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가 조금 넘었는데 뱅갈 고무나무 한 그루가 집으로 들어왔다. 내 키만큼이나 커다란 나무 목에 매달린 분홍색 리본 위엔 '멋진 퇴임을 축하합니다, 세수해 부부 마음 담아'라는 글씨가 또렷하게 적혀있었다. 리본에 적힌 글귀를 보며 그이가 옛날엔 퇴임하는 것이 멋진 일이라기보다 아쉬운 일이었고, 축하받을 일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축하의 분위기라고 했다. 직장 동료들도 퇴직해서 어쩌냐는 반응보다 이제 자유로워졌으니 맘껏 놀면서 지내면 되니 정말 좋겠다고 하더란다. 정말 그이의 퇴직이 멋진 일이고 축하받을 일인지 어디 한번 지켜봐야겠다.
그이보다 3년 먼저 일을 그만두고 자유의 몸이 된 내 경우엔 좋은 면도 있고 아쉬운 면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90%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일에 얽매여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시간을 보낼 때는 만족감이 있고 주체적인 나를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그이가 몸담고 지내오던 직장을 퇴임하고 난 첫날이다. 이제 그이는 아침 일찍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이제 오늘부터 나하고 그이는 삼시 세끼를 함께 먹어야 하는 식동무가 된 것이다. 남편들의 퇴직을 미리 맞이했던 인생의 선배들이 그랬다.
“아휴! 이제 겪어 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거야.”
“남편이랑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온종일 붙어 지내다 보니 글쎄 하나도 맞는 것이 없더라고.”
“이제 자주 싸울 거야.”
이런 말들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말 불편할까? 무엇이 그렇게 불편할까? 오히려 그이가 출근하지 않으니 아침 시간을 여유롭게 시작할 것 같은데. 결혼 후 십 년 정도는 많이 다투었지만 이제는 싸울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 하지만 인생 선배들의 경험에 의한 말이니 어디 한번 나도 부딪혀 보고 나서 가타부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아침 시간을 보냈다. 나는 부엌에서 야채를 찜기에 찌고, 계란을 삶고, 당근과 토마토를 믹서에 갈았다. 나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일어난 그이는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식사하러 나오라고 부르니까 그이가 식탁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이가 출근하던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의 다른 점은 식사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시계를 쳐다보며 바쁘게 음식을 씹고 삼키던 그이가 오늘은 먹을 때 시계를 쳐다보지 않았다. 출근할 땐 내가 그이의 계란을 까주었는데 오늘은 그이가 내 계란을 까주었다. 또 음식을 느긋하게 먹으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여유로움이 우리 집 식탁에 살포시 파랑새처럼 날아든 것이다. 여유로운 방석에 앉은 나는 그이에게 대뜸 제안 하나를 했다.
“여보야! 우리 이제 내일부터 아침 식사 준비 같이할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은 그이가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대답했다.
“글쎄.”
처음부터 흔쾌한 답변을 하지 않을거라 예상했기에 그이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뭐 오늘은 삼식이가 된 첫날이니까 내가 봐준다'라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계속 글쎄라는 대답을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할지 묘책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