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한 여름 밤의 꿈
여고 2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몇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친구 넷과 대학생이던 친구의 언니,
그리고 언니의 남자친구와 남자친구의 남자친구,
이렇게 일곱이서 시골로 2박 3일의 여행을 떠났다.
부모님을 떠나 잠을 자본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친구들과 함께 이름 모를 동네,
그것도 흙냄새가 폴폴 나는 시골의 허름한 집에서 지내게 될
2박 3일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며칠 동안 설레였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여행 첫 날,
친구 언니가 바리바리 준비한 먹거리들을
대학생 오빠 둘이서 어깨에 메고
경천 저수지가 눈앞에 훤히 내다보이는
이름 모를 동네로 향했는데 그곳은 바로 재희 오빠네 동네라고 했다.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재희 오빠는
키가 자그맣고 곱슬머리에 갈색 눈망울이 유난히 맑았는데
말수가 적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차를 타고 경천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서로 통성명을 하는 과정에서
내 이름의 끝 자와 재희 오빠의 끝 자가 같다면서
재희 오빠가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하더니 배시시 웃었다.
재희 오빠의 반응에 내 두 볼이 이유 없이 화끈거렸다.
서로 마주보며 수줍어하던 우리 둘을 보며
친구들과 순희 언니, 그리고 성남이 오빠는
박수를 치며 깔깔대고 웃었고 재희 오빠와 나의 얼굴은
과열된 분위기 때문에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버스 안에서 왁자지껄한 시간을 뒤로 하고
재희 오빠네 집에 도착해서 흙가루가 가득하던
방 두 개와 부엌을 다 같이 청소 하고 나니
온몸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 때 만해도 시골의 물 사정이란 것이 도시와 같지 않아서
여자 다섯은 쭈그러진 양은 세수 대야에
물 한 바가지씩으로 땀을 닦아내야 했고,
성남이 오빠와 재희 오빠는 경천 저수지로 멱을 감으로 나갔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더운 날씨에 달구어졌던 온 몸이
시간의 부채질 속에서 평온함을 되찾을 즈음
순희 언니가 앞장서서 슬슬 밥을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는데
순희 언니의 남자친구인 성남이 오빠가 헐레벌떡 돌아와서는
“다들 빨리 짐 싸서 돌아가야 돼”라며 허둥거렸다.
“성남씨 왜 그러는 건데?”라고 묻는
순희언니의 질문에
“재희가 죽었어. 수영 잘하는 놈이 저수지에서 아직까지 안 나왔어.
그래서 경찰서에 신고하고 오는 길이야.”
순간 우리 모두는 찬 서리에 언 병아리가 된 것처럼 벌벌 떨며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꺼이꺼이 울면서
그해의 여름 방학을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고 말았다.
저수지로 멱을 감으러 가면서
까만 밤이 되면 평상에 누워 같이 별을 보자던 재희 오빠는,
별 자리에 대해서 얘기해 준다던 재희 오빠는
그렇게도 쉬이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다.
여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볼 때면
가끔씩 생각나는 곱슬머리 재희 오빠가
그 때 별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린 어떤 사이가 되어 있을까?
한 여름 밤의 꿈이 너무도 쉽게 깨져버린
그 때의 여름밤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