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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투자

24화

by 김경희

“가장 좋아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이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워런 버핏이다. 그는 전 세계의 투자자들이 ‘투자의 신’이라 부른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철학적 파트너 찰리 멍거는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라.” 말했고, 필립 피셔는 “가만히 앉아서 복리가 일하게 하라.”고 했다. 이들의 무기는 총도, 검도, 차트도 아닌 시간이었다.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식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투자자들은 손가락이 바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매매 버튼을 누르며, 마치 리모컨으로 운명을 조정하려는 사람들처럼 산다. 장기투자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복리는 조용히 일한다. 대신, 성급한 사람 옆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장기 투자 철학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인물이 있다. 바로 존 리(John Lee)다. 그의 강연을 처음 들었을 때, “금융 문맹은 질병이다.”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말했다. “잘못된 금융 지식은 전염된다. 부모에서 자녀로, 자녀에서 또 다음 세대로.” 이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귀가 솔깃했다.

존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자 되지 못하는 이유로 ‘사교육비’를 꼽았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공부시키느라, 정작 아이의 ‘자본’을 키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학원비 대신 주식을 사줘라.” 말한다. 또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10년은 기다리라고 한다. 그게 진짜 장기 투자라고 한다. 10년을 기다리라니,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대학 등록금 모을 때도, 내 집 마련을 꿈꿀 때도 10년이 넘게 걸린다.


존리가 말한 유대인의 성인식도 매우 인상 깊었다. 유대인은 성인식을 하는 13살이 되면 친구들과 부모 친척에게 구약성경과 시계, 현금을 선물로 받는다고 한다. 그때 받는 현금은 약 5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현재 가격으로 7천만 원 정도다. 이 돈은 아이의 첫 투자 자본이 되고, 아이는 그때부터 ‘돈을 일하게 하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돈을 터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이 주신 또 다른 재능으로 여긴다. 반면 우리는 돈을 말하는 순간 얼굴이 붉어진다.

“돈 얘기 좀 그만해라.”

“너무 계산적이라 싫다.”


하지만 돈은 인간이 만든 가장 공정한 언어다. 돈을 모른다는 것은 세상의 절반을 모른다는 뜻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존 리의 말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주식 사주고, 생일 선물로 펀드를 사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자식에게 가르치지 못했지만, 태어날 손주들에게 돈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법을 어릴 때부터 알려주고 싶다. 그게 진짜 ‘경제 교육’이니까.


주식은 단순히 사고파는 행위가 아니라, 기업과의 동업이다. 기업이 성장하면 투자자도 함께 성장하고, 기업이 흔들리면 투자자의 마음 또한 요동친다. 그렇기에 단기 매매로는 기업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기 어렵다. 오늘은 오르고 내일은 내리는 주가의 흐름 속에서 그래프는 마치 감정의 심전도를 그려내듯 출렁인다. 그러나 변동의 파도를 지나 묵묵히 기다릴 때, 비로소 돈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원전 주를 보유 중이다. 산업은 일어나고 있고, 기업의 가치는 높은데 시장에서 저평가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매수했다. 미래산업의 심장은 전기다. 로봇 산업이 커지면 전기가 필요하고, 전기차가 달리려면 충전소가 필요하다. AI가 밤새 일하려면 전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전기의 시대가 오고 있다. 투자금액의 30%를 원전 주에 투자하고 있다.


10년 이상 보유하게 될지, 그 안에 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한 기업의 주식이니 긴 호흡으로 밀고 나가고 싶다. 주가는 늘 변동 있지만, 가치 있는 기업은 결국, 시간을 이긴다고 한다. 그래서 최소 10년은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장기 투자의 경우 목돈을 한 번에 넣을 수도 있지만 좋은 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야금야금 모아가는 방법도 있다. 10년 이상 장기 투자로 성공한 사람 중에는 월급의 20%를 시가 총액 1위 하는 종목만 사서 꾸준히 모으고 있는 사람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사는 기술도, 파는 기술도 아닌 ‘안 파는 기술’이라고 한다. 나부터도 주식을 사자마자 팔 생각부터 하지만 장기 투자는 ‘언제 팔까’의 문제가 아니라, ‘왜 샀는가’를 묻는 철학이다. 기업이 잘되고 있다면,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면, 굳이 팔 이유가 없다. 다만 내 선택이 틀렸거나 산업이 완전히 바뀌었을 때 이별하면 된다. 결국, 주식으로 돈 버는 비결은 복잡하지 않다. 좋은 기업을 찾아서, 꾸준히 오래 믿고 기다리는 것. 이 단순한 문장을 믿고 실천하는 자가 승자가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모든 사람에게 장기 투자가 정답은 아니다. 매매법은 ‘자기 인생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아무리 장기 투자가 좋다고 해도, 지금 당장 아이 등록금을 내야 하거나 생활비가 빠듯한 사람이 어떻게 10년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10년이 어떤 사람에게는 투자의 시간이 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남은 생의 전부일 수도 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장기 투자는 젊은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하다. 그들에게는 ‘시간’이라는 가장 값진 자본이 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유, 기다림이 곧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반면, 인생의 절반을 이미 달려온 사람들에게는 조금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십 년, 이십 년을 주식에 투자만 하다가 정작 한 푼도 못 쓰고 무덤으로 간다면, 그 복리는 누구의 것이겠는가.


돈이란 살아 있는 시간 동안 잘 쓰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주식이 오르기만 기다리다 정작 인생의 황혼을 놓친다면, 그건 성공한 투자라 할 수 없다. 그러니 나에게 맞는 매매법, 나이와 형편, 인생의 방향을 함께 고려해서 투자방법을 정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투자란 결국 돈과의 싸움이 아니라, 시간과의 대화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내 인생의 시간 안에서 투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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