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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May 16. 2024

이야기 추천 07. '만약에'에서 시작하는 세계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22화>

대학교 신입생 때, 문예창작 수업시간에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수업에서 우리는 해리포터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스토리가 없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이 안 나오는 이유는 대중적인 스토리가 없어서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 때조차도 일본 만화 스토리를 사 와서 쓴다, 일본에서 스토리를 사 와서 쓰는 것은 자존심 상하지 않는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젠가부터 '한류'라는 단어가 나타났고, 우리나라 드라마나 웹툰 혹은 웹소설들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갓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공수업에서 '해리포터' 수준의 소설이 탄생하진 않았지만, 그 수업을 듣던 내 마음속에는 '스토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스토리가 시작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대부분 스토리는 작가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작가가 경험한 것을 가공 없이 그대로 전달한다면 '에세이'가 되는 것이고, 작가가 경험한 것(여기서 경험이라는 것은 직접 경험한 것들 뿐만 아니라, 책을 읽거나, 누군가에게 듣거나 하는 등의 간접경험도 포함된다)들에 상상력을 붙이면 '소설'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소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것은 바로 '만약에'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내가 만약에 그때, 이런 행동을 했더라면.

만약에 세상에 마법이 있더라면.

만약에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더라면.

만약에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더라면.

만약에 주인공이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만약에'가 존재한다.

'만약에'에서부터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될까?


'만약에'라는 상상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누굴까?

나는 '현실'에 물들지 않았으며, '순수함'을 가진 존재들이다.


어른이 아닌 독자들을 위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소설들 중에서 나는 특히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상상의 세계는 '동화'나 '청소년 소설', 그리고 '판타지'나 '호러' 같은 장르 소설에서 특히 다채롭게 펼쳐진다.


'만약에 이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어떨까?'


유년시절에 만나,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읽게 되는 '해리포터 시리즈',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외국 판타지 소설부터. 청소년 시기에 재미있게 읽었던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 내가 어릴 때는 왜 이런 동화책이 없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김용세, 김병섭 작가의 '신기한 맛 도깨비 식당'까지. 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법'을 소재로 하는 대중적인 소설은 해리포터 시리즈 정도였지만, '만약에 이 세상에 마법이 있다면 어떨까?' 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수 없이 많다.


누구나 어린 시절, 마법을 쓰는 자신을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기에 마법이 나오는 이야기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다. 처음 '만약에'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마법'에 대한 것을 한 번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학생들의 상상력을 넓혀주기 위해, '감정'을 주제로 글을 쓰게 할 때가 있다. 기쁨, 슬픔, 분노, 우울 등 가지각색의 재료들이 있지만, 어린 학생부터 나이가 있는 학생들까지 모두가 가장 재미있어하며 잘 쓰는 것은 바로 '공포'다.


어린 시절, 괴담을 찾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비 오는 날 교실에서 친구들끼리 그 당시 유행하던 '빨간 마스크'에 대한 괴담을 나누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스스로 공포영화를 보며 무서운 이야기를 찾는다.


'만약에 귀신(혹은 다른 두려운 존재)이 우리 삶에 들어온다면?'


공포만큼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하기 쉬운 감정이 또 있을까?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신이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형상만 보고도 두려워한다.


공포의 형태는 다양하다. 저주받은 망령이나 원한이 있는 귀신일 수도 있고, 악의를 품은 사람의 행동이나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살인자의 모습일 때도 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괴물의 형상일 때도 있고, 좀비나 뱀파이어 같이 고전적인 괴물일 수도 있다.


가장 다양한 공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가를 뽑아보라 한다면 나는 '스티븐 킹'이라 대답할 것이다. '미저리'와 '샤이닝', '옥수수 밭의 아이들'에서 인간의 폭력과 광기,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공포와 혐오를 다루었다면, '그것'이나 '미스트', 그리고 '예루살렘 롯'과 같은 여러 단편에서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 그 삶을 파괴하면서 느껴지는 공포를 다룬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나 대프니 듀 모리에 등 다른 공포소설가들도 있지만 스티븐킹은 남다르다. 그의 상상력은 굉장히 넓게 퍼져나간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재는 한 번 읽어보고 공부해 볼 만하다.

(국내에 출판된 소설집들은 번역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인데, 소설이 읽기 힘들다면 스티븐 킹 소설 원작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그의 소설이 왜 영화화가 많이 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소설이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로 재창작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적이고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호러 소설을 읽고 싶으면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와 달리 최근에는 한국 작가들이 쓴 호러 소설이 많이 나와서 아주 좋다.


정보라의 '저주 토끼', 조예은의 '트로피컬 나이트', 김동식의 '회색 인간',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안전가옥 출판사의 '호러' 단편집까지. 한국 작가들이 쓴 다양한 호러 소설들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소설을 읽고, 내 삶에 들어오는 공포의 형상을 상상해 보자. 내가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글로 쓰고, 형상화를 시켜보면 심리적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을 좀먹는 불안이나 공포라는 감정은 형상이 없을 때는 거대해 보이지만,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려 뚜렷한 형상을 만들어주고,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확실히 직시하게 된다면, 내 삶은 좀 더 편안해지게 될 것이다.


2024년 현재에 와서 보면 '마법'을 소재로 하는 동화랑 소설도 많고, 웹툰이나 웹소설도 많이 있다. 나는 때때로 대학교 신입생 때 들었던 그 수업을 떠올린다.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던 그 교수님은 잘 계실까. 지금 여러 가지 장르의 소설이 나오고, 한국 작가가 만든 스토리가 웹소설이나 웹툰이 되고, 그 웹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나 영화가 되고, 세계 사람들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무엇이라 하실까.


순수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판타지, 호러, 로맨스, 로맨스, 무협 등 여러 장르의 스토리를 가진 소설들이 많이 등장한 지금. 스토리로 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지금이 그 교수님이 바라던 순간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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