해 관심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이 크다. 생계를 위해 본업 외 다른 일을 하는 저임금, 임시직 노동을 겸업하던 이른바 투잡족 (two-job族)과는 다르다. 스마트폰 애플리캐이션이나 SNS 등 디지털 플랫폼에 기반을 둔 신종 일자리와 고용 형태를 의미하는 '긱 경제'(gig-economy)과 맞물린다고 할 수 있다.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함께 남녀 직장인 1,600명을 대상으로 '직장인 N 잡러 인식과 현황'에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한 결과 실제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스스로 '현재 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N 잡러'라 답했다. 스스로를 N 잡러라 답한 직장인은 30대가 34.6%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으로 40대 직장인이 29,4%로 많았다. 이어 20대 (25.7%), 50대 이상 (24,7%) 순으로 많았다.
직장인들의 N 잡러 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있어 정년 없는 일자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26.4%가 가장 높았다. 이어 '생계를 위한 돈벌이보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직업)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23.8%로 두 번째로 높았다. 한편으로는 '업무량과 과다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답변이 44.8%로 N 잡러 가 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큰 이유도 나왔다. 다음으로 '다양한 일을 하면서 높은 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31.5%로 높았다.
이런 현상은 위계질서가 강한 국내 기업의 조직문화와도 연관이 깊다. 회사에 다니면서 상명하복 문화가 강한 회사에서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채울 수 없는 만족감을 본업 이외의 여가를 활용해 개인의 취미 또는 흥미를 살려 '끼' 분출을 할 수 있다. 자투리 시간에 일하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자기 계발도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자발적인 N 잡러 가 아니라 비자발적인 N 잡러도 발생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구직활동에 나선 2030 세대는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거치며 정규직이 대거 구조조정이 되었다. 근로자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인 현실을 마주하며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지 오래다.
걸어 다니는 1인 기업 혹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N 잡러는 개인이 주목받을 수 있는 각종 온라인 플랫폼 활용에 능숙하다. 온라인 접근성이 좋아 동영상, 유튜브 채널, 팟캐스트 등이 활성화되면서 광고와 조회 수로 부수입을 얻는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다. 비디오(Video)와 블로그 (blog)의 합성어인 '브이로그'(VLOG),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영상 콘텐츠가 속출하고 있다. 지금은 이커머스 라이브까지 대두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되었다. 직장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유튜브 방송 녹화 편집을 새벽까지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뒤 출근하는 날이 많다. 하지만 내 삶의 주인공으로 내 의지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자유와 원하는 것을 이뤄가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N 잡러로서 행복하다. 남편과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휴가를 가서도 필요에 따라 일하는 시간 조정을 할 수 있다. 내가 N 잡러의 길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내 시간을 통제, 분배할 수 있다는 자유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고충도 적잖다. 여러 업무를 함께 하는데 철저한 자기 관리와 효율적인 시간 안배, 에너지 조절을 하지 못하면 효율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 쉬어야 할 때와 일을 몰아서 해야 할 때의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크게, 여러 번 온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간의 줄다리기도 회사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생긴다. 그 줄다리를 하는 사람도 자신이고 심판도 자신이기 때문에 100% 자신의 역량에 의해 소득의 결과물이 달라진다.
소득이 충분치 않을 때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잘하는 일'을 해야 맞는 건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게 된다. 더는 재미와 열정으로만 유지될 수가 없다. 먹고살아야 하는 생계유지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닌 강점 있는 특정 업무만 지속해서 하다 보면 다른 업무 경험 및 역량이 쌓이지 않고 오히려 기량 감소 (de-skilling)의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나준호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인재 플랫폼이 직업 세계를 변화시킨다' 보고서에서 "기존 정규직 일자리가 기간제, 프로젝트, 파트타임 등 다양한 비전통적 일자리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안정적 고용과 괜찮은 수입’을 보장했던 좋은 일자리들이 많이 사라질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 기량 감소의 문제나 여러 기업을 넘나들며 일하다 보면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 국가 중 일부는 기업 고용은 유연하게 하되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개인 직업 생활의 안정성을 확충해주는 유연 안정화(flexicurity)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핀란드의 예를 들면 IT나 게임회사에서 정직원으로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도 다른 회사에 프로젝트 형식으로 부가적인 일을 맡아 할 수 있다. 회사와 고용자 간 별도의 세부 조건이 명시된 계약을 한다. 그리고 고용자는 자신의 회사를 세우지 않더라도 Light Entrepreneur로써 일할 수 있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이런 경우는 보지 못했다. 정식 서류 거쳐 회사를 세우지는 않지만, 자체 회사명을 만들어 1인 기업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핀란드에는 총수익의 5-7% 커미션을 받고 자체 지은 회사명으로 인보이스를 발행해주고 세금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전문 서비스 업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핀란드는 1시간 프리랜서로 일을 해서 얻은 이익에 대해서도 자발적인 세금 신고가 생활화되어있고, 만약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사실이 발견될 경우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 가끔 한국의 학생들이 잘 모르고 자발적인 신고 없이 통역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반복된 일이 발견될 경우는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안타깝다. N 잡러로 일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우려도 있는데 이런 시스템은 고용주와 회사의 신뢰를 높이고 인재들의 개별성과 자아실현을 이루는 특별하고도 배려심 있는 제도라 생각한다.
전문가들은 자발적이든 자발적이지 않든 N 잡러의 긱 경제는 앞으로 보편적인 유형의 일자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중소기업까지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시행되면 자아실현을 위해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시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덩달아 조성이 될 것이다. 이것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현상이고 앞으로 N 잡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증가할 것이다. 디지털,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직업군이 속출하고 지식 공유가 가능한 시대이다. 한국에서도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여 N 잡러의 안정과 기술, 역량을 향상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노동 법규가 조속히 마련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