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명동 거리에서 만난 사람

막연하다

by 김경희


명동의 거리는 팔딱거리는 활어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검은색 프라다 천으로 만든 배낭을 멘 청년 뒤로 관광객처럼 보이는 한 사내가 캐리어를 끌며 걸어가고 있었다. 짧은 머리에 후드티를 입은 사내는 무얼 찾고 있는 듯 두리번거리며 주춤거리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 사내의 뒤를 따라 걷던 세현은 눈이 부리부리하게 생긴 남자와 마주쳤다.


Excuseme!”


작고 통통한 몸매의 사내는 세현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며 웃었다. 세현은 뒤에서 볼 땐 국내 관광객처럼 보여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중국인이라는 사실에 흠칫 놀라며 영어로 대답했다.


“May l help you?”


사내는 세현을 향해 방긋 웃어 보이며


“ls this the right way to go to Myeongdong Cathedral?”


“Yes! l’m going to Myeongdong Cathedral, too. Let’s go together”


명동성당 본당 앞에서 형우를 만나기로 했던 세현은 중국인 사내와 함께 성당까지 걸었다. 사내가 끌고 가는 은색 캐리어는 보도블록 위에서 돌돌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그는 성당까지 걷는 동안 세현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친근하게 굴었다. 세현에게 중국어는 할 줄 아느냐, 성당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등등 사소한 것들을 물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 생각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점과 말할 때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는 사내의 호감 있는 표정에 무장해제 되어 버린 세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은 중국어에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었고, 성당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이 있어서 가는 것이며, 자신의 직업은 치과의사인데 지금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의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한 세현도 사내에게 물었다. 명동성당에는 왜 가는 것인지를. 사내는 자신이 영화감독인데 이번에 만들 영화가 한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 한국의 느낌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무엇보다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이 있어서 미사에도 시간이 맞으면 참여해 볼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말끝에 세현같이 친절한 여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며 세현이 아름답다고 덧붙였다.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걷다 보니 멀리 명동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세현은 첨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며 손을 뻗어 성당을 가리켰다. 골목길을 지나 가톨릭회관과 명동성당 사잇길로 접어들자 오르막길이 나왔다. 사내와 세현은 발걸음이 느려지며 숨이 차 올랐다. 끌고 가던 캐리어가 오르막에서 자꾸 밑으로 내려가려 하자 사내는 두 손으로 캐리어를 밀고 올라갔다. 가파르게 오르는 계단 위로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깔끔하면서도 파란 하늘을 찔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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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벽돌로 지어진 고딕 양식의 이국적인 명동 성당 외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내는 단정하면서도 위엄 있는 성당 분위기에 압도되어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세현을 향해 감탄사를 연신 내뿜었다. 세현은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명동성당의 숙연한 분위기에 저절로 자세를 가다듬고 서서 본당 출입구 쪽을 올려다보았다.


본당 입구에서 세현을 내내 기다리고 있던 형우는 손을 번쩍 들어 흔들더니 웃으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점점 세현과 가까워질수록 세현 옆에 서 있는 사내가 보였다.


“교수님!” 제가 조금 늦었어요.“


세현은 자기 옆에 다가선 형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순간 형우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여전히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세현의 태도에 살짝 언짢은 기분이 들어 굳어버린 표정으로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듯 세현에게 눈짓을 했다.


”아! 이분께서 명동성당 가는 길을 모른다기에 제가 길을 안내해 드렸어요. 중국에서 온 영화감독이시래요.“


세현이 형우에게 자신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눈치챈 사내는 형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Nice to meet you.“


사내가 내미는 손을 얼떨결에 붙잡으며 형우도 인사했다.


”Glad to meet you.“


세현이 형우의 팔짱을 끼며 사내에게 한국에서의 시간이 유익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고개를 까닥거리자, 사내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세현에게 건네며 자기도 연락처를 받을 수 없겠느냐 물었다. 세현은 형우를 힐끗 바라보다가 핸드백에서 명함을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명함을 받아들고 세현을 향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 뒤 본당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갔다.


”자기야! 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연락처는 주고 그래?“


”에이. 영화감독이라잖아요. 혹시 알아요? 절 캐스팅이라도 하려고 그러는지? 호호호“


세현은 형우의 말을 농담처럼 받아들였다.


”농담이래도 그런 말 하지 마! 난 절대 반대야.“


”에이 농담이에요. 농담. 중국에도 미인들이 많고 많을 텐데 저 같은 사람에게 기회나 오겠어요? 호호“


형우는 실없이 농담을 해대며 웃어대는 세현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명치끝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세현은 한국형 미인이었다. 얼굴 모양은 턱이 갸름한 계란형에 우유처럼 뽀얀 피부, 초승달처럼 가는 눈썹 밑으로 쌍꺼풀 없이 맑은 눈은 호수처럼 깊고 방방했다. 콧방울은 동그랗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렸고, 입술은 앵두처럼 작고 붉었다. 무엇보다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있는 뺌은 탱글탱글한 젤리처럼 탄력이 있었다.


미인은 뼈도 예쁘다고 하지 않았던가! 세현의 어깨는 좁고 완만하게 내려앉아 니트를 입으면 어깨선이 다소곳하니 예뻐 보였고 가슴은 적당히 봉긋하게 솟아올라 잘 익은 복숭아를 가슴에 넣고 다니는 것 같았다.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은 완벽한 에스라인에 치마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는 근육이 전혀 도드라지지 않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매끈했다.


형우는 세현과 명동성당 주변을 돌며 아까 세현의 명함을 손에 거머쥔 그 중국인 남자가 자꾸 신경 쓰였다. 헤어지려는 찰나의 순간에 세현을 향해 눈웃음치던 그 남자의 웃음기 있는 표정이 자꾸 떠올라 그저 연기처럼 뿌연 불안감이 찾아들었다. 찾을 때마다 평화롭고 은총의 물결이 가득하다고 느꼈던 명동성당 주변의 뜰이 일렁이는 파도를 품고 하염없이 출렁대는 바닷가 같았다.


형우 곁에 바짝 서서 걷던 세현은 시절 인연의 주인공 탕웨이를 떠올렸다. 자신이 탕웨이가 되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방금 전까지 명동의 거리를 걸어 성당까지 함께 올라갔던 영화감독의 명함을 꺼내서 자세히 보고 싶었다.


"자기야! 무슨 생각 해?"


형우의 질문에 깜짝 놀란 세현은 정신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아무 생각 안 해요. 그냥 자기하고 걸으니까 좋기만 해요."


형우는 찜찜한 마음을 억누르며 세현의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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