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23화>
처음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나는 언제나 '인물, 배경,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이는 입시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글을 분석하며 읽고 좋은 글을 쓰게 하기 위함이다.
실기 시험에서 상황이나 긴 문장 형태의 글제가 나오면 그 문장 안에서 '인물, 배경(시간, 공간), 사건'을 먼저 찾아보라 하고, 비어있는 부분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우라고 한다.
소설이나 만화, 웹소설, 웹툰, 영화, 드라마 등의 스토리가 있는 미디어 작품들을 볼 때도 저 세 가지 요소들을 꼭 살펴보라 이야기한다.
나는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이 말을 굉장히 어렵게 받아들이는 친구들이 간혹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른 거 생각 말고 그저 인물 하나만 생각해.'
매력적인 인물을 만든다는 것.
나는 이 것이 작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재능이라 생각한다.
이야기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어 낼 수 만 있다면, 배경이나 사건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따라오게 되어있다. 인물이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다면 이야기에서 장치로 작용하는 배경적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배치가 된다. 인물이 확실한 신념과 특성을 가지고 있고, 입체적으로 행동한다면 사건 또한 흥미롭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이야기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는 모든 작가들이 '매력적인 인물(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당연하지만 다들 깨닫지 못하는, 혹은 잊고 지내는 말을 한마디 해주고 싶다.
'미디어를 봐야 한다.'
바야흐로 OSMU(One Source Multi Use)의 시대이다.
좋은 소설을 쓰거나 멋진 스토리를 내놓으면, 그것은 곧 웹툰이 되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가 되기도 한다. 많은 소설(과 웹소설)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출판되고, 웹툰이나 드라마나 영화가 되길 바란다.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고,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보이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수입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해보겠다.
소설이나 웹소설을 읽는 사람이 더 많을까, 웹툰(이나 만화)과 드라마(혹은 영화와 같은 영상작품)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을까?
당연히 웹툰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이 더 많다. 활자로 된 매체보다는 역시 그림이나 영상으로 된 매체가 남녀노소 누구나 다 쉽게 흥미를 갖고 빠져들 수 있다.
내가 학생일 무렵 문예창작과에서는 '장르소설', '대중문학', '인터넷 소설', 그리고 가끔은 번역체가 가득한 '일본소설'까지, 마치 이단처럼 취급했다.
그저 '순수문학'만이 소설이라는 것처럼 가르치는 선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다 보니 문예창작과(특히 소설 전공) 학생들은 작가협회에 이름을 올리거나 정당한 절차(신춘문예나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를 걸쳐서 등단한 작가들의 순수문학만 공부했다. 자연스레 우리는 순수문학을 쓰는 법을 익히고, 순수문학의 틀에 갇히게 되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선 교수가 추천하는 수많은 순수문학작품들을 읽거나 분석하거나 필사해야 했다. 영화, 만화, 드라마. 이런 것을 본다고 하면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가.
순수문학만을 고집하던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들도 알아서 잘 살고 있겠지만, 결국은 순수문학을 읽지 않던 반항아들이 더 성공하였다.
순수문학을 가르치던 선생은 투잡, 쓰리잡을 고민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선생에게 반항하며 인터넷 소설을 읽고 쓰던 제자가 웹소설로 대박을 터트리며 살아가고 있다. 현실이 그렇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학생들에게 순수문학만을 읽히지 않게 되었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할 수 있거나 수려한 문장능력을 갖게 되는 등 순수문학도 장점이 많지만, 그것만 읽으면 결국 편협한 시각과 작품관을 갖게 되고, 작은 세계 속에서 살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은 미디어 작품을 보라고 한다.
만화를 좋아하면 웹툰이나 만화책도 좋다. 영상을 좋아한다면 드라마도 좋고, 영화도 좋고, 혹은 스토리가 있는 광고도 좋다. 일본 것도 좋고, 한국 것도 좋고, 미국 것도 좋다. 최대한 다양하게 보되, 깊이 생각하면서 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무엇을 써야 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알게 된다.
