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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여자(오리 주물럭)

김경희

by 김경희


딸하고 MAMA에 다녀왔다. 금산사 가는 길목에 있는 MAMA는 현대식으로 세련되게 지어진 커피숍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직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테라스가 정원과 맞닿아 있고 유리창은 접이문으로 되어 있어서 단정하게 가꾸어진 정원이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MAMA라는 상호가 주는 따뜻한 느낌 때문일까? 딸은 가끔 여유 있는 시간이 찾아오거나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은 “엄마! 오늘 MAMA에 갈까?”라고 전화를 한다. 딸의 질문에 내 대답은 언제나 OK! 다.


추운 겨울이라 두툼한 외투를 걸치고 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번잡한 시내를 벗어나 MAMA로 향하는 구불길로 접어들자 도로 양쪽으로 느릅나무의 잔가지가 바람에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청도교를 지나는데 털모자를 수북이 눌러쓴 아저씨 둘이서 가로수의 잔가지들을 서걱서걱 잘라내고 있었다. 통행길에 방해가 될 것 같은 가지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MAMA에 도착하니 정원의 푸른 잔디밭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빨간 벽돌로 다듬어진 카페 앞으로 유치원생들처럼 쪼르르 서 있는 남천은 추위를 잊은 채 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딸과 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쌍화차를 한 잔씩 주문하고 엄마의 품처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진동벨이 울리자 오븐에 바싹하게 구운 하얀 가래떡과 함께 쌍화차가 나오고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딸이 쟁반 위에 서로 마주 앉은 쌍화차와 아메리카노가 마치 국제결혼 한 부부 같다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동양의 차와 서양의 차가 한 잔씩 쟁반 위에서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딸은 구수한 아메리카노를 호호 불어가며 마시더니 “음~ 좋아”라고 했고, 카페인 울렁증 때문에 커피를 전혀 마시지 못하는 나는 쌍화차를 후후 불어가며 마셨다. 쌍화차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밤과 붉은 대추가 쌍화차의 쌉쌀함을 중화시켜 주었다.


딸은 아메리카노가, 나는 쌍화차가 더 맛있다고 서로 자랑하며 키드득거리고 있는데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된 카를라 브루니가 부르는 Stand by your man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사랑을 오직 한 남자에게만 주면서 여자로 산다는 건 때때로 힘든 일이지만 그를 사랑한다면 모든 걸 용서하며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그 사람이 나에게 매달릴 수 있도록 두 팔을 내밀어 따뜻하게 대하라는, 쓸쓸한 밤에 그 사람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라는 노래의 가사가 부드러운 크림이 되어 커피숍 안에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렸다.


둘씩 셋씩 모여 앉아 수다를 떨던 옆자리의 여자들도 크림처럼 흘러내리는 노래가 나오는 동안 잠잠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노래가 바뀌고 분위기가 전환되자 딸이 “피~ 왜 여자만”이라고 작게 말했다. 딸을 보면서 나도 “그러게”라며 웃었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에게 아까 커피숍에서 들었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딸은 갓길에 잠시 차를 세우더니 유튜브에서 Stand by your man을 찾아 블루투스에 연결해 주었다. 딸과 나는 잔가지를 가득이고 있던 가로수 길을 지나오면서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남편과 딸과 사위가 방학이 시작된 날이라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장보기를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딸이랑 함께 부엌에 들어서서 밥을 안치고 오리주물럭을 만들었다. 오리주물럭은 양파를 잘라 냄비에 깔고 빨갛게 양념한 오리고기를 양파 위에 얹은 후, 씻어둔 콩나물을 수북이 쌓은 다음 센 불에서 지져내기만 하면 된다. 잘 익은 오리고기와 콩나물을 잘 섞이도록 뒤적인 다음 상추에 싸서 먹던 남편과 사위가 오늘따라 유독 양념이 잘된 것 같다며 엄지를 번쩍 치켜세웠다. 부드러운 오리고기와 아삭한 콩나물이 만나니 최고라고 했다. 여자 그리고 여자는 남자 그리고 남자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마냥 좋아졌다.


설거지를 마치고 사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딸에게 “여자는 태양이야!”라고 했더니 “어머니 그럼 남자는 뭐예요?” 라며 사위가 물었다. 나는 웃으며 “그것은 남자가 생각해야지.”라고 즉답을 피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상담가인 폴 투르니에는 <여성, 그대의 사명>에서 “삭막한 세상에 포근한 기운을 불어넣고 기계화된 사회에 생동감을 넣어주는 존재가 여자“라고 했다. 태양의 내리쪼임 같이 일부분이 아닌 전체를 따사롭게 덮어주며 모든 것을 품어내는 존재가 여자라니.


나도 물론이지만 우리 딸도 자신을 충분히 발전시켜 나간 후에 여자로서의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여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주먹구구 레시피 (오리 주물럭)


재료: 오리고기, 양념장(고추장, 고춧가루, 매실청, 마늘, 대파, 후추, 참기름), 콩나물, 양파


1. 냄비 바닥에 양파를 잘라 깔고 양념한 오리고기를 얹어준다.

2. 오리고기 위에 콩나물을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익혀준다.

3. 오리고기가 익으면 콩나물과 잘 섞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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