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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히읗 May 09. 2024

이야기 추천 06. 작가의 삶

문예창작과 꼭 가야겠니? <21화>

남의 삶을 엿본다는 것, 얼마나 두근거리는 일인가.

우리는 SNS를 통해서, 미디어를 통해서, 때때론 친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는 소문을 찾아 헤매며,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기 마련인데, 자신이 선망하는 상대의 삶은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껴질까.


작가들은 자기 안에 넘쳐나는 이야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들은 자신의 상상과 세계를 글에 담아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 자체를 글에 녹여내기도 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에세이를 빼놓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작가로 살고 싶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롤모델로 삼으라고 한다. 


오후 9시에 취침을 하고 오전 4시에 일어나 12시까지는 글을 쓴다. 오후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을 먹고, 1시부터 9시까지는 운동 혹은 집안일, 재즈 듣기, 독서를 한다. 다시 오후 9시에 잠을 잔다. 

글을 쓸 때는 200자 원고지 20매 정도의 글을 매일 쓰도록 노력한다. 글을 쓰기 위한 체력을 만들기 위해 1시간씩은 달리기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가의 중요한 자질로 재능, 집중력과 함께 지속력에 대해 말했다.

자신만의 일상 루틴을 만들어서 매일 행하는 것이 글을 쓰는 비법이며 그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학생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말하면 다들 비슷한 반응이다.


'9시에 어떻게 자요? 작가라면 야행성으로 살아야죠.'

'놀 시간도 부족한데 운동을 언제 해요. 저는 체력이 좋아서 괜찮아요.'

'그냥 한 번에 몰아서 10000자씩 쓰면 안 돼요? 매일 쓰기 귀찮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살아가는 모습은 정말 단순해 보이는 삶이지만, 어려운 삶이다. 나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을 그대로 따라 하고자 노력해 보았지만, 삼일 이상 성공한 적이 없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이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구별하여 일상에서 누리고, 꾸준히 글을 쓰고, 무조건 운동을 해야 한다. 어린 학생들에게 말해봤자 이해를 하지 못하겠지만, 글을 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과 건강이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무조건 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삶은 그가 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등등 그가 쓴 대부분의 수필에서 나타난다. 글을 읽으며 우리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떤 술과 안주를 좋아하는지, 운동을 할 때 어떻게 하는지, 왜 달리기를 좋아하는지, 어떤 재즈를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외국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어디로 여행을 갔다 오고 어떤 것을 느꼈는지,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삶을 엿보고, 그의 취향을 따라 해보고, 그의 삶이 소설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 찾아보다 보면 글을 읽는 재미와 쓰는 재미 모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기호 작가의 '수인'이라는 단편이다. 이 소설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멸망해 버린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해외로 이주를 하고자 하고, 심판관들이 나와서 사람들을 평가한다. 어느 나라로 이주를 하고 싶은지 묻고, 그 나라에서 원하는 직업을 이야기한다. 타국에서 원하는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와 같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다. 작가인 주인공은 프랑스로 이주하고자 하지만, 작가로서의 자신을 증명할 길이 없다. 그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자신의 책이 한 권 있다고 하며 곡괭이를 들고 교보문고로 향한다. 시멘트에 묻혀있는 교보문고를 향해, 존재가 확실치도 않은 자신의 책 한 권을 위해 그는 곡괭이를 들고 시멘트를 판다. 


작가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인가?

소설에 나오는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한 권 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는 남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면서 살아오던 작가였다. 

자격증이 있거나,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직업과 달리, 작가라는 직업은 모든 것이 어중간하다. 작가를 증명하는 서류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력 또한 증명하기 힘들다(자서전 대필이나 수입이 없는 개인 연재, 기간이 짧거나 특정 장소에서 행해지지 않은 개인 수업과 같은 것은 경력으로 증명이 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내가 스스로를 작가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책 한 권을 내고도 사람들은 자신을 작가라 말하기 주저한다.

단독 저서가 아니라서, 차기작을 내지 못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해서.

소설에서처럼 세상이 멸망해 버렸다면, 필명으로 쓴 소설은 증명하기 더 힘들 것이다.


나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에서는 작가로서의 삶을 잔인하게 보여주면서 삶 자체로 '작가'를 증명한다.


나는 작가들의 수필을 좋아한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나 이병률의 '끌림'도 좋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천운영의 '쓰고 달콤한 직업'일 것이다. 


대학교 시창작 시간에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있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모름지기 요리도 잘하기 마련이라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단어'를 잘 골라서 적절한 '문장'을 사용하여 글을 완성하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재료'를 잘 골라서 적절한 '요리법'을 사용하여 요리를 완성한다고.


천운영의 글을 읽다 보면 확실하게 느낀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요리도 잘한다.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다이어트를 포기한 적이 여럿 있었다.

단편소설 '숨'에서 나와 할머니가 함께 먹던 소의 부속들, '눈보라콘'에서 내가 먹던 아이스크림의 감촉을, '백조의 호수'에 나오던 갖가지 음식들과 초콜릿의 향을. 문장 하나하나에 새겨진 그 맛들을 느끼며 나는 천운영의 작품 속에 빠져들었다.


음식 묘사를 사랑하고, 작가의 삶을 사랑하는 내게, 식당까지 차렸던 최애 작가가 쓴 에세이는 얼마나 달콤하게 느껴질까. 심지어 제목이 '쓰고 달콤한 직업'이다. 이처럼 작가의 삶과 음식을 한 그릇에 잘 섞어낸 제목이 어디 있을까.


학창 시절, 천운영의 작품을 필사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 당시 우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젊은 작가이자 파격적인 묘사를 사용하는 천운영의 작품을 필사하기 독려하기도 했다. 필사를 싫어하는 나는 한 번도 천운영의 작품을 필사한 적은 없지만, 대학교 면접을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언제나 천운영의 책을 들고 가고는 했다.


그녀의 단편소설 속에 나오는 세밀하고, 생생하고, 자극적인 묘사들을 느껴보자. 그녀의 삶 속에 녹아든 여러 가지 음식들과 그 맛을 알아보자. 그렇다면 내가 쓰는 글도, 내가 살아가는 삶도 분명 더 좋은 감칠맛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은 작가들의 삶과 연결되는 작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글에 담아보았다.


작가의 삶이 글에 어떤 방식으로 담기는지 보는 것도 좋고, 자신이 꿈꾸는 작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것도 좋다. 그저 흥미로운 타인의 삶을 엿보는 것도 좋다.


작가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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