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크루거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
[명화로보는 19세기 역사이야기] 5,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1세 (1812)
- 프란츠 크루거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 (Alexander I of Russia)>
나폴레옹은 조세핀과 이혼하고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1세의 딸인 마리아 루이즈와 재혼하게 되면서 유서 깊고 전통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든든한 아군으로 두게 된다. 그러나 원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자신의 여동생과의 결혼을 추진하다가 중단했기에 나폴레옹의 행동을 불쾌해 하였다. 여기에 더해 그 동안 영국에 곡물을 수출하며 돈을 벌어오던 러시아에게 대륙봉쇄령은 러시아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였기에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을 무시하고 영국과 교역을 다시 하였다. 또한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그의 애인 발레프스카 백작부인의 나라 바르샤바 공국(폴란드)에게 떼어주자, 폴란드를 경계하던 알렉상드르 1세와 나폴레옹의 관계는 마침내 파국을 맞이한다.
드디어 1812년 6월, 나폴레옹은 주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려 60만 대군(프랑스군 30만, 기타 나라군 30만)을 동원하여 러시아 침공을 감행한다. 이에 러시아는 나폴레옹과의 전면전을 피하며 계속 후퇴하는 이른바 청야전술로 일관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여론도 나빠지자 쿠투조프 장군을 새로운 총사령관에 임명하면서,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130Km떨어진 보로디노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프랑스군과 혈전을 벌여 러시아군이 5만, 프랑스군이 3만명의 사상자를 내게 된다. 그러자 러시아는 다시 후퇴하여 모스크바까지 포기하게 되어 무혈입성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모스크바 시내에 불이 나 도시의 70%가 파괴된다.
한 달 가까이 모스크바에 진주하던 나폴레옹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겨울과 부족한 보급품으로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로 인해 러시아에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혹한 속에 후퇴하던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의 습격을 받으며 참여했던 병력들 중 겨우 10만명만 살아 돌아오게 된다. 40만명은 전사하고 10만명은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르 1세는 영국, 오스트리아, 프러시아와 함께 파리로 진주하여 나폴레옹을 폐위시키고 알바섬으로 유배보내며 복수한다.
알렉산드르1세는 러시아의 햄릿이라고 해도 될 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은 햄릿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었다면, 그는 아버지와 할머니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의 할머니는 바로 독일 출신의 러시아의 여걸 예카테리나2세였다. 예카테리나2세는 남편 표트르3세를 죽이고 직접 여제에 오른 인물이어서, 아들 파벨1세와의 사이가 안 좋았다 그러다 보니 손자인 알렉산드르1세를 직접 키워서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여제가 죽고 즉위한 파벨1세는 아버지 표트르3세를 복권하고 어머니 정치세력을 숙청하게 된다. 이에 반대세력들이 파벨1세를 암살하게 되는데 알렉산드르 1세는 여기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 동의를 한 것이었다. 이렇게 복잡한 가정사 속에서 즉위한 알렉산드르1세는 나폴레옹을 물리치면서 유럽의 구원자이자 러시아의 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의 시작된 전쟁을 다룬 소설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개전 초기 조국이 나폴레옹에게 맥없이 무너지기까지 국가 기강의 해이와 러시아 귀족들의 호화생활을 비판하고, 전쟁과 죽음에서 전개되는 각종 상황 등을 대 서사시로 기록했다.
예카테리나2세를 비롯한 로마노프왕조 황제들의 겨울궁전이었던 에르미타주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해 그녀의 프랑스 및 유럽 각국으로부터 수집한 소장품들은 물론 러시아 화가들의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르미타주의 ‘1812 조국전쟁 갤러리’의 한가운데에는 독일 화가 프란츠 크루거가 그린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가 있고 그 좌우로 전쟁당시 공을 세운 332명의 장군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차이코프스키는 ‘1812년 서곡’을 작곡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0DFsF_0tfiM
++ 프란츠 크루거 (Franz Kruger, 1797~1857) <알렉산드르 1세의 초상화 (Alexander I of Russia)> (1837), oil on canvas, 484 x 244 cm, Hermitage Winter Palace, Saint Petersbu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