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1934~ )
기로쿠와 미라이에노 오쿠리모노
기로쿠는 기록이고, 미라이는 미래다. 같은 한자이다. 중화권 문화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은 모두 한자를 사용한다. 읽는 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へ'는 방향을 나타낸다. '~로', '~를 향해'라는 뜻을 해석된다. 'は'와 'の'는 일본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조사이다. 'は'는 '~은' (혹은 '~는')으로 해석되고, 주어 뒤에 온다. 'の' 는 '~의'로 해석되고, 소유를 나타낸다. 위 문장을 직역하면 "기억은 미래로의 선물"이 된다.
'贈り物'는 贈る(오쿠루; 증정, 증여, 수여하다)+모노(物; 물건)가 합쳐진 단어로 '보내는 물건' 즉, '마음을 담아 보내는 선물'을 뜻한다. 보내다는 뜻의 한자는 두가지가 있다. 送る와 贈る, 둘다 '오쿠루'로 읽는다. 같은 발음의 두가지 한자라기 보다는 두가지 한자를 모두 같은 일본어로 읽는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기표와 기의는 임의적이기 때문이다. 贈る는 주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送る는 이동시키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록이란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돕는 행위이다. 인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지길 원한다. 그런데, 기억이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끈임없이 기록을 한다. 글자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사람으로 각각 기록을 한다. 그리고, 훗날 이를 들춰보며 웃는다. 이를 돕는 것이 자신들 후지필름의 소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후지필름의 경영철학과 기업의 사명을 밝히는 문장을 몇개 더 소개하고자 한다.
치큐죠노 에가오노카이스우오 후야시테이쿠.
직역하면 '지구상에서 웃는 얼굴의 숫자를 늘려가자.'이다. 의역하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웃게 하자.'
슬플때보다는 기쁠 때 더 많이 기록을 하는 편이고, 슬픈 기억보다는 기뻤던 기억을 더 많이 꺼내보게 되는 것 같다. 현실은 우울하니까. 기대했던 미래는 아닌 적이 많으니까. 기록을 돕는 필름회사는 필름 제조의 목적을 '사람들을 더 많이 웃게 하는 데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물건을 만들면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히또비또노 코코로가 오도루 카쿠신테키나 기주쯔, 세이힌, 사비스오 우미다시 쯔즈케마스.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는 혁신적인 기술, 제품, 서비스를 계속 창조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는 것', 그것이 혁신의 참 맛이 아닐까 한다.
필름은 멸종위기종이지만 후지필름은 지금도 유일하게 혁신의 힘으로 살아남은 희귀종이다. 코닥과 아그파 등이 근근히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후지필름은 주무대가 사라진 시대에도 본인들의 필름을 납품받던 수요처의 수요를 계속 쫓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의료용 필름, X선 영상, CT/MRI 등 의료 이미징 솔루션을 개발하여 의료분야기업이 되었고, 감광필름과 코팅기술을 확장해 플렉서블 인쇄회로(FPC)와 디스플레이용 재료 및 고기능성 플라스틱을 개발하여 산업재 일반으로 퍼져나갔다. 그외에도 필름 원천기술인 콜라겐, 나노화 기술 등을 활용해 기능성 화장품으로도 다각화하였고, 후지제록스를 인수하여 DX기술회사로도 뻗어나갔다.
후지필름
1998년 매출 1조4,378억엔, 영업익 1,653억엔
=> 2024년 매출 약 3조엔, 영업익 약 2,700억엔.
글로벌 우량기업으로 지속 성장 중.
아그파
1990년대 매출 40억~60억 유로(수조~수십조원대)
2025년 매출 약 10억 유로(약 15조원), 매출 감소 지속
후지필름과 같은 분야로 변화중이지만 성장력은 낮음.
코닥
1991년 매출 190억달러(약 200조원) => 2010년 72억달러로 급감
2012년 파산보호 신청, 최근 30년간 매출 90%이상 감소
후지필름은 지난 90년 동안 특정 가문(창업가)이 경영을 대대로 물려주는 가업승계 형태가 아니라 사내외에서 능력과 실적 위주로 대표이사가 교체되는 전형적인 경영과 소유가 분리되어 이어지는 모델이다. 20세기 초반, 필름 기술을 선도한 것은 미국(코닥)과 독일(아그파)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창업자 아사노 슈이치(浅野修一, 1934~1943)는 플라스틱 원료인 셀룰로이드를 전문적으로 제조하는 기업인 대일본셀룰로이드(다이셀)의 사진필름부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후 다이셀의 사진 필름 관련 자산과 인원을 이관한 '후지사진필름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다. 창업자 스스로도 직원으로 근무하다 분사된 회사의 사장이었고, 최대주주는 모기업이었으므로 후지필름은 줄곧 전문경영인체제로 이어지면서 100년을 맞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창업자 아사노 슈이치는 전형적인 창업가 스타일로 공학/운영/사업의 3박자를 모두 갖춘 리더로 평가받는다. 창업초기에는 외국산 저가 공세와 '일본 국내 영화계의 수입필름쓰기 운동'이란 내수시장 저항에 직면하면서도 당시 근대화와 기술 자립이란 일본 산업계의 흐름속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필름 회사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이후 일본 내 영화, 사진, 인쇄, 과학, 의료 등 다수 분야에 필름을 공급하여 관련 산업 성장의 밑바탕을 제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