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우리 아침 같이 차릴까?"라는 나의 도발적인 제안에 그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침을 같이 차리기 위해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식사 후에 자발적으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이런 결과가 일어난 것일까? 대답은 NO다.
남편이 퇴직을 앞둔 3년 전부터 가사노동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었다. 이건 여권신장이니 여성해방운동 차원에서가 아니라 친구같이 지내야 하는 노년기를 맞이하기 위한 관문 같은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이와 나는 언쟁에 휘말렸고 남편이 내린 결론은 늘 잘하는 사람이 하자는 식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사노동을 잘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것은 당연히 내가 아닌가? 나라고 타고 태어날 때부터 가사노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그이보다 내가 그동안 가사노동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조금 더 숙련된 것뿐이었다. 또 암묵적으로 가사 노동은 남편보다 아내의 몫이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이었다.
남편은 유교적인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자란 자고로 부엌에 들어와선 안된다는 금기사향을 잘 지키며 자랐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야 부엌이라는 경계가 모호해진 주거형태에 살고 있으니 남자라고 해서 부엌에 안 들어올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남편과 다르게 나는 여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식의 유교적인 전통의 테두리가 없었다. 친정아버지는 엄마를 위해 마늘 까는 일은 물론이고 빨래도 잘 개 주셨다. 출근하시기 전엔 나와 언니 동생의 긴 머리도 단정하게 묶어주셨다. 이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나는 당연히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이었다.
싱크대 설거지 통 앞에 서서 빈 그릇을 닦고 있는 그이의 뒷모습이 무척 어색해 보였다. 이건 순전히 내가 보는 관점일 테지만 남편의 설거지하는 모습이 익숙지 않은 탓이었을 것이다. 수도꼭지에선 물이 쫄쫄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먹은 그릇이라고 해야 과일 접시 하나에 야채찜 담은 그릇 하나, 당근 수프 담아 먹은 그릇 두 개, 요구르트 그릇 두 개, 수저와 포크 두 개씩이 다였다.
남편은 오른손에 든 수세미로 접시를 서너 번 문지르더니 물로 헹구었다. 다음엔 올리브오일이 묻어 있는 오막한 그릇을 행주로 서너 번 문지르다 행주를 싱크대 안에 놓더니 손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미끌거리는 기름의 촉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남편 주변에서 도마와 주방기구를 정리하던 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남편의 어깨너머를 힐끔거렸다. 남편은 계속 손으로 그릇을 문지르고 있었다. 더 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된 내가 그이를 향해 명령하듯 소리쳤다. 되도록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여보야! 기름기 묻은 그릇은 주방세제를 묻혀서 닦아야죠!"
"이 정도는 뭐 그냥 닦아도 되지 않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훈수를 두는 내가 못마땅하다는 말투로 남편이 내 말을 받아쳤다.
"아니, 여보! 기름기는 물로만 닦아지지 않으니 세제를 써야 한다니까?"
"이 사람아!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세제는 되도록 쓰지 말아야지."
남편은 미끌거리는 기름기를 닦아 내느라 손으로 계속 접시를 문질러댔다. 답답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은 내가 기름기 묻은 그릇을 이리 내라며 뺏으려 했다. 그제야 남편은 수세미에 주방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더니 수돗물에 뽀드득 소리가 나게 헹구었다. 잘 닦인 그릇을 건조대 위에 올려놓던 남편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에겐 믿음이 필요 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잘할 때까지 기회를 주며 믿어줘야겠지. 그럴 날이 제발 빨리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우리나라 속담에 "막내딸 대신 시집간다"라는 말이 있다. 막내딸의 행동이 미더워서 딸 대신 무엇이고 해 주려는 엄마의 마음을 꼬집은 말일테다. 지금은 나도 막내딸 대신 시집가고 싶은 마음이나 남편이 요청한 데로 나에게 필요한 건 남편에 대한 믿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