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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리딩방에서 잃어버린 1억

2화

by 김경희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큰돈을 잃었다. 주식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투자’라 불리는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뿐이었는데, 그 한 걸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버렸다.


우리 자매는 어릴 적부터 경제관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에서는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만 가르쳤고, 교회에서는 헌금하는 삶을 강조했으며, 집에서는 부모님께 손 내밀면 용돈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전부였다. 돈이 어떻게 불어나고, 세상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타는 월급 조금 덜 쓰고, 남은 돈 통장에 모으는 일뿐이었다. 내 손에 쥐어진 은행의 작은 통장은 안정이 아니라 단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달래주는 부적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형부의 사업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동안 튼튼하게 쌓아 올린 것 같던 생활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강남의 아파트는 빚쟁이들의 손에 넘어갔고, 언니는 짐을 꾸려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해야 했다. 햇빛조차 드물게 들어오는, 눅눅한 공기가 배어 있는 작은 공간으로.


그곳에 앉아 있는 언니는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니었다. 곱게만 살아온 사람, 고생이라는 단어를 모른 채 살아온 사람이 한순간에 얼굴빛이 바뀌고, 말수가 줄어들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벽에 기대어 앉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는 언니의 눈빛은 낯설고도 아팠다.


언니는 그래도 버텨내려고 했다. 무너진 삶 앞에서 주저앉기보다는 다시 두 발로 일어서기로 했다. 언니는 대학 때 전공했던 간호사 일을 시작했다. 간호학과를 나왔지만, 결혼 전에 간호사 일을 한 건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언니는 기독교 대학생선교회 이화여대 책임 간사로 일하다 결혼 후엔 형부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안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변회 된 삶을 등에 업고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언니의 눈빛은 달라졌다.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삶’ 앞에 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언니는 낮 근무 이외에도 다른 병원의 밤 근무를 자처했다. 다른 이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시간, 가장 고되고 가장 고독한 자리를 언니는 오히려 붙잡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힘든 일을 자처해 가며, 삶을 온통 일에 매달았다. 출근할 때는 늘 어두운 새벽길이었고, 퇴근길에도 동이 트기 전 희뿌연 하늘이 언니를 맞이했다. 하루하루가 피로의 연속이었지만, 언니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7년이 흘렀다. 남들은 잠시 스쳐가는 고단함이라 여길지 몰라도, 언니에게는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시간이었다. 악착같이 절약하고, 허투루 쓰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일한 끝에 언니는 통장에 1억이라는 돈을 모았다. 그 순간 언니는 비로소, 다시는 무너져 내리지 않을 삶의 토대를 손에 쥔 듯했다.


나는 언니가 손에 쥔 돈의 무게를 잘 안다. 그것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언니의 눈물과 땀, 시간을 갈아 넣은 시간의 무게였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려는 한 인간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가 쌓아 올린 흔적이었다. 언니는 여전히 웃음을 크게 짓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두려움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통장에 찍힌 숫자는 언니에게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아주는 작은 빛이었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속으로 교묘하게 파고드는 욕심이었다. 성실하게 쌓아 올린 지난 7년의 무게를 언니는 한순간에 흔들어 버렸다. 뼈를 갈아 넣듯 모아 온 돈이 통장에 1억이라는 숫자로 자리 잡자, 그 숫자는 더 이상 안정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크게 불려야 한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그때 언니 앞에 다가온 것이 주식 리딩방이었다.


화면 속에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조금만 있으면 1억이 2억 되고, 2억이 4억 됩니다.’라는 확신 어린 말들은 오랜 고생 끝에 기댈 곳 찾던 언니 마음을 흔들었다. 언니는 나에게도 말했다.

“경희야! 너도 같이 하자. 우리가 이렇게 평생 벌어봤자 얼마나 모으겠니. 이번만 잘하면 우리 인생도 달라질 수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언니는 주식 세계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언니의 눈빛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확신에 차 있었다. 언니를 말리고 또 말렸다. 성실하게, 천천히 살아온 길을 놓치지 말라고,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고. 청렴결백하게 살다 가신 아버지의 정신을 생각하라고. 그러나 내 목소리는 언니의 귀에 닿지 않았다.


결국, 언니는 리딩방 ‘교수’라는 사람의 말을 따랐다. 그의 확신에 찬 한마디가 언니의 마음을 단단히 붙들었다. 그는 언니와 리딩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종목을 찍어 주었고, 얼마에 구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작은 수익을 여러 차례 경험하며 리딩방 교수에 대한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다 새롭게 제시한 종목 앞에서 망설임 없이, 가장 비싼 시점에 가진 돈 전부를 넣고 말았다. 주식은 언니와 리딩방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희망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기도 전에 그래프는 가파르게 곤두박질쳤고, 바닥에 닿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투자한 1억은 불과 몇 주 만에, 천만 원도 채 남지 않은 잔해로 쪼그라들었다.


그때의 언니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말도, 눈물도, 한숨도 없었다. 그저 텅 빈 표정, 숨 쉬는 인형처럼 앉아 있던 언니. 성실하게 살아낸 7년 시간과 함께, 언니 자신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부도난 사업을 애써 일으키느라 지쳐 있던 형부의 기운마저 충격 속에 무참히 쓸려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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