만약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대중적인 인기'와 '안정적인 재산'을 얻길 원한다면, 그런 작품들을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깨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에는 매력적인 인물이 확실하게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다양한 작품을 보는 것 외에, 우리가 매력적인 인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로, 나는 단순하게 검색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입체적인 인물'을 검색해 보자. 그러면 입체적인 인물을 쓰는 방법부터 입체적인 인물이 나오는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좀 더 자세히 검색해보고 싶으면 자신이 원하는 장르를 같이 검색해 보자. '드라마 입체적인 인물' 이런 식으로 검색을 해보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입체적인 인물이 예시로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들 위주로 골라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읽어야 하는 책들도 많고, 봐야 하는 드라마도 많다. 학교 선생님부터 인터넷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까지도 온갖 좋은 작품들을 추천해 준다. 그 걸 다 보는 것도 좋지만, 세상 참 좋은 작품 많은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보고 읽고 쓰는 재미를 먼저 느껴보자. 그게 좋은 인물과 스토리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작가가 글 쓰는 것을 즐거워해야, 읽는 사람도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두 번째로, 작법서는 추천도 하고 추천을 하지 않기도 한다.
내가 학생일 때만 하더라도 작법서가 많지 않았다. 조지 오웰이나 스티븐 킹, 퍼트리샤 하이스미드 등의 외국 작가들이 적은 작법서들이 간혹 번역되어 출판되긴 했지만 그 수가 적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장르를 알려주고 그에 맞는 창작법을 알려주는 작법서,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작법서 등등 다양한 작법서가 있다. 텀블벅 같은 사이트에서도 작가들이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작법서를 내주어서 작가 지망생들의 선택지가 많아졌다.
앞서 내가 추천도 하고 추천을 하지도 않는다고 했던 말은 작법서가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작법서를 읽었는데, 그 작법서대로만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자신의 글을 쓰지를 못하게 되었다.
작법서가 정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성공한 작가의 비법이 적혀있다는 책은 작가의 지망생들을 현혹시키기 쉽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한데, 작법만을 따라 하다 보면 기교만 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성공한 작가의 비법을 우리가 무시해야 하는가? 아니다. 읽어보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들은 수용하는 것이 좋다. 무조건적으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수용하고 필요 없다 싶은 것은 넘어가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작법서를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세 권이 내 스타일에 맞았다.
오쓰카 에이지가 쓴 '캐릭터 소설 쓰는 법 -살아 있는 캐릭터 만들기'는 내가 학생일 시절, 작법서 불모지였던 때에 나왔던 책이다. 동화를 공부하다 보면 '영국' 작품을, 캐릭터와 스토리를 공부하다 보면 '일본' 작품을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만화 스토리를 사다가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하고, 그런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던 시대도 있었다. 이건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일본의 캐릭터와 스토리 창작 능력은 가히 존경할만하다.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일본이 그때 당시 왜 스토리와 캐릭터가 발전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낸시 크레스가 쓴 '넷플릭스처럼 쓴다'도 재밌었다. 작가의 짧은 비법들이 다양하게 이어지는 글들이 가볍게 읽기 좋았다. 가볍게 읽힌다고 해서 글의 주제나 무게가 가볍진 않았다. 창작가들에게 좋은 팁을 많이 주는 책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는 넷플릭스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리사 크론이 지은 '스토리 설계자'라는 책은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교재로 사용하고 싶을 정도의 책이었다. 예전에 책을 낼 때 신세를 졌던 피디님이 차기작으로 고민하던 내게 추천을 해주셨던 책인데,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향을 잘 잡아주는 작법서였다.
작법서를 읽는 것은 좋다. 하지만 하나 기억해둬야 한다. 작법서대로만 따라 하지 말 것, 그리고 작법서를 읽을 때는 다른 작품을 분석하면서 읽으면 좋다.
세 번째로,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읽어보자.
어떤 작품이든 괜찮다. 내 경우는 만화책을 읽는 것이 좋았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가끔은 내가 굉장히 꼰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작품들보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 작품들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잡설이긴 하지만, 과거에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작품들이 리메이크가 되어서 나오고, 그때 작품을 냈던 작가들이 아직까지도 베스트셀러를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예전 작품이 좋았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 헌터X헌터, 팻숍 오브 호러즈, 금색의 갓슈, 3월의 라이온은 만화책으로,
디지몬 시리즈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그리고 디즈니 픽사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으로 사람들이 꼭 보았으면 좋겠다.
위의 작품들은 고전적인 서사와 캐릭터, 입체적인 인물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가끔 학생들이 착각하는데 입체적인 캐릭터란 외모가 매력적이거나 특이하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다.
입체적인 인물은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과거사, 성격, 인간관계,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보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고,
그런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 대사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입체적인 인물을 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나는 반전이 있고, 예상이 가지 않지만, 공감이 잘 가는 인물을 만든다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미디어를 보는 것이 좋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목표로 하는 미디어들을 보다 보면, 결국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좋은 인물과 스토리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