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Sep 26. 2022

잠들기 힘든 날들 (통단팥 호박죽)


칠흑 같이 깜깜한 방에서 혼자 누워있다. 베갯잇이 흠뻑 젖도록 울다 지쳐서 숨을 헐떡거린다. 걸음도 걷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몸을 굴려서 뒤집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악을 쓰며 울다 쉬다 또 울고 있다. 과연 몇 살 때의 기억일까? 이런 장면의 꿈을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자주 꾸었다.



결혼 한 이후에야 엄마에게 물었다. 어려서 나를 재우고 다같이 어디를 간 적이 있었느냐고. 엄마는 대답했다. 내가 막 돌이 지났을 때 동네에 서커스단이 들어왔단다.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를 위해 아빠는 서커스 입장권을 사오셨다고 다. 나는 어려서 순하기도 했지만 재우고 나면 깊은 잠을 자는 아기였다고 다. 그래서 나를 재워놓고 오빠랑 언니를 데리고 아빠와 넷이서 서커스를 보고 왔단다. 재미있게 서커스 구경을 하고 돌아와 보니 아기가 얼마나 울어댔는지 베갯잇이 다 젖어 있더란다. 자면서도 경기를 하듯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어린 나는 잠이 들 때면 잠투정이 심해졌다고 했다. 잠을 자다가도 놀라서 눈을 번쩍 뜨기도 했고 엄마와 떨어질 때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울었다고 한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어린 것을 홀로 두고 서커스 구경을 다녀왔던 일을 내내 후회하며 회개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난 후로 반복적으로 꾸던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을 자주 꾸던 아이였다. 상징적인 꿈을 꾸기도 했고 실재의 주변 인물들이 꿈속에 등장하기도 했다. 어려선 흑백으로 꿈을 꾸었으나 요즘은 컬러로도 꿈을 꿈다. 몇 개의 꿈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좋은 꿈을 꾸고 나면 잠에서 깨면서도 기분이 좋다. 마음풍선처럼 하늘을 난다. 하지만 무섭거나 걱정스러운 내용의 꿈을 꾸고 나면 개미가 다리를 기어오르듯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다 명치끝이 갑갑해진다.



십 이년 전 8월 초순, 더위가 밤낮으로 기승을 부리던 때 끔찍한 꿈을 꾸었다. 친정엄마의 두 다리가 부러지는 꿈이었다. 무릎에서 복숭아 뼈 사이가 한 순간에 툭! 소리를 내며 부러지고 말았다. 순간 어찌나 놀랐는지 두 눈을 번쩍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이른 시간이라 다시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다 곤히 자는 남편이 깰까봐 거실로 나오니 스산한 느낌이 들어 몸이 오싹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드니 한 여름 더운 기운이 사라지고 어디선가 쌩하니 찬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거실 등을 환하게 켰지만 마음은 환해지지 않았다. 시커먼 어둠을 살라내고 어서 환한 해가 떠올라 마음을 비춰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딱 두 달이 지난 10월 7일, 1교시 수업을 하러 강의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막내 동생한테 다급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심각한 교통사고로 응급실로 갔으니 당장 오라는 것이었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급하게 과사무실에 연락을 취하고 자동차를 몰고 응급실로 가는 내내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에 “이를 어쩐대, 이를 어쩐대”를 수없이 중얼거리며 병원에 도착했다.



소독약 냄새 사이로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엄마 주변으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젊은 의사가 다리미처럼 생긴 제세동기를 이용해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전기충격을 가할 때마다 엄마의 몸은 침대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털썩 침대 위로 내려앉았다.



두 손이 부서져라 깍지를 끼고 두 다리를 동동 구르며 엄마를 지켜보고 있자니 눈물이 수돗물처럼 콸콸 흘러내렸다. 엄마에게 서너 번의 심장 마사지를 하고 난 후에 의사가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다리에 차 범퍼가 부딪히면서 내부 출혈이 심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더 이상 처치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다며 조금만 더 기다렸다 사망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엄마 나이 여든 살이었다.



