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억의 눈물, 나의 배움

3화

by 김경희

분노가 치밀었다. 언니가 주식으로 큰돈을 잃었을 때, 처음엔 그저 안타까움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 안에 불덩이처럼 차오른 것은, 단순히 언니의 돈 잃은 현실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주식이라는 세계에 대해, 경제와 돈 굴러가는 방식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간을 빼먹는다는 이무기처럼 땀으로 번 남의 돈을 가로채는 나쁜 자들을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추적도, 책임도, 그 무엇도 닿지 않는 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었다. 분노는 다른 형태로 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 한편에 복수심이 싹텄다. 그 복수는 칼이나 주먹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속삭이는 마음의 목소리, ‘그놈들을 이기는 힘은 오직 알아야 한다’라는 소리였다.


캔디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언니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달리는 캔디처럼 다시 하루하루 활기차고 성실하게 살아갔다. 힘든 근무에도 흔들림 없이 책임을 다하는 언니의 자세는 결국 수석 간호사의 자리까지 올려놓았다.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동료를 이끌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언니 모습은 그 자체로 신뢰의 상징이었다.


성실함은 언니가 돈을 다루는 방식에도 이어졌다. 더 이상 무모한 모험을 하지 않았다. 은행의 펀드 매니저와 상담하며 안정적인 투자 계획을 세웠다. 하루하루 모아 온 돈을 단숨에 불리려 하지 않고, 조금씩 그러나 꾸준하게 굴리는 길을 택했다. 주식 리딩방의 달콤한 속삭임 대신, 전문가의 조언과 현실적인 분석에 의지했다.


절약하는 생활 뒤로 언니는 여유가 생기자 자금을 은행의 ETF 계정에 넣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넣고 세금혜택을 받으며 장기적인 안정을 추구했다. 이 방법은 높은 수익률보다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돈 지키는 방법이었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모으고, 성실하게 지키는 삶이었다.


지난 시간 속에서 언니가 배운 것은, 성실함 자체가 가장 든든한 재테크라는 것이었다. 마음 다해 쌓은 작은 습관과 꾸준함이 결국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언니는 크게 잃고 난 후에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언니가 잃은 1억은 되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은, 다시는 속지 않게 해 줄 든든한 방패가 되었다.






언니가 주식으로 사기를 당하고 난 뒤, 나는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니, 공부라기보다 차라리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하게도 언니가 큰돈을 잃고 난 이후부터, 그전까지 내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던 ‘주식으로 돈 버는 일은 죄스럽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마치 누군가 몰래 지워버린듯, 내 마음속의 금기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왜 그런 변화가 찾아왔는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돈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삶을 지탱하는 기초가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는 점이다. 돈은 한 사람의 일상과 자존심, 미래까지도 함께 지탱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그때부터 돈을 지켜내고, 불려 나가는 일은 더 이상 탐욕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돈이 부족할 때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그 무게를 가장 가까운 사람의 상실을 통해 목격했기에, 나는 더 이상 ‘돈을 불린다’는 행위를 죄책감 속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스스로 삶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처럼 느껴졌다. 언니가 지켜내지 못한 1억 원의 무게가 내 어깨 위에 고스란히 얹히는 듯했고, 나는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츰 주식이라는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던 작은 윤리 같은 신념은, 삶의 무게 앞에서 너무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