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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샘 Nov 30. 2018

[명화와 역사] 4, 나폴레옹과 고야 (1808)

-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명화로 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4, 나폴레옹과 고야의 유령 (1808)

-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점령하던 19세기초 스페인은 프랑스와 종속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시 스페인 국왕은 1788년 즉위한 카를로스 4세였는데, 카를로스 4세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정사에도 관심이 없어서, 정치는 자신의 왕비였던 마리아 루이사와 그녀의 정부였던 재상 마누엘 고도이에게 맡겨버린 최악의 왕이었다.  

원래 친프랑스 정책을 펼쳤던 고도이는 프랑스대혁명 이후 반프랑스 입장으로 선회했는데, 스페인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프랑스와 불평등한 조약을 맺고 무조건 프랑스의 입장에 동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쿠테타로 프랑스를 집권한 나폴레옹은, 트라팔가해전에서 영국의 넬슨제독에 대패한 이후에 ‘대륙봉쇄령’을 내리고 유럽대륙국가들의 영국과의 무역을 금지시겼다. 그러나 당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진 영국과 무역을 하지 않으면 유럽 각 나라들은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기에, 러시아와 포르투갈은 아예 대놓고 협력을 거부한다.

이를 묵과할 수 없었던 나폴레옹은 스페인에게 포르투갈로 쳐들어가야 하니 길을 비켜달라고 요청해서 스페인의 약속을 받아낸다. 스페인은 프랑스와 맺은 불평등한 조약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 반대할 입장도 못되었지만, 내심 이 기회에 포르투갈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프랑스군대의 스페인 영토 통과를 허락하는 퐁텐블로 조약을 맺게 된다. 이는 결국 프랑스군의 스페인 주둔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스페인 국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래서 1808년 3월에 카를로스 4세의 아들이었던 페르난도왕자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카를로스 4세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처형된 루이 16세처럼 자신도 처형 될까봐 자신은 퇴위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어 페르난도는 페르난도 7세로 즉위하게 된다.

그런데 카를로스 4세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고 나폴레옹에게 자신이 다시 왕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나폴레옹에게 스페인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되었는데, 나폴레옹은 기상천외하게 카를로스 4세와 페르난도 7세 모두 왕위를 포기케하고 자신의 형인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호세1세로 스페인 왕으로 앉힌다. 이에 스페인이 주권을 잃고 프랑스의 지배를 받게 됬다고 생각한 스페인 국민들은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반란이 일어난 다음날인 5월 3일 프랑스 군대는 스페인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를 계기로 스페인 독립전쟁이 벌어져 영국군의 도움을 받아 1813년 프랑스군을 몰아내게 되었다.

고야가 프랑스군이 물러 가고 난 1814년에 그린 <1808년 5월 3일>에서는 당시의 반란을 주제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고자 했다. 왼쪽의 피해자와 오른쪽의 가해자를 대비시킴으로써 비극을 강조하고 있는데, 왼쪽의 아래부터 피 흘리며 처형받은 사람들과, 하얀 옷을 입은 순교자적인 모습의 남자를 비롯한 처형 직전의 사람들, 그리고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처형을 기다리며 공포에 질려있는 스페인 국민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면 가해자인 프랑스 군인들은 감정을 배제한 기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만 언덕의 뒤쪽으로 칠흑같은 어둠 속에 보이는 성당이 인간의 폭력에 대한 구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을 그린 고야는 스페인의 궁중화가였다가 프랑스의 침략이후 괴뢰정부의 궁중화가로 프랑스의 장군들 초상화를 그리며 연명하였고, 다시 스페인 왕조 복귀 후에도 궁중화가로 살아남은 어용화가 이기도 하였다. 고야는 훗날 살아남기 위해 처신한 자신의 괴로웠던 심정을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같은 괴기한 그림들을 그리면서 표현하기도 하였다. 

 ** 당시 스페인의 상황과 고야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바로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고야의 유령’ (2006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eYIob2CNtLg&list=PLSd-Jxi6MW-aIvrgkZfqbIjw46rdmeXaT&index=4

 ++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de Goya, 1746~1828) 〈1808년 5월 3일: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The 3rd of May 1808:The Execution of the Defenders of Madrid)>(1814), Oil on Canvas, 266 x 345 cm,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Senora Sabasa Garcia
고야의 유령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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