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털털 털고 일어서야 한다면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_<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중에서
결정했다. 내 날개를 믿어보기로. 극심한 우울증이 내게 찾아온 이유는 다양할 테다. ‘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도 한몫했다. 무슨 이유로 시작이 되었든 자비롭지 못한 이 우울증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뿌리째로 완전히 뽑아내겠다는 의지로 내 몸과 마음은 똘똘 뭉쳤다. 우울증과는 영원히 안녕하고 싶었다.
책, 논문, 칼럼… 할 것 없이 우울증에 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마음이 절뚝거리고 있었기에 내 안전과 내 행복을 우선 순위에 두어야만 했다.
내가 견뎌낸 극심한 우울증 해결 방법은 아래와 같다.
가장 첫 번째로 한 일이 멈추는 것이었다. 그리곤 관찰을 했다. 내 감정, 지금 처한 상황에 동요하지 않고 보기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예전 같으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당장 달려들어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지나간 날과 오지 않은 날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리셋을 하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멈춤이 있어야 생각에 뒷짐을 쥐여줄 수 있고 마음의 완충지가 생긴다.
두 번째로 선택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차근히 듣고 읽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것이 안에 들어왔다. 세상을 보는 삐딱한 시선, 만사 귀차니즘, 지나간 일에 연연하는 미련과 끝이 없는 후회, 뭘 해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 허기가 진 감정, 남 탓만 하는 나쁜 생각, 사업 파트너에 대한 실망과 분노,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초조함... 이 모든 것을 버려 보기로 했다.
못난이, 미련퉁이, 게으름뱅이, 투덜이, 겁쟁이 뒤로 숨지 않고 책을 통해 나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최고가 되기 위해 일 관련 서적이나 자기계발 책을 가까이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에는 비즈니스, 리더십, 직원들의 역량 강화 및 팀 연대강화, 세일즈, 자기 계발, 마케팅, 브랜딩 등 사업에 관련된 책만 읽었다. 나의 초점은 항상 일, 실력 향상, 자기 계발, 시간 관리에만 맞춰져 있었다.
책 읽는 패턴을 바꿔보기로 했다. 이번엔 전혀 읽지 않던 분야를 선택했다. 심리학, 철학, 에세이, 우울증과 관련된 뇌과학 등을 골랐다. 더 앞으로 가도록 채찍질하는 책이 아니라 나를 보듬어줄 따뜻한 말들로 감정 자양분을 응급 보충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책 한 권 다 읽어내는 데 거의 3주가 걸렸다. 작정하고 읽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디기만 했다. 한국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어 전자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전자책이 주는 불편함에 읽고 싶은 마음마저 자꾸 도망갔다. 귀차니즘 대마왕이 된 나를 어르고 달래고, 또 어떤 때는 질질 끌어다 전자책 앞에 세워놨지만 읽는 데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때마침 읽는 책이 번역본이었기에 서점으로 달려가 원서를 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책은 넘기는 게 제 맛인데 그 기쁨마저 없다.
예전 같으면 이미 진작에 그만뒀을 테지만 ‘다르게 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내 안에 사는 왕 투덜이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정신 놓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귀차니즘 대마왕까지 이기고 나니 그 빈자리를 포기 악마의 속삭임이 채웠다.
‘그만둬! 그런다고 달라지지 않아!’
이런 속삭임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해보자고 마음을 달랬다.
습관이 형성된다는 21일. 딱 21 일만 해보자고 매일 아침 마음을 토닥였다.
2주에 한 권 읽던 내가, 1주일에 한 권씩 읽게 되고, 3~4일에 한 권을 읽고, 에세이는 한두 시간 만에 읽을 수 있었다. 뇌과학 관련 서적들은 3~4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인상적인 부분은 메모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상적인 글귀를 읽으면서 내 안에 들어오는 감정과 생각을 적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불교용어로 사람의 다섯가지 욕망과 일곱가지 감정을 말하는 오욕칠정 (五慾七情)이 있다.
오욕 (五慾)은 재물욕 (財物慾), 명예욕 (名譽慾), 식욕 (食慾), 수면욕 (睡眠慾), 색욕 (色慾)이다. 칠정은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을 일컫는 말이다. 삶이 주는 희노애락애오욕 (喜怒哀樂愛惡慾),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이 칠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고 한다.
