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빨간 카네이션

애매하다

by 김경희

세현은 쎄루리안 블루 빛이 연하게 감도는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니트 소재의 원피스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허리에서 완만한 곡선으로 이어지는 골반을 돋보이게 했다. 치마 끝단은 무릎에 닿았지만 걸을 때마다 무릎 위로 올라갔다. 그때마다 하얀 속살이 희끗희끗 보였다. 얇은 리본이 달린 아이보리색 플랫 슈즈를 신은 세현은 집 앞에 있는 아네모네 꽃집에서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사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어둑해진 시간이라 형우가 있는 연구실 창문으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똑똑똑”


세현은 노크 소리가 작게 나도록 문을 살살 두드렸다.


“네!”


안쪽에서 짧고 굵은 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문을 열며 고개를 빼꼼히 들이미는 세현을 보며 형우는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고 활짝 웃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스승님께서 저를 기다리셨다고요?”


“에이 스승은 무슨 스승이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자기는 제 스승 맞잖아요 호호호. 오늘이 스승의 날인데 카네이션 받으세요.”


“하하하 연인 사이에 이런 대접받아도 돼?”


“그럼요. 당연하죠.”


세현은 환하게 웃으며 형우 곁으로 다가가 가늘고 작은 손으로 카네이션을 건넸다. 꽃을 받아든 형우는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아끌더니 와락 껴안았다. 작은 새가 되어 형우의 가슴에 날아든 그녀의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형우는 손에 든 카네이션을 책상 위에 툭 내던지며 세현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난 자기의 스승이 되지 않을래. 애인만 되고 싶어.”


“어떻게 그래요. 자기는 엄연히 저의 교수님이잖아요.”


“아무리 그렇다해도 난 자기의 스승이 되는 건 원치 않아. 제발 애인으로만 생각해 줘.”


형우는 자신의 품속에 얌전히 안겨 있는 세현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자신의 몸 쪽으로 더 바싹 끌어당겼다. 형우의 심장도 요동치며 방망이질 해댔다. 저리저리한 전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려 견딜 수 없어진 형우는 세현의 몸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다.


‘어디서 이렇게 어여쁜 새가 내 품에 날아들었을까?’


이제 이번 학기만 지나면 졸업하고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세현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라고 형우는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하면 다짐할수록 불안한 마음이 들어 아카시아 향기가 나는 그녀를 품 안에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 마치 작고 얇게 접어서 자신의 몸속으로 구겨 넣으려는 듯 세현의 등을 쓸어내리고 또 쓸어내렸다. 세현도 형우의 거친 몸짓이 싫지 않은지 그의 몸에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둘 사이에 거친 숨소리가 휘몰아치며 미세한 떨림이 연구실 안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똑똑똑”


연구실 밖에서 힘찬 노크 소리가 들렸다. 형우는 허둥대며 세현에게서 떨어지며 대답했다.


“누.. 누구세요. 들어와요.”


연구실 문이 열리자 세현은 어느새 형우와 멀찌감치 사이를 두고 서 있었다. 콧등 위로 내려온 안경테를 밀어 올리던 남학생이 몸을 굽신거리며 말했다.


“교수님! 리포트를 어제 내지 못해서 직접 가지고 왔습니다.”


”아 그래? 거기 책상 위에 두고 가요.“


”예.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키가 큰 남학생이 과제물을 책상에 올려두고 돌아가자 형우는 큰일 날 뻔했다는 표정으로 세현을 보며 웃었다.


”교수님!“


”에이 교수님이 뭐야. 우리 둘이 있을 땐 그런 호칭 제발 쓰지 마!“


”왜요. 자기라고 자꾸 부르다 다른 애들하고 같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자기라는 호칭이 불쑥 나와 버리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단 둘이 있을 때도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해요. 그래야 실수하지 않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언제까지 우리 사이를 비밀에 붙여야 할까?“


”제가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알리는 것이 좋겠어요. 지금은 사제지간인데 연인 사이라고 밝혀지면 다들 충격받을 것 같아요.“


”그렇겠지? 자기하고 나 사이에 나이 차이도 열다섯 살이 넘으니 정말 놀랄 거야.“


”나이 차이야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잖아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난 결혼했다 다시 돌아온 전적도 있고 하니 세현이 부모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도 걱정이야.“


”에이 교수님! 그건 나중에 생각해요. 지금 우린 사랑하는 일에만 열중하기로 해요. 근데 진짜 저도 우리 둘이 있을 때까지 교수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려니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서 자꾸 고민이 되요.“


세현이 시무룩한 눈빛을 보이며 형우 곁으로 다가갔다. 형우는 두 손으로 세현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내리다 어깨를 잡아 품으로 끌어당겼다. 순간 자석의 N 극과 S 극이 만나듯 세현과 형우 사이에 틈이 없어졌다. 책상 위에 놓인 카네이션이 부끄러움에 붉어지듯 서로 엉겨 붙어 있는 두 사람 뒤에서 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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