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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May 02. 2024

이야기 추천 05. 시대적인 소재에 관하여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20화>

2005년부터 매년 꾸준히 백일장에 나갔고, 2010년도에 입시를 치뤄 실기시험을 통해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약 6년 동안 많은 글제들을 만났지만, 기억에 남는 글제들이 있다.

그 글제들이 특이하거나, 인상 깊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매년, 꼭 반복되는 글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과 2009년 사이, 촛불이라는 글제가 그렇게도 많이 나왔다.

그럴 시기였다. 시대가 그랬다. 

많은 창작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고, 신문에도 언제나 촛불이 등장했다.

글제를 내는 사람들은 언제나 창작자 아니면 교수들이었고,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글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긴 했지만,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그 시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쓴 것이 역사서이고, 그 시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쓴 것이 문학이다.'

권력도, 명예도 없는 소시민적인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아가며 자신의 주관을 담아 쓰는 글이 문학이다.


역사에 사실적인 시대의 모습이 간략하게 기록된다면, 문학에는 작가의 감정과 주관적인 의견이 담긴 이야기가, 생생하게 묘사가 된 그 시대의 현실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다른 나라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여러 사건들은 숫자 혹은 이름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3월 1일, 6월 25일, 4월 3일, 5월 18일, 4월 19일, 4월 26일.

00 사태, 00 사건, 00 참사,  00 혁명, 00 운동.


셀 수 없는 많은 날짜와 사건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몸에 큰 상처를 입히고 지나갔다.


한 시대를 할퀴고 지나간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글을 쓸 때는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번째로, 희생자나 피해자들을 또다시 상처 입히는 표현을 쓰지 말 것.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싶거나, 글로 표현하고 싶다 하더라도 참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말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본인의 자유이지만 결국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 상대방을 상처 입히거나,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말,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두 번째로,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래는 내 가장 오래된 문우이자, 내 글의 가장 좋은 비평자, 그리고 내가 제일 존경하는 작가인 내 친구가 해준 말이다. 


'10년 이내, 특히 작가가 직접 경험한 사건을 다룰 때는 주의를 해야 한다.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글을 쓰며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그래야 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한 걸음 뒤에서 사건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표현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의 감정을 살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읽을 독자가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철저하게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일어난, 시대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라면 특히 공들여 생각하며 써야 한다.

특히, 잊지 않고 싶어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시대적인 소재를 다룬다면, 작가는 지나치게 슬퍼해서는 안된다. 작가가 지나치게 슬퍼하면 독자는 오히려 냉소적이 되기 마련이다.'


맞는 말이다. 시대적인 소재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책임감도, 감정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작가가 쓰는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지게 된다면, 그것을 보며 비웃거나 사건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도 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였을 때, 시대적인 소재를 다루는 이야기를 추천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대한 감성적이지 않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감성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 정도를 내가 평가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최근 10년 일어난 사건은 제외하고,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을 담고 있는 이야기만, 최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여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이현 '삼풍백화점'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날, 그날, 아주 찰나의 시간에 일어난 비극을 담은 이야기.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를 느낄 수 있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시리즈

-근현대사를 살아온 작가의 삶이 담겨있는 자전소설. 세상이 변하고, 전쟁을 겪고, 가족의 죽음을 경험하고, 온갖 절망 속에서 담담히 살아가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깊고 잔잔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천운영 '생강'

-소설 '생강'의 주인공도,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도. 어찌 보면 사건의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인물들이며, 그렇기에 독자에게 그 사건의 참담함을 더 절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 나는 천운영 작가의 문장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천운영의 소설에 나타나는 모든 문장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로 세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더더기 없고, 그러면서 아주 아름답다. 고문기술자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한국 근현대사를 살았던 잔인함과 권력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강풀 '26년'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웹툰. 위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역사적인 사건의 중점이 되는 인물들로 이루어지기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의 능동적인 행위로 진행이 되는 웹툰이다. 죽은 사람보다 더 슬픈 것은 남은 사람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전달하는 이야기야말로, 더 큰 분노와 슬픔과 절망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위의 이야기 외에도, 10년 이내 일어난 사건이나 다른 사건에 대한 소설을 읽고 싶다면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 이후에 출간된 소설집(문학상 수상집들을 봐도 좋다)을 보거나, 사건이나 날짜+소설(혹은 시, 웹툰, 아무거나 괜찮다. 보고 싶은 장르를 같이 검색할 것.)을 검색해 보면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여기서 깊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작품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많다. 흥미로운 소재라는 뜻이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왜곡되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많다. 문예창작과 실기 시험에서 시대적인 내용을 담은 글제들이 간혹 나오고, 수업시간에도 자주 다루어지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작가라면 시대적인 소재를 담은 이야기를 읽거나 쓸 때, 주의를 하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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