문제는 감정이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다. 아주 깊게 그리고 매일 들여다보아야지만 진짜 속 감정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감정을 종이에 적으니 마음에 숨구멍이 생긴다.
딱 21일 하려 했던 책 읽기가 1년이 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100여 권의 책을 읽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힘이 생겼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을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읽는 책 한 권 한 권 소중하게 다루고 생각의 기록으로 온전히 소화해 내 것으로 만들었다. 정말 도움이 된 책들은 3독 4독을 해서 내 인생에 가져오고 싶은 내용을 정리하고 그 말들을 행동에 옮겼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보기도 했다. 또 다른 감동을 얻기 시작했다. 책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책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내 안에 쌓은 감정은 전부 다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었다는 것이다. 상황이나 사람이 내게 어떤 자극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극과는 별개로 나 혼자 시작한 감정들이고 반응들이었다. 내가 이 감정들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다.
자신에게 중요한 이야기들이 모여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한다는 ‘정체성의 심리학’이 내 서사를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내 인생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줬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수많은 경험 속 우리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그 경험의 이야기를 어떻게 자신의 삶에 옷을 입히느냐가 우리를 결정한다.
우리 스스로가 영화감독이다. 지금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야기를 쓰면 된다. 우리 안에는 이야기 주인공이 되어줄 페르소나가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 있다. 페르소나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가면 같은 것이다.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지정해주는 것이다. 디자이너, 엄마, 남편, 부인 같은 것 말이다.
그 많은 페르소나에서 난 그저 나에게 딱 맞는 편안한 옷을 찾아 입듯이 내가 좋아하는 페르소나만 다시 모아보기로 했다. 내 정체성을 내가 다시 선택하고 지정하고 그 페르소나를 지켜나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못난 내 모습들도 분명 있지만, 그 모습들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다시 내렸다.
한때 사회적 지위나 직업으로 정의된 모습이 나를 대표한다 생각했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었다. 사회적 지위가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난 훨씬 더 자유롭고, 나만의 진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내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어려운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끝날 줄거리를 짰다. ‘어떤 도전이 실패로 끝난 것도 있지만 좋은 교훈을 뼈저리게 몸으로 배웠다’로. ‘결국, 큰 노력 끝에 어려움도 아픔도 잘 견뎌 내었고 행복을 찾아냈다’라는 마무리로.
내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찬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다양한 감정을 품은 내 안의 여러 페르소나가 신이 났다. 모자람도 넘침도 그대로 인정했다. 토닥토닥 다독여 주니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토라진 내 모습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내 안에서 한껏 잔소리해댔던 찌질이, 걱정대마왕, 왕투덜이, 극귀차니즘, 겁쟁이들도 이젠 예뻐 보인다.
성인 자아실현과 발달에 관한 탐구 프로그램을 만든 게이루스 박사는 ‘우리를 위축시키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정한 자기 모습을 잃어버리면서 그 세월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는 말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난 사회와 타협하며 ‘나쁘지 않은 나’로 살고 있었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있었다. 안정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 선택은 자기 위안이고 자기 위로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게으름이었다. 두려움이었다. 내가 만난 우울증은 나도 모르게 ‘내 진정한 모습’을 어딘가에 놔두고 ‘그저 그런 나’에 안주하며 살면서였다.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상황’을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계속 유지한다면 결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은 오지 않는다.
내 욕심이 컸다. 바라는 것이 억지를 부린 욕망이었다. 완벽한 나, 완벽한 배우자, 완벽한 부모, 완벽한 직장인, 완벽한 사업가로 완벽하게 살고자 에너지를 소비했다. 지나보니 난 진정으로 ‘완벽’하다는 그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결코,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완벽한 사실은 우리가 불 완벽하다는 것이다. 안 완벽해지기로 했다.
억지를 내려놓으니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속살을 들여다보게 된다. 진정한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들여다보게 된다. 삶이 잠시 멈춰 있다고 하더라도 내 진정한 모습도 같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매일 매일 내가 사랑하는 모습을 불러내 한 걸음씩만 움직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변화는 한 번에 한 걸음씩만 하면 됐다.
나의 날개를 치료하는 시간이었다.
나뭇가지가 부러질까봐 걱정하지 말자!
우리의 날개를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