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3, 나폴레옹과 조세핀 (1804)
-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 카이사르의 뒤를 잇는 불세출의 정복자이자 전쟁의 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27세 때에 약혼자와 파혼하고 자기보다 6살이나 연상이었던 조세핀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조세핀은 남편이 영국에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처형된 과부에다 애가 둘 딸린 상태였었다. 더구나 당시 혁명정부 실권자 중의 하나였던 나폴레옹의 상관인 폴 바라스의 정부로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파티에서 그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열열한 연애를 시작하였고 드디어 1796년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 나선 사이에 사교계에서 온갖 바람을 피우던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묵인하에 결혼생활을 간신히 이어가게 되었다. 1799년에는 드디어 나폴레옹이 혁명으로 프랑스 통령의 자리에 올랐고, 1802년에는 종신 통령이 되었다. 이로서 나폴레옹은 명실공히 프랑스의 실질적인 제왕이 되었지만, 종신통령이라는 명칭도 싫어했고, 과거 부르봉왕가가 쓰던 국왕이란 명칭도 싫어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이 존경했던 중세 프랑크 왕국의 카알대제와 같이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 드디어 1804년 12월 2일 프랑스 최초의 황제의 탄생을 알리는 우렁찬 북소리의 행진 속에 파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당시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자크 루이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당대 최고의 화가 다비드의 그림으로 영원히 간직하고자 길이 10미터의 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러다보니 그림에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섞여있다. 참석하지도 않은 사람을 그리기도 했고 실제 모습과 다르게 그리기도 했다. 특히 나폴레옹보다 6세나 연상이었고 40대였던 조세핀 황후의 모습을 20대의 매력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그렸으며, 나폴레옹도 키도 좀 더 크고 멋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왜곡한 부분은, 원래 뒤에 앉아있는 교황 비오7세가 왕관을 씌워주어야 했는데 나폴레옹은 교황이 들고 있던 왕관을 뺏어 직접 자기 머리에 썼다. 이 놀라운 상황을 그려야 하는 다비드는 고민 끝에, 무릅 꿇고 있는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어주는 것처럼 보이게 그렸지만, 실제는 자기 머리에 직접 쓰는 장면을 교묘히 그린 것이었다.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다비드는 후에 국회의장까지 올랐다가 나폴레옹 몰락이후 벨기에로 망명하여 생을 마감했다.
한편 유럽 대륙을 호령하던 나폴레옹 황제의 고민은 그의 황제 지위를 세습시킬 아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인 조세핀의 딸과 나폴레옹의 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샤를르를 양자로 입적시켜 후계자를 삼고자 했다. 하지만 1807년 이 양자 샤를르가 병으로 죽게되자 나폴레옹은 아들을 낳기 위해 쇼윈도 부부로 살던 조세핀과 이혼한다. 그리고 러시아 황녀와의 결혼에 합의했지만 러시아 측에서 차일피일 미루자, 결국 나폴레옹은 1810년에 오스트리아 마리아 루이자 황녀랑 재혼하게 되고,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망의 아들을 낳게 되었다.
이후 나폴레옹은 복수로 시작한 러시아 원정에서 60만대군이 만명만 돌아오는 쓰라린 실패를 하고, 라이프찌히 전투에서 대불동맹군에게 또다시 대패를 당한 후 황제에서 폐위되고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 이 때 나폴레옹이 7년전 폴란드 점령시에 애인이었고 절세 미인으로 알려진 마리 발레프스카 백작부인은 나폴레옹의 아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부인 마리아 루이자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친정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가 젊은 남자와 재혼하여 아이를 넷이나 더 낳고 잘 살았으며, 첫 번째 부인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유배 소식을 듣고 몇 개월 만에 자살해 버리고 만다.
++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 Louis David, 1748~1825) <나폴레옹 1세와 조세핀 황후의 대관식> (1806~7), oil on canvas, 621 x 979cm, Louvre Museum
*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나폴레옹을 존경한 베토벤이 그를 위하여 작곡한 3번 교향곡은 원래 제목이 ‘보나파르트’였으나,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자 실망한 베토벤이 제목을 ‘영웅(Eroica)’으로 바꿨다.
https://www.youtube.com/watch?v=cOj0qIRp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