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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닿은 모험, 첫 수익의 설렘

6화

by 김경희

ISA 계좌로 돈을 보내고 나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계좌 속 천만 원은 투자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느 종목에 투자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화면에 빼곡히 늘어선 종목 이름들은 낯선 도시의 간판처럼 나를 압도했다. 안전한 길인지, 함정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며칠간 망설이다 결국 가장 익숙한 이름 하나를 클릭했다. TV 광고에서 자주 보던 기업이었다.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았고, 특별히 잘 아는 회사도 아니었다. 다만 ‘이 정도 이름이면 쉽게 무너지진 않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이 선택 이유였다.


주식 창에 매수 금액을 입력하는 순간, 손끝이 떨렸다. 버튼을 누르기 직전 잠시 심장이 멎는 듯했지만, 곧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호가창 숫자가 빠르게 움직이며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조금 낮게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내 숫자보다 높게 올라가 버렸다. 급한 마음에 나는 시장가 버튼을 눌렀다. 드디어 내 돈이 낯선 세계로 흘러 들어갔다. 화면 속 숫자가 바뀌고, 보유 주식 수량이 표시되자 현실감이 몰려왔다.

‘이제 시작이구나.’

주식 방송에서 조선주와 방산주가 뜰 거라고 했다. 중동지역에 터진 전쟁과 미국 대통령의 발언 영향이라며, 전문가들이 전망을 쏟아냈다. 나는 조선주, 방산주, 그리고 반도체, 바이오·제약주를 나누어 샀다.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주문 버튼을 눌렀다. 사흘 만에 주식통장에 들어있던 천만 원이 가뭄에 마른 저수지처럼 바닥을 드러냈다.

창밖으로 늦겨울 바람이 스치자, 잔잔했던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언니가 주식으로 돈을 잃은 자리에서 나는 다른 길을 찾고 있었다. 주식이 내 삶을 어디로 데려갈지 몰라도, 나는 멈춰 있지 않았다. ISA 계좌 속 숫자가 나의 새로운 여정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며칠간 계좌를 열어도 숫자는 미미하게 움직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통장 앱을 열었다. 그때마다 주식 창은 약간씩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습관처럼 앱을 켰는데, 눈앞에 빨간 숫자가 번쩍 떠올랐다. +25.67% 표시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심장이 오래간만에 벅차게 뛰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256,000원의 수익금을 보며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창밖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작은 기쁨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시장가로 이익 난 주식을 팔았다. 주식은 금세 팔렸다.


“와, 이런 거였어? 주식이?”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그에게 자랑했다.

“여보! 있잖아, 나 삼일 만에 25만 원 벌었어.”

“정말이야?”


앉아서 벌었다는 사실, 사흘 만에 주식으로 25만 원을 번 성취감이 남편에게도 전해졌다. 작은 수익이 준 건 단순한 금액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었다. 연금으로 생활하며 불안과 고민 속에 머물던 마음이 잠시나마 가벼워졌다. ISA 계좌 속 숫자가 단순한 돈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해 주는 도구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혼자 중얼거렸다.

“조금은, 빛을 본 것 같아.”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과 설렘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조용히 이끌었다. 두려움보다는 호기심과 기대가 마음을 채웠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그 안에서 한 걸음씩 길을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음 날, 바이오주가 올랐다. 215,775원의 수익을 남기고 팔았다. 이어 방산주로 355,000원, 제약주로 130,500원을 벌었다. 여덟 번의 매매 끝에 마치 주식 고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열흘 만에 94만 원이 넘는 수익을 얻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식시장에는 ‘초보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있었다. 공황상태가 아니라면, 대부분 초보자가 처음 사는 주식에서 수익을 낸다는 뜻이다. 어쨌든 첫 경험은 짜릿했다. 한 시간을 강의하기 위해 준비하고, 이동하고, 강의하는 데 드는 시간을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식으로 번 돈은 그 모든 시간을 단축시킨 듯했다.

‘주식으로 돈 버는 게 이렇게 쉽다고? 땅 짚고 헤엄치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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