의사와 간호사가 제 자리로 돌아가고 엄마가 누워계신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 얼굴엔 연지곤지를 찍은 것처럼 붉은 멍이 구슬처럼 박혀있었다. 사고가 나면서 바닥을 뒹구느라 그려진 상처였다. 엄마의 차가워진 손을 내 손의 열기로 데웠다.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 손등을 적시고 엄마의 손바닥으로 흘러들어갔다. 동생은 엄마 옆에서 침대를 치며 엉엉 울고 있었다. 남편은 내 뒤에 서서 하늘로 얼굴을 향하고 눈물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그것도 교통사고로. 처한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때 끔찍한 꿈을 꾸고 나서 엄마에게 좀 더 신경을 쓸 것을. 고3을 달리고 있는 딸에게 온통 정신을 집중하느라 엄마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는 말은 그저 핑계거리일 뿐이었다. 딸이 수능을 마치고 나면 엄마를 집으로 모셔오려고 남편과 계획했었다는 말은 사후약방문에 불과했다.



한참을 넋을 놓고 울다가 사람이 죽어가면서 맨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이 청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몸을 숙여 엄마 귀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뜨거운 눈물이 엄마 머리카락 위로 툼벙툼벙 떨어졌다. 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목이 메여왔지만 한 자 한 자 천천히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엄마.......엄마…….미안…….해요…….지켜주지…….못해서…….사랑…….해요…….천국에서........사랑했던.......아빠........만나…….세요.”



엄마는 애 끓는 내 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오열을 하며 엄마를 힘껏 끌어안았다. 이대로 어처구니없게 엄마와 헤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쟁이인 나를 홀로 방에 재워두고 서커스 구경을 다녀오셨던 엄마를 이대로 보내 드릴 수가 없었다. 혼자서 까만 방에서 온 힘을 다해 울었던 갓난아이로 돌아가 엉엉 울어댔다.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올 해도 여전히 엄마와 갑자기 이별 했던 10월 7일이 다가오고 있다. 엄마의 추도일이 다가올 때 마다 끔찍한 꿈을 꾸고 불안했던 마음이 슬며시 찾아온다. 어쩔 줄 모르고 서성거리던 12년 전 시월의 초조함이 어깨 위에 숄처럼 걸쳐진다. 잠을 자려면 파릇한 긴장감이 찾아온다. 몸이 오싹거리고 숨이 턱 멎을 것 같은 꿈을 또 꾸게 될까봐서.



이런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월에는 통팥 단호박죽을 자주 끓인다. 단호박죽은 엄마가 좋아하시는 죽이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끓여드리면 입맛을 쩝쩝 다시며 단호박죽 한 대접을 너끈하게 비워내시곤 하셨다.



통팥 단호박죽을 끓이기 위해선 먼저 물을 넉넉히 넣고 팥을 포슬포슬하게 삶아 놓는다. 단호박은 껍질 째 잘라서 쌀을 넣고 호박씨 간 물과 함께 삶아준다. 호박과 쌀이 익으면 소금 두 꼬집을 넣고 핸드믹서를 이용해서 갈아준다.(포테이토 매셔로 으깨도 된다.) 삶은 통팥을 넣고 저으면서 잠시 더 끓여준다.



껍질과 호박씨를 갈아 넣은 단호박 죽은 푸르스름한 셔츠를 입은 개나리꽃 같다. 설탕을 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달콤한 맛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여인의 얼굴이고, 고소한 맛은 누릉지의 구수함을 닮았다. 초가을에 먹는 단호박죽은 갑자기 찾아오는 시월의 불안한 마음을 포근하게 덮어주는 이불이다. 입속에서 톡! 터지는 통팥은 내 안에 머무는 불안함을 몰아내는 마법사다.     

  









주먹구구 레시피 <통팥 단호박죽>


<재료> 팥 1컵, 단호박 중간 크기 1개, 현미찹쌀 1컵,  소금 두 꼬집.


1. 단호박을 껍질 째 잘라서 씨를 빼낸다.

2. 호박씨를 믹서기에 물 3컵을 붓고 갈아 채에 걸러준다.

3. 오목한 냄비에 자른 단호박, 불려둔 현미찹쌀, 호박씨간 물을 넣고 물 3컵을 더넣은 다음 끓여준다.

4. 단호박과 현미가 익으면 핸드 믹서로 갈아준 다음 삶은 통팥을 넣고 저어가며 잠시 끓이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불을 끈다.


이전 07화 녹용과 산호 반지(얼큰 소고기 우거짓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