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내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남편도 나도 오랜 세월 몸담았던 일터의 메임에서 놓였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은 연금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수입이 반 토막 났다. 지출은 여전한데 수입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마음이 가끔 흔들렸다. 실제로 모자라는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과 내가 함께 받는 연금에다 아들, 딸이 보내주는 용돈만으로도 생활은 충분했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숫자는 분명히 맞아떨어지고 있는데도, 통장 잔고 확인을 할 때마다 어깨 위로 묘한 불안감이 내려앉았다. 불안은 단순히 돈의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이제는 더 늘어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 삶 전체가 좁아지고 위축되는 듯했다.
가난이라는 것은 꼭 통장의 잔고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안정적인 형편일지라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은 가난해지고 불안은 순식간에 삶 전체를 잠식한다. 나는 이런 사실을 직업 전선에서 물러난 이후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래서였을까. 언니가 주식으로 크게 손해 본 사건과 맞물려 나는 이상하게 주식이라는 세계에 마음이 끌렸다. ‘돈을 불린다.’라는 행위가 더는 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독일 방법 같았다. 이런 마음이 들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증권사에 통장을 개설하는 일이었다.
결심하듯 스마트폰을 꺼내 증권사 앱을 설치했다. 처음 보는 아이콘을 눌러 로그인 화면을 마주하자, 또 다른 긴장이 엄습했다. 화면 곳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용어들이 가득했다. ‘위탁 계좌’, ‘중개형 계좌’, ‘국내 수수료 우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도무지 감 잡히지 않았다. 한참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결국 딸에게 전화 걸었다.
“엄마, 무조건 ISA 계좌로 해. 그게 제일 좋아.”
딸의 단호한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꼈다. 지시대로 화면을 터치하며 계좌를 개설했다. 처음 보는 앱 화면 속에서 버튼 눌러 인증하고, 정보를 입력하고 나니, 작은 성취감이 마음속에 번졌다. 비록 무슨 선택을 하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 걸음 내디뎠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ISA 계좌가 뭔지, 왜 필요한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조금씩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ISA 계좌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ndividual Savings Account)’라는 이름을 가진, 말 그대로 여러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을 수 있는 통합 계좌였다.
주식, 펀드, 예금, 채권 등을 한데 모아 운용할 수 있고, 세제 혜택도 컸다. 매년 최대 2천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의무 가입 기간은 3년. 만기 후 발생한 수익 중 일정 금액까지는 전액 비과세, 그 이상은 세율을 대폭 낮춰주는 계좌였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세금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지킬 수 있는 수단이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깨닫자, 처음 계좌를 열던 날 어리둥절함이 오히려 웃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딸의 말에 의존했지만, 뜻밖에도 가장 좋은 출발을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딸이 대신 알아주길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내가 직접 공부해야 한다.’
그날 이후 한 달에 한 권씩 주식 책을 사서 펼쳤다. 메모하고, 강의 듣고, 낯선 용어들을 하나씩 내 언어로 바꾸어갔다. 주식은 단순히 돈 벌고 잃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내 삶의 균형을 되찾는 여정이었다. ISA 계좌라는 작은 문을 통해, 나는 주식이라는 거대한 바다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두려움 대신 새로운 결심이 조용히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