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12화>
다들 글은 혼자 쓰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글은 혼자 쓰는 게 아니다.
혼자 사색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깊이 쓰는 것을 즐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글은 혼자 쓰는 것', '작가는 고독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결국 글이라는 것은 '읽는 사람(독자)'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혼자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작가들은 대부분 글을 통해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들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독자를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독자의 말을 들으란 말이 아니다. 독자의 댓글이나 훈수에 휘둘리라는 말이 아니다.
독자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지 않고, 억지로 다른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작가는 타인이 자신의 글을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라면, 나 혼자 생각을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작가에겐 자신 외 다른 존재와 함께 하는 브레인스토밍이 도움이 되곤 한다.
요즘 어리고 젊은 친구들은 챗GPT를 활용하여 브레인스토밍을 하고는 하지만, 라떼는 릴레이 소설을 쓰는 것을 주로 했다. 요즘 챗GPT를 통해 아이디어나 문장이 정말 잘 나온다 하더라도, 인간의 독창성이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더 재미있고 좋은 내용이 많이 나오곤 한다.
릴레이 소설 쓰기는 글을 쓰다가 막혔을 때,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모르겠을 때 사용하기 참 좋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시기에는 발상이 안되거나 글의 흐름을 못 잡을 때가 있는데, 이때 릴레이 소설을 써보면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감을 잡기 쉽다.
글을 좀 써본 학생들도 글을 쓰다 보면 결말이 산으로 가거나 잘 완성이 안되거나, 혹은 중단편 소설을 쓰다가 내용이 지루해져 슬럼프가 올 때가 있다.
글이 완성이 안되거나, 글 연결이 잘 안 될 때 그리고 타인(독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힘들 때.
이 때는 릴레이 소설 쓰는 게 도움이 많이 된단다.
릴레이 소설 쓰기를 수업에서 하게 되면
학생이 타인이랑 호흡을 맞추며 같이 문장을 연결시켜 소설을 완성시키다 보니
문장연결, 집중력 강화, 그리고 독자들의 시선을 인식하기에 아주 좋다.
1대 1 수업을 할 때는 간단한 소재나 플롯, 스토리라인은 학생 혼자 생각하되, 학생의 발상에 맞춰서 나와 함께 한 문단씩 이어가며 소설을 써보고는 한다.
(발상을 할 때는 아래 네 가지를 확실히 넣어서 생각해 보도록 지도한다.)
인물:
배경:
사건(상황):
표현하고 싶은 주제:
그러면 학생은 고민을 하다
예전에 나는 학생에게 '오늘의 날씨'라는 글제를 주었고, 학생은 그에 따라 인물과 배경, 사건이 있는 스토리를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학생은 '오늘의 날씨'라고 하면 '아나운서'가 떠오르고, 자신이 확실하게 잘 쓸 수 있는 것은 '방송부 아나운서'밖에 없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학생의 생각이 멈춘다.
나는 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학교 방송부 아나운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뭐지?'
학생은 '발음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발음이 안 좋은 이유는 뭐지?'라고 물어보자 학생은 '말투가 고정되어 있는 애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이내 '사투리'라는 소재를 이끌어내었다.
학생은 고민을 하더니 아래와 같이 스토리라인을 완성했다.
학교 방송부원인 2학년, 아나운서가 꿈이라서 들어왔지만, 사투리를 못 고쳐서 언제나 메인 방송을 1학년이나 동기한테 뺏기고, 가장 짧은 오늘의 날씨 소개만 하고 있다. 말투가 언제나 콤플렉스. 말투를 교정하려고 하지만, 사투리가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 이유가 바로 집에서 매번 사투리를 쓰는 가족 때문이라 생각하는 여학생. 어느 날 집에 가서 가족 (할머니 혹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고, 후회를 하는데, 가족들이 사투리를 안 쓰려고 하는 어떤 계기로 인해 사투리가 자신의 색깔이고 중요한 것이란 것을 깨닫고 마지막에 사투리로 날씨소개를 하게 된다.
나는 이걸 아주 좋은 스토리라고 학생에게 칭찬을 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준다.
그래도 학생은 쉽게 첫 문장을 쓰지 못한다. 발상은 쉽게 되더라도 이야기 구성을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런 타입이었다. 이 경우에는 내가 먼저 소설의 운을 띄워준다.
나는 학생과 한 문장에서 한 문단 정도 양을 정해놓고 서로 번갈아가며 소설의 문장을 주고받는다.
(예)
"자, 본방 30초 전입니다. 기술부, 시그널 뮤직 준비하시고요. 아나운서, 스텐바이 큐!"
"안녕하세요! 수요일 점심방송 아나운서 이진선입니다. 다들 점심 맛있게 드시고 계신가요? 오늘은 수요일, 잔반 없는 날이죠? 방송실까지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네요."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어본다. 그리고, 따라 한다. 안녕하세요. 학우 여러분. 수요일 점심방송 아나운서 김주영입니다. 다들 점심 마딛게 드시고 계신가요? 아 또 혀를 씹어버리고 말았다. 마딛게, 마싯게, 맏있게, 도대체 왜 이 발음이 안되는 걸까? 맛있게, 나보다 한 살 어린 저 후배는 아주 맑고 또렷하게 맛있게라고 발음한다. 후배의 혀 끝을, 입모양을 보아도 모르겠다. 나랑 다른 것이 무엇일까. 나는 아무리 발음해도 단어가 맛있게 나오지 않는다.
학생과 짧게는 한두 번, 길게는 네다섯 번 문장을 주고받으면 된다. 아직 뇌가 활성화되어 있는 어린 학생들은 몇 마디만 주고받고도 자신만의 글을 금방 완성시키곤 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비단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브레인스토밍, 그리고 릴레이 소설 쓰기. 이 방법은 글이 막혔을 때, 내 생각이 막혔을 때 더 좋은 길로 나아가게 만들어주는 아주 고마운 방법이다.
한 가지, 이 이야기와 이어지면서도 잘 맞지 않는 잔소리를 덧붙이자면.
정말 글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니 제발 작가가 되겠답시고 세상과 단절한 채 혼자 글을 쓰지 말자. 나중에 다른 글에서도 말하겠지만 혼자 글을 쓰는 것은 독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