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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Feb 14. 2024

상황 글제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13화>

'스토리 설계자'라는 책을 읽다 보면 152페이지 무렵에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짖는 개'라는 단어를 학생들에게 제시를 해보았고, 이 단어 하나 가지고 학생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자기 안에서 꺼내어 보여주었다. 어떤 학생은 여섯 살 무렵 하굣길에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무시무시한 핏불을 떠올렸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키우던 프레드라는 이름의 바셋하운드를 떠올렸고, 또 다른 학생은 이웃집에서 키우던 개를 떠올리고 그 개가 밤새 짖어대던 소리를 떠올리며 자신의 불면증과 아내를 떠올렸다.  


작가는 사람들마다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기에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다른 심상을 떠올림을 말한다. 그리고 그 심상이 불러오는 느낌 또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굣길에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개를 떠올렸던 사람은 그 시기에 자신이 어떤 옷(체크무늬 민소매 원피스)을 입고 있었는지를 자세히 떠올렸다.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향해 반갑게 짖으며 달려와주던 개가 어떤 모습으로 짖었는지, 주인을 보며 어설프게 춤을 추던 모습까지 기억해 냈다. 그리고 이런 느낌들은 이후 사람들의 삶에 각기 다른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단어를 가지고 무언가를 연상한다. 연상은 자신의 경험과 관련 있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글을 쓰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기도 하며 간접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지점 때문에 글이 멋있고,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같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편 '짖는 개'라는 두 단어를 들었을 때 아무도 절대 떠올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늑대와 근연 관계에 있는 가축화된 포유류로서 매우 다양한 품종이 있는 동물"일 것이다. 개의 사전적 정의, 즉 '객관적'이라고 하는 일반적 사실이다.

요컨대, 우리는 어떤 것을 떠올리거나 어떤 행동을 할 때도 절대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다.

-리사 크론 '스토리 설계자' 153페이지 발췌

이 이야길 보고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기뻐해도 좋다.

당신은 문예창작 실기의 심연을 보지 않은 사람이다.


문예창작과 실기시험에서 학생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글을 잘 써야 하고, 

당연한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써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당연한 것조차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글의 주제는 '상황글제'이지만, 앞서 책 인용까지 해가며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글제를 보고 '일반적 사실'만을 떠올리거나 그 조차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라는 것은 언제나 출제 의도가 있다.

문제를 푸는 사람들은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글제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다. 단어나 짧은 문장이 아닌 상황 자체가 나오는 글제다.

인물과 배경, 그리고 사건이 포함된 상황이 한 문단 정도의 짧은 글로 제시되고,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은 같이 제시되는 조건(몇 글자를 써야 하는지, 어떤 요소를 글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등)을 유의하며 글을 써야 한다.


기숙사에서 6개월을 함께 지낸 룸메이트가 아파서 서술자인 내가 도와주게 됩니다. 늦은 밤중이고 119가 출동해서 오는 중입니다. 서술자는 그 과정에서 룸메이트가 인공지능 로봇임을 알게 됩니다. 지난 6개월 간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사람과 다름없는 로봇. 두 인물의 관계를 회상하는 주요 사건을 현재의 상황과 연관시켜 서술하는 산문을 쓰시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20년도 수시 실기 산문 부문 글제


201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백일장이나 대학교 실기에서 나오는 글제는 대부분 단어이거나 짧은 문장이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상황글제는 이제 대학교 실기 글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왜 이렇게 상황글제가 늘어났는가?


나는 이 이유를 두 가지로 본다. 

1. 문학적 상상력을 보기 위하여.

2.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문제를 출제하고, 평가했던 교수님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문학적 상상력'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원하는 바는 이 것이다. 문학적인 상상력. 

많지는 않지만 10년 넘게 몇몇 학생들을 내가 직접 만나보고 지도해 본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의 상상력은 문학적이지 못하며, 일반적인 지식만 머릿속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짖는 개'라는 것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하라고 하면,

자신의 삶에서 짖는 개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이 어떤 것이 있는지, 짖는 개가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짖는 개는 자신의 삶(혹은 타인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짖는다', '개'이 두 단어에만 집중할 뿐이다. 


개는 짖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운다고 해야 하나요?

개는 종류가 많죠. 말티즈도 있고, 치와와도 있죠.


자기가 아는 지식선 안에서 몇 마디 말을 하고는 '글을 못 쓰겠어요.'라고 시무룩해지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그런 학생들이 '상황글제'와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아무것도 못쓰게 되어버린다. 


'단어글제'에만 익숙한 학생들이 '상황글제'를 처음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상황글제를 보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갈팡질팡하다가,

너무 흔한 내용 밖에 생각이 안 나서 글쓰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처음 '상황글제'에 대해 가르칠 때 내가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있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라. 상황글제를 왜 냈을까?'

 

교수님들(어찌 보면 학생이 쓰는 글의 첫 번째 독자이기도 하다)이 학생에게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학생의 문학적 상상력을 본다고 하는 것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상황글제에는 세 가지 요소가 무조건 들어간다.

'인물(캐릭터)', '배경(장소나 시간)', '주요 사건이나 소재'


독자는 언제나 작가에게 이러한 것들을 원한다.


'얼마나 신선한 캐릭터를 제공하는가'

'얼마나 자세하게(개연성 있게) 썼는가'

'얼마나 흥미로운(새롭거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보여주는가'


글에서 인물을 잘 다룬다는 것은 신선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글에서 배경을 잘 다루게 되면 자세하게 글을 쓴다는 인상을 주고(좋은 묘사나 표현을 통해서), 확실한 지식과 함께 글을 구성하는 능력 또한 보여줄 수 있다.

남들과 다른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작가가 얼마나 좋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상황글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좋은 작가의 자질들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는 글제이다.


앞서 상황글제가 예전에 비해 늘어난 가지 이유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지나갔었다.


1. 문학적 상상력을 보기 위하여

2.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다음 글에서는 이 중 2번째 이유인 '시대의 흐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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