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훈 군이 준비한 이벤트는 정말 놀라웠다. 8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오전 10시경에 그이가 재직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에게 카톡이 왔다. 동훈이하고 손을 꼭 잡고 분홍색 차 앞에서 활짝 웃는 사진과 함께 “선생님! 학교에 오셔야겠네요.”라는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퇴임식을 이미 마쳤는데 다시 학교에 간다는 것이 어색하다고 하던 그이에게 오라는 손짓이었다.
교장선생님의 문자가 온 후 5쯤분 뒤에 동훈이한테 전화가 왔다. 다른 제자가 지금 우리 집으로 모시러 가고 있으니까 준비해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007 첩보 작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니 핑크색과 노란색 차 두 대가 운동장 옆에 있는 급식실 앞에 나란히 서 있었다. 이런 이런! 진짜로 차를 보내다니. 그것도 두 대씩이나.
핑크색 차 앞에서 서성이던 동훈이가 우리가 도착한 것을 알아차리고 달려왔다. 그이와 뜨거운 포옹을 하던 동훈이가 말했다. "선생님! 짜잔~ 저희가 커피차를 불렀습니다. 900잔을 마실 수 있는 커피 차니까 영생고 전교생과 선생님들 모두 마셔도 남을 거예요.” 동훈이가 준비한 이벤트는 바로 열열한 팬들이 연예인들에게 보내준다는 커피차였다. 아! 이렇게 그이는 오늘 동훈이 덕분에 스타가 되었다.
놀랍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지만 고마움을 잔뜩 머금은 그이와 동훈이, 반차를 내고 달려온 제자와 교장 교감 선생님, 수업이 비어있는 몇몇 선생님들이 커피차 앞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분위기를 슬슬 데웠다. 나는 레모네이드를 주문하고 잠깐의 틈을 이용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 카톡창에 상황을 알린 것이다. 놀라면서도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밝혔다.
“근데 얘들아! 분홍색 차랑 노란색 차가 오픈카 같아. 그리고 차 안에 커피잔이 보여. 차 앞면에는 '승호 커피'라 쓰여있고 아빠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붙어있어. 그리고 47회 졸업생 드림이라고 적혀있네."
“오우~~~~~커피차야? 정말 멋진 이벤트넹.”
“우와 진짜 짱이네요. 커피차라니.”
딸과 며느리의 반응이 뜨거웠다. 딸은 퇴임식 때 했으면 진짜 잔치 분위기였겠지만 이렇게 퇴임식 뒤에 한 번 더 이벤트가 있으니 좋다고 했다. 또 퇴임식 하던 날 행사를 하느라 재학생들하고 인사를 제대로 못했으니 오늘 인사를 나누면 아주 좋겠다고 했다. 서울에 사는 며느리는 자기도 마음 같아선 내려가고 싶다며 커피차를 보내다니 정말 놀랍다고 했다. 아들 사위 또한 센스 있고 멋진 제자라며 박수 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이의 학교와 차로 5분 거리의 여고에 근무하는 딸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들렸다. 활짝 웃는 딸의 모습은 자랑스러운 우리 아빠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모든 선생님들과 재학생들이 점심을 먹고 커피 차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이의 손을 잡고 반가워하는 770명의 재학생들과 교직원 80여 명이 한데 어우러져 이별의 잔치를 벌인 커피 마당은 그야말로 생경스러우면서도 훈훈한 축제의 장이었다. 퇴임식을 하던 날 재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지 못해 아쉬워했던 그이의 마음을 동훈이와 그의 친구들이 흡족히 채워주었다. 마무리를 단 한 번에 하지 않고 이렇게 두 번에 나누어하니 더욱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학창 시절 총학생회장을 맡았던 동훈이는 올해 12월에 장가를 간다고 했다. 동훈이에게 일하느라 연애에 관심이 없던 노총각이 장가를 간다니 너무 기쁘다고 하자 “선생님이 퇴임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이 퇴임하셨으니 이제 저도 장가를 갑니다.”라며 농담을 했다. 위트가 넘치는 동훈이도 얼굴에 함박웃음을 내내 머금고 있었다.
커피잔을 감싸는 종이 홀더에는 “영원한 나의 스승, 권승호 선생님의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얘들아 선생님이 이제 간다! 선생님 없다고 학원 가서 헛공부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라! 제47회 졸업생 드림"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커피 차에 씐 글귀도 따뜻했다. "이제 우리들 말고 선생님의 앞날을 위하여! 선생님, 어차피 인생은 육십부터래요.” “권승호 선생님의 사랑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제47회 졸업생 제자들-박준성, 이동훈, 이승률, 최준욱, 김대영, 김은성, 김준현, 김태경, 김태우, 민준홍, 박주현, 신동욱, 양준철, 양태랑, 이민규, 이민석, 이 인권, 이태준, 최양육, 한진우, 민동원-"
우리는 커피차와 함께 했던 화려한 축제를 마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동훈이와는 신붓감이 될 아가씨와 함께 다음 주 금요일에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잘생기고 리더십이 있으며 영민하고 멋진 그이의 수제자 동훈이가 선택한 아가씨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한 주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