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던 어느 해 가을학기의 일이다. 미래의 교사가 될 그들은 어떤 학생들보다 수업 태도도 좋았고 매시간 열의가 넘쳤다. 억지로 수업에 참여하는 듯한 학생들이 많은 학기에는 한 학기가 어서 마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사범대생들과의 수업은 가르치는 맛이 나서 수업하러 들어갈 때마다 신이 났다.
그날도 사범대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에 힘입어 열의를 다해 강의를 했다. 수업이 끝날 즈음 한 남학생의 질문에 답변하다 보니 쉬는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부리나케 교탁 위에 놓인 교재와 출석부를 집어 들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계단을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해서 자동차 문을 여는 순간 교탁 위에 시계를 놓고 왔다는 생각이 났다. 잰걸음으로 다다다 소리를 내며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에 있는 강의실에 들어섰다. 강의실에는 여학생 두 명이 다음 시간 수업이 없었는지 어슬렁거리며 책과 노트를 챙겨 가방에 넣고 있었다.
나는 교탁 위에 손목시계를 벗어 두고 수업하는 버릇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강의실마다 전자시스템으로 리모델링이 되면서 강의실 뒤편에 커다란 전자시계가 붙었지만, 그때만 해도 손목시계를 보며 수업이 끝나는 시점을 알아차려야 했다. 하지만 강의 시간에 손목시계를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신경 쓰여서 수업 시작 전에 교탁 위에 시계를 벗어 두고 가끔 내려다보며 시간을 조절하곤 했었다.
헐레벌떡 강의실 문을 열고 교탁을 향해 걸어갔다. 교탁 위에 시계가 없었다.
‘아니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 내가 교탁 밑에 넣었나?’
고개를 숙여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으나 교탁 밑에도 시계는 없었다.
나는 뒷문으로 막 빠져나가고 있는 여학생에게
"학생! 혹시 여기 교탁 위에 놓여있던 시계 못 봤나?”
했더니 여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아니요.”
라고 대답했다.
“아니, 수업할 때 여기에 분명히 시계를 벗어 놓았는데 정말 못 봤나?”
라며 다그치듯 물으니 여학생은 고개를 힘없이 가로저으며 정말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강의실을 나갔다 온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 시계가 없어지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가 금방이라도 어디에서 나올 것만 같았다.
터덜터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서
‘아니야. 누군가 주워서 과사무실이나 경비실에 맡겨 두었을 거야. 그랬을 거야’
라며 과 사무실을 들르고 사범대에서 경비를 서는 아저씨에게 들렸지만, 신고로 들어온 시계는 없었다.
저녁 먹는 시간에 그이에게 비에 젖은 새처럼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지난번 결혼기념일에 받은 시계를 강의실에서 잊어버렸다고. 막 수저질을 하려던 그이는 식탁 위에 수저를 놓더니 벌떡 일어났다. 윗옷을 주섬주섬 걸치더니 지금 당장 학교에 가보자고 했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사이 누군가가 시계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을 수도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하며 그이를 따라나섰다.
야간대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불빛이 환하게 켜진 진리관과는 달리 사범대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자유관은 경비실에서만 약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한 뒤, 컴컴한 강의실에 불을 켜고 교탁 앞으로 다가갔다. 속으로 제발 시계가 있어주길 바랬지만 시계는 없었다.
그이는 경비 아저씨에게 혹시 낮에 신고되어 돌아온 시계가 없었느냐 재차 물었고, 206호 강의실을 청소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교탁 위에서 시계를 보지 못했는지 물어달라고 했다. 짬짬해 하시던 아저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그쪽에선 모른다고 대답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시계를 잃어버린 지 10시간이 지났고 그이는 아내의 시계를 잃어버린 지 3시간이 지났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던 나에게 그이가 말했다.
“여보! 몸 안 잃어버리고 물건만 잃어버렸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 내가 돈 벌어서 다시 사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이와 나는 잃어버린 시계에 대한 아쉬움일랑 어서 떨쳐버리자며 발걸음을 돌렸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했기에 집으로 가기 전에 포장마차에 들렸다. 포장마차 아저씨가 일을 마치려는지 주섬주섬 정리를 하고 있다가 남은 건 어묵 꼬치 몇 개뿐이라고 했다. 하루 종일 끓인 듯한 어묵 국물은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었다. 국물 속에 담긴 어묵 꼬치를 집어 들고 그이와 나는 퉁퉁 불어난 어묵을 말없이 오물오물 먹었다. 포장마차 아저씨가 불협화음이 있는 부부인 줄 알고 나와 그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우리는 아저씨의 눈길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잃어버린 금시계에 대한 미련을 애써 지워내느라 짭조름한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그이는 결혼 20주년이 되었다며 나에게 18K로 된 금시계를 선물했다. 10돈이 넘는다고 했다. 어머님께서 막내며느리에게 결혼할 때 해준 것이 변변치 않아 내내 마음이 쓰이셨다며 나 몰래 봉투를 주셨다고 했다. 사는데 모자라는 돈은 그이가 더해서 샀다고 했다. 그런 금시계를 딱 열흘밖에 차지 못했는데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뒤로 나는 금시계 대신 실용적인 로즈몽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때 금시계를 누가 가져갔을까? 지금도 궁금한 마음이 든다. 수강생이었던 학생이 가져갔다면 그 학생은 교사가 되었을까? 교사가 되었다면 제자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하고 있을까? 수강생이 아니라 청소하던 아줌마가 가져갔을까? 그랬다면 금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녔을까? 아니면 팔았을까? 자녀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녀에게 남의 물건에 대해서 어떤 가르침을 했을까?
나는 그때 시계를 잃어버린 것뿐이었지만 시계를 가져간 그는 양심을 잃어버렸으니 나보다 더 큰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가끔 집에서 어묵탕을 끓인다. 금시계를 잃어버리고 아쉬운 마음을 달랠 때 먹었던 어묵탕을. 어묵탕의 주재료인 어묵은 단골 가게에 들러 생선 살 함량이 높은 탱글탱글한 어묵을 산다. 무, 양파, 대파, 멸치를 넣고 국물이 설설 끓어오르면, 어묵을 대나무 꼬치에 꽂아 국물에 넣고 함께 끓인다. 삶은 달걀도 까서 넣고 국물에 청양고추도 두어 개 송송 썰어 넣으면 알싸한 맛의 어묵 국물에서 개운한 감칠맛이 난다. 술안주로도, 일품요리로도 아주 잘 어울리는 어묵탕은 위로의 음식이다.
주먹구구 레시피(어묵탕 2인분)
어묵 10개, 무 1/2개, 양파 1개, 대파 1대, 삶은 달걀 4알, 청양고추 2개, 물 2ℓ
1. 큰 냄비에 무는 10센티로 토막을 내고 양파는 반으로 가른 다음 대파, 청양고추, 물 2ℓ를 넣고 육수를 낸다.
2. 어묵은 꼬지에 끼워놓는다. (꼬지 없으면 안 끼워도 됨)
2. 육수가 진하게 우러나면 건더기를 건져내고 어묵과 껍질 깐 삶은 달걀을 넣고 어묵이 부드럽게 퍼질 때까지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