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페르소나, 측정되지 않는 페르소나는 가라
새벽 두 시, 편의점에 헤드셋 자국이 남아있고 머리 산발이 된 고객이 들어온다. 짬이 찬 아르바이트는 눈에 익은 고객이다. 금세 그가 원하는 것을 눈치를 채고 혼잣말을 읊조린다. ‘또 몬스터 두 개랑 라면 하나 사서 가겠구먼.’ 그리고 곧 아르바이트생이 말한 대로 미래가 펼쳐진다. 계산대에 에너지 음료와 인스턴트 음식을 몇 개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카드를 내밀고 계산하고 나간다.
고객 중심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훌륭한 예시다. 고객을 깊게 관찰하면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에 반응할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편의점에 찾아오는 고객의 유형은 몇 가지가 있는지, 한 번 편의점에 와서 얼마나 계산하는지, 주로 사는 품목은 무엇인지, 다른 편의점에 가는 이유는 무엇이고 계속해서 우리 편의점에 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매상을 높일 수 있다.
1+1 사냥꾼을 위해서는 입구 근처에 할인 품목을 진열해 두고 할인 금액을 대문짝만 하게 써둔다. 편의점 셰프를 위해서는 단순히 식재료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레시피에 맞게 큐레이션 해둔다. 콜라덕후를 위해 탄산음료와 잘 어울리는 햄버거나 과자를 페어링 해서 두면 객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 굳이 가까운 편의점을 두고 찾아오는 고객이 있다면 그 이유를 알아두고, -아르바이트생이 친절해서?- 아르바이트생의 시급을 살짝 올려줌으로써 비슷한 유형의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할 수도 있다.
이렇게 고객 유형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당연한 것을 넘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IT업계다.
페르소나(Persona)는 종종 멋있어 보이는 장식물처럼 여겨진다. 웃고 있는 고객의 사진,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직업, 이해가 쏙쏙 되는 내러티브. 페르소나는 디자인 팀 내에서 오랫동안 작업되고, 자랑스럽게 발표되고, 박수를 받지만 막상 의사결정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실무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냥 데이터 보면 되지 않나요?” 또는 “A 기능 많이 쓰는 사람들이 전환이 잘 되던데요.” 결국 페르소나는 미워할 수도 없지만 신뢰받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포지션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오해의 상당 부분은 페르소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데이터를 해석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분석이 ‘평균적인 고객’을 가정한다는 것이다
많이 쓰는 기능 ⇒ 중요한 기능
장바구니에 담는다 ⇒ 구매 의도 높음
전체 전환율이 올랐다 ⇒ 기능이 효과 있다
이 결론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함정이 숨어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모든 고객이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 빈도주의적 사고에 기반해 있다. 즉, 고객군별 사전확률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행동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사전확률이란, ‘이 고객군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은 원래 구매 성향이 높고, 어떤 고객은 아무리 기능을 개선해도 구매하지 않는다. 또 어떤 고객은 특정 상황에서만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들은 애초에 서로 다른 ‘사전 확률’을 가지고 있다. 모든 고객을 하나의 고객으로 가정하며, 평균적인 고객을 위한 평범한 기능만이 반복해서 출시된다.
페르소나는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페르소나는 ‘다정한 사람이 그려진 문서’가 아니라 고객군별로 다른 사전확률을 정의하는 구조적 장치로 사용되어야 한다. “가격 예민형 고객”,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고객”, “빠른 의사결정을 선호하는 고객”처럼 고객군을 먼저 정의해두면, 제품팀이 출시하는 기능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장바구니 예시를 보자. 어떤 고객은 장바구니를 ‘나중에 사기 위한 저장소’로 쓰고, 어떤 고객은 단지 ‘비교를 위해 넣어보는 임시 메모’로 쓴다. 둘 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지만 그 행위의 의미와 결제 확률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제품팀이 모든 고객을 한데 묶어 해석하면 “장바구니 = 구매 의도 높음” 같은 위험한 결론이 나온다. 고객군을 나누어 보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단순히 ‘저관여 고객’, ‘고관여 고객’ 으로 구분(Segmentation)하는 것과 달리 페르소나는 고객의 행동의 원인과 맥락,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데이터가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 설명해준다. 시간 한정 쿠폰이 ‘생활비를 천 단위로 관리하는 특가사냥꾼’에게 잘 먹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페르소나는 데이터 뒤의 ‘왜’를 보여준다.
현실 업무 세계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많은 조직에서 페르소나는 실제로 관측할 방법 없이 존재한다. 디자인팀의 피그마 파일이나 문서 속에만 보관되거나, 책상 위에 프린트된 상태로만 남아 데이터와 연결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이 고객이 어떤 페르소나에 속하는지’, ‘특정 고객군이 어떤 기능에 반응하는지’를 실제로 추적할 수 없으니 페르소나는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정성적으로 고객의 삶, 동기, 제약을 깊게 이해하고, 정량적으로 고객군을 분류하고 측정할 기준을 마련해야한다. 예쁜 문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을 넘어 고객군을 어떻게 식별하고 측정할지 전사적으로 합의된 기준을 갖춰야 한다. 문서에만 남은 페르소나와 측정할 수 있는 페르소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유저 리서처, 데이터 분석가, 프로덕트 매니저와 디자이너가 긴밀하게 일해야하는 이유다.
올해 초, 오늘의집에서는 맡았던 주요 분석 프로젝트는 핵심 고객군을 정성-정량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측정할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적은 트래픽을 차지하지만 대부분의 거래액을 차지하는 핵심고객군은 누구인지, 그들은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실제로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정량적 기준와 대시보드를 구축했다. 막연하게 '고관여자는 ~' 라며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대신에 우리가 어떤 고객의 어떤 문제를 얼마나 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고, 지금까지 전략적 고객 지형을 파악하기 위한 도구로 요긴하기 쓰이고 있다.
페르소나는 감성적인 캐릭터 설정과 이해를 돕는 수단을 넘어, 고객의 다름을 잃지 위한 사전확률 기반 모델이고 실제 의사결정을 성과를 높이기 위한 도구다. 현실은 복잡계고, 데이터는 지저분고 불확실하다. 페르소나는 우리가 불확실성을 다루기 위한 구조적 장치이며, 안개 속을 밝히는 제품 팀의 지시등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