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때론 서로 엇갈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이의 제자 중에 동훈이라는 제자가 있다. 남편이 학교에 부임해서 첫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다. 남편은 그때 당시 어찌나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던지 학생들과 학부모들 사이에 권사모(권승호 산생을 사모하는 모임)라는 모임이 생겨날 정도였다. 동훈이라는 학생은 남편을 잘 따르는 것을 넘어서서 권사모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남편을 존경하는 학생이었다. 동훈이는 졸업을 하고 나서 대학에 다닐 때도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도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대동하고 인사하러 왔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우리 집으로 인사하러 왔던 날, 동훈이는 친구들의 의사도 묻지 않고 우리가 나중에 취직해서 돈 벌면 선생님 차를 바꿔주자고 제안했다. 함께 왔던 학생들이 얼떨결에 동훈이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동훈이의 눈에는 남편이 타고 다니던 차가 왜소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때 당시 내 차는 소형이었지만 그이의 차는 소나타였다. 우리에게는 소나타도 충분히 크고 괜찮은 차였지만 동훈이는 자기 아버지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으니 남편의 차가 왜소해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동훈이라는 제자가 그때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도 아니고 차를 선물한다 해도 추호도 받지 않았을 터이지만 그런 마음을 먹는 동훈이를 보며 따뜻하고 순수하며 품이 넓은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 그이의 퇴임식을 화사하게 마치고 제자들과의 만남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이의 제자들은 전국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제자들도 많이 있다. 흩어져 있는 제자 중에 휴가를 내서 내려오겠다는 제자도 있었다. 그이는 나중에 시간 내서 제자가 사는 곳을 방문하겠다며 말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훈이라는 제자에게 연락이 없었다. 하지만 조용하게 교단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그이의 바람이 있었기에 연락이 오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9월 어느 날에 만나서 식사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훈이라는 제자는 남편에게 작년부터 퇴임식을 언제 하느냐고 자주 물었다고 한다. 그이는 생일이 6월생이라 1학기를 마치는 8월 말까지 근무한다고 했단다. 그이는 동훈이와 통화하던 그때 당시는 퇴임식 날짜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일까? 그이의 퇴임식은 8월 25일이었으나 동훈이는 퇴임식을 8월 마지막 날 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친구들과 함께 깜짝 이벤트를 하려고 사흘 전에 시간을 알아보기 위해 학교로 전화했다고 한다. 그이에게는 귀띔도 하지 않은 채.
학교에서 퇴임식을 마쳤다는 소식을 듣게 된 동훈이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그이에게 곧바로 전화했다. 그이가 전화를 받자마자 “선생님! 너무 슬퍼요.”라고 했단다. 동훈이는 같은 기수의 친구들과 마음을 모아 그이의 퇴임식에서 깜짝 이벤트를 하려고 업체 알선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퇴임식 날짜를 알려주자니 퇴임식에 오라는 소리 같아서 차마 말하지 못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동훈이의 슬퍼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이를 바라보는 나도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이의 퇴임식을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며 기쁨을 드리고자 했던 동훈이의 계획이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처럼 동훈이의 마음이 과녁을 빗나가 버린 것 같았다. 한참을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이에게 문자가 날아들었다. “선생님! 8월 31일 오전 시간 통으로 비워두세요. 친구들과 함께 갈게요. 그리고 선생님을 용서할게요. ‘용서하라’는 말은 선생님께 3년 내내 배운 거라서 써먹는 거예요.^^” 아! 가슴 찡하다는 말은 이런 순간에 해야 맞을 것 같다. 그이의 동훈이에 대한 사랑, 동훈이의 그이에 대한 사랑은 찐사랑이어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 같았다. 내가 아무리 막아선다 해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동훈이는 그이가 1학년과 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3학년 때 다른 반에 배치되었다. 동훈이는 3학년 내내 그이의 반 학생들을 보며 “내가 그 반에 있어야 하는 데 왜 너희들이 거기 있느냐”며 진담 같은 농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졸업을 하고도 마치 3년 내내 그이가 담임 맡았던 학생처럼 그이에게 찾아왔다. 동훈이 뿐 아니라 동훈이 부모님도 동훈이를 따라 그이를 좋아했다.
안타까운 8월의 마지막 날이 내일이면 다가온다. 동훈이는 어떤 모습으로 그이 앞에 나타날까? 또 동훈이와 그의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는 어느덧 아빠들이 되어 있는 그이의 제자들을 나는 또 어떻게 대해야 할까? 00군, 00 군이라고 불렀던 그이의 제자들에게 어떤 호칭을 써야 할까? 그이의 퇴임식은 끝났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