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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Oct 07. 2022

우아하고 고귀하고(두부 새우 애탕국)



태양의 이글거리는 색을 닮았다. 주홍색으로 너울거리는 모습 앞에 서면 뜨거워서 데일 것 같아 주춤거리지만 살짝 손을 가져다 대면 열기라곤 전혀 없다.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진다. 빛깔이 화려해서 금방이라도 질릴 법 한데  한 달 보름 동안 날마다 바라보아도 결코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꾸 그리고 오래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군자란 이야기다.  


 딸내미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화분 하나를 교실에 가져다 놓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무엇을 보내야 좋을까 고민하면서 화원으로 갔는데  군자란이 눈에 들어왔다. 짙푸른 색의 넓적한 잎들이 양쪽으로 분수처럼 퍼져있는 군자란 위로 꽃송이가 봉긋하게 솟아 있었다. 꽃송이는 마치 하늘의 태양을 군자란 위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어찌나 강렬하게 피어났는지 이 정도면 입시를 위해 전력질주해야 할 딸과 반 친구들에게 등대가 되어줄 것 같았다.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군자란을 학교로 배달시켰다.


학부모 총회가 있던 날. 강당에 학부모들이 가득 모였는데 단상 위에 놓인 군자란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주홍색으로 피어난 군자란 꽃 때문에 강당은 실내인데도 마치 해가 떠서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학부모가 나처럼 군자란을 학교에 보냈구나 생각했다. 입시 설명회를 마치고 딸의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담임 선생님은 딸에 관련된 상담은 뒤로 미루고 내가 보낸 군자란이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행사만 있으면 이리저리 자리 이동을 한다고 했다. 어느 날엔 교장실에 가 있기도 하고 오늘은 강당으로 불려 갔다고 했다. 그래서 정작 자기 반에 군자란이 서 있는 날은 며칠 안 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잘난 자식을 둔 어미처럼 우쭐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원에 들려 아기 군자란 한 포기를 3천 원 주고 사 왔다. 작은 포기는 잎이 대여섯 개 달려서 볼품이 없었지만 이걸 정성껏 키워서 반드시 꽃을 피워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단지 단골로 다니던 화원에 꽃을 피운 군자란이 없었기 때문에 이거라도 하면서 들고 왔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볼품없던 군자란은 13년이 지나는 동안 열 세 포기로 불어났고 커다란 화분 세 개에 너덧 포기씩 나누어 심어 놓았다.


 한 해 두 해 지나자 군자란 잎사귀가 넓어졌다. 이파리가 양쪽으로 7,8장씩 달리게 되자 그때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난 십 년 동안 우리 집 군자란은 이른 봄이면 어김없이 주홍색 꽃을 활짝 피워냈다. 일 년 중 열 달은 넓적하고 짙푸른 잎만 달고 있어서 군자란 화분은 그다지 예쁘지 않다. 하지만 2월 10일경부터 한 달 반 정도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상서로운 기운을 피워낸다.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올라오는 연두 빛 꽃대는 갓난아기의 발가락처럼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다. 나는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물을 하루에 한 컵씩 부어주는데 그렇게 하면 꽃대가 이파리 위로 쭉쭉 뻗어 올라 꽃이 붉은 왕관처럼 피어난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던 해에는 군자란이 어찌나 활짝 피었던지 군자란 때문에 좋은 결과가 온 것 같았고, 딸이 대학에 가던 해에도 군자란은 베란다를 주홍빛으로 가득 물들였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시험에 통과할 때마다 거침없이 피어나던 군자란은 언제부턴가 우리 집 가화가 되었다. 아니 내가 군자란을 우리 집 가화로 정해놓고 식구들에게

“우리 모두 군자가 되어봅시다”

라고 강요했다. 그리고는 해마다 봄이 되면 군자란의 개화 소식을 매일매일 카톡으로 중계방송까지 했다. 사진을 보며 며느리와 사위는 이유도 모른 채 군자란이 우리 집 가화라고 암기를 했다.  


 문득 군자란이라는 이름은 군자를 닮아서 붙여진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아프리카 남부가 원산지인 군자란은 수선화과의 다년생 화초란다. 물을 많이 좋아한다는 군자란은 햇빛을 싫어해서 반그늘에서 키워야 꽃 색깔이 선명해진단다. 그래서 우리 집 군자란 꽃 빛깔이 그렇게 선명했던 모양이다. 군자란의 꽃말은 “고귀함과 우아함”이다. 그래서 군자란에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


 우아하고 싶은 마음, 고귀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추구하는 마음이다. 붓글씨를 쓸 때 이런 내 마음을 알았던 서예 선생님은 나에게 잘 어울린다며 아림이라는 호를 지어주셨다. 우아할 아(雅)에 수풀 림(林). 우아해진다는 것, 고귀해진다는 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도달해야 할 만큼 어려운 성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집 베란다에서 군자란이 살아있는 한 해마다의 봄에 꽃을 피우며 올 해도 조금만 더 우아해지세요, 조금만 더 고귀해지세요라고 응원해 줄 것 같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군자란 꽃이 주홍색으로 화려하게 피어났다. 나는 꽃구경 가는 상춘객처럼 핸드폰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군자란 꽃을 요리조리 찍으며 꽃이 질 때까지 매일매일 구경했다. 군자란처럼 우아해지길 바라고 고귀해지길 바라면서.


 이렇게 화려하게 핀 군자란 꽃도 3월 말이 되면 꽃대로부터 독립한다. 오십여 송이가 넘는 주홍색 꽃들이 앞 다투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진다. 마지막 한 송이 마 저 ‘툭’하고 떨어지는 날, 아쉬운 마음으로 꽃대를 잘라준다. 꽃대를 아래쪽으로 바짝 잘라주어야 이듬해에 꽃대가 예쁘게 올라온다. 꽃대를 잘라주고 나면 그때부터 또다시 우아하고 고귀하게 피어날 군자란 꽃을 보기 위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어차피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짧은 기다림과 긴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너는 나를 기다리는 사랑의 기다림, 합격을 기다리고 성공을 기다리며 태어나길 기다리고 성장하길 기다리는 과정의 기다림, 우아하고 고귀하게 피어나길 기다리는 소소한 기다림. 이런 기다림이 있는 한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꽃피는 봄날은 다시 돌아오겠지, 그까짓 일 년쯤이야 또 금방 돌아오겠지, 군자란은 그렇게 또 꽃을 피우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림과 마주한다. 군자란의 마지막 꽃잎이 지던 날 두부새우애탕국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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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 레시피 <두부 새우 애탕국>


재료: 데친 쑥 한 덩이, 두부 1/2모, 새우 6마리, 찹쌀가루 1 큰술, 코인 육수 4알,

소금 약간, 달걀 1개, 쪽파, 물 1리터, 국간장.

1. 쑥은 다듬어서 끓는 물에 소금 약간 넣고 살짝 데쳐 준 다음 쫑쫑 썰어 물기를 꼭 짜준다.

2. 두부 1/2모는 칼등으로 으깨준 다음 물기를 짜고 껍질 벗긴 새우는 잘게 다진 다음 칼등으로 으깨준다.

3. 두부 으깬 것과 쑥 다진 것, 새우 으깬 것, 찹쌀가루 한 큰 술, 소금은 세 꼬집 을 넣고 잘 치대서 엄지손톱 크기로 완자를 만든다.

4. 물 1L에 코인 육수 4개를 넣고 완자에 계란 물을 입힌 다음 끓는 육수에 넣고 익혀준다.

5. 국 간장으로 간을 맞춘 다음 마지막으로 쪽파 다진 것을 넣고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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