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은 우리가 1년 내내 사이버 연인으로 모니터에만 존재하던 해였다.
21년 1월 말, 남자친구가 반년 간의 교환학생을 끝내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처음에 우리는 올해 안에는 보겠지 싶었지만 양국에서 발표하는 백신 접종 시기가 생각보다 늦어지면서 다가오는 여름방학에는 보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사실 우리는 떨어져 있다는 것에 조금 울적했지만 그 사실이 우리를 괴롭게 할 거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8개월간 떨어져 있던 시기에 별로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국경이 닫히자 좀 당황했지만 뭐 이참에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좀 벌고, 서로 나라의 언어도 공부하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계획들은 문제없이 착착 진행되었었고 그가 한국에 교환학생을 오러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떨어져 있는 동안 참 열심히 살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우리 정말 성숙한 커플이잖아?!
맞아! 우리 정말 어른이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사이버 연애... 생각보다 할만하잖아?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게다가 우리는 운도 좋게 이 시국에 5개월이나 딱 붙어 함께하는 행운을 누렸으니깐.
하지만 그와 5개월 동안 매일매일 봤던 게 오히려 우리에겐 독이었나 보다. 매일 그와 함께하던 일상이 사라지니 공허함이 나를 삼켰다. 매일 아침 그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거나 눈을 뜨면 그가 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침에 눈을 뜰때마다 실감했다. 이제 진짜 없구나...
가끔은 길거리에 커플만 봐도 마음이 아프고 그와 만나는 꿈까지 꾸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을 차려야겠다 스스로 다잡으면서 학교 공부에 집중하려고 했다.
이제 그와 나는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이버 연인으로, 안아줄 수도 없고 얼굴을 만질 수도 없고 노트북 화면에 손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에게 성숙한 연인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 없이도 아주 잘 사는 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나보다 멘탈이 훨씬 튼튼하다고 생각했던 그가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가 학교 가기 전에 잠깐 영상통화를 하자고 하길래 머리를 말리고 바로 나가야 되니 이따가 하자고 했다. 평소에는 바로 알겠다고 하던 그가 그래도 얼굴을 봐야겠다며 그럼 머리 말리는 것만 보면 안 되냐고 물었다.
오잉...
나 머리 말리려면 20분은 걸리잖아. 정말 머리만 말리고 바로 나가야 돼.
그래도 그냥 머리 말리는 거 볼래!
왜! 시끄럽잖아.
안 시끄러워. 예전에는 머리 말리는 거 눈앞에서 봤는데 지금은 못 보잖아... 영상통화로 볼래.
나는 영상통화를 켜고 열심히 머리를 박박 말리면서 중간중간 헤어드라이기를 끄고 물었다.
이제 됐지? 시끄럽잖아! 이제 너 할 거 해.
아냐. 하나도 안 시끄러워. 다 말릴 때까지 볼 거야!
더 열심히 뜨거운 바람으로 다 말리고 나서야 그가 전화를 끊어주었다.
그는 이렇게 가끔 화장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나를 보고싶다고 졸라서 영상통화를 키면 빤히 바라봤고 나는 그냥 보라고 매번 그의 말대로 틀어놓았다. 사실 20년에도 우리는 사소한 일상을 영상통화로 함께 했지만 왠지 그때와는 달랐다. 알콩달콩 노는 기분이 아니었다. 왠지 그가 절박해 보였다. 처음엔 나를 너무 좋아하네! 싶어서 웃기던 마음이 점점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의 멘탈이 흔들리는 듯 했다.
하루는 그와 영상통화를 하다 내가 말했다. 사실 우리... 엄청 오래 떨어진 것도 아닌데 올해는 왜 이렇게 힘들지? 작년엔 8개월이나 못 봤는데도 끄떡없었는데! 그러자 그가 물었다.
감자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감자도 힘들어?
응. 쪼끔 힘들어...
그러자 그가 갑자기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오잉? 내가 징징거려서 짜증이 났나? 싶었는데 갑자기 화면 아래쪽에서 조금 보이는 머리통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 그가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설마 우는 거야...?
울어? 왜 울어!!!
그러자 그가 얼굴도 보여주지 않고 갑자기 방을 나가버렸다. 화면 속 그가 사라진 방을 보는데 내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나왔다. 어디 갔어.... 빨리 돌아와 이 자식아! 모니터에서 사라진 내 사이버연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몇 분이 지나고 돌아와서는 울고 있는 날보고 놀랐다.
감자야 왜 울어!!! 그는 나더러 울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도 같이 울었다.
지금은 서로 이때 진짜 못생겼었다고 놀린다.
여기까지 보면 한 천일동안 생이별한 것 같지만 사실 이때는 21년 4월이었다...... 민망하게도 헤어진 지 3개월째였다. 짧은 시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병원에 가야겠다고 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그가 요즘 눈이 좀 건조하고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안구건조증이라며 눈이 건조해 각막에 스크래치가 많이 갔다고 안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는 평소에 렌즈도 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전공 공부 때문에 컴퓨터 화면을 많이 봐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그가 나랑 하루에 2~3시간씩 영상통화를 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늦은 밤 방에 미등만 키고 영상통화를 할 때도 있었기에 나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영상통화를 하지 말아 보자고 얘기하자 그가 서운한 티를 팍팍 냈다. 나는 그를 다독였다.
일단 눈이 낫는 게 먼저지! 하지만 열흘이 넘게 영상통화를 하지 않아도 그는 계속 눈이 아프다고 했다. 그는 나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우리는 다시 영상통화로 일상을 나눴다.
그래도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이버 연애의 유일한 장점은 만나서 데이트를 못하니 돈들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노트북과 태블릿을 충전할 전기세만 몇천 원 더 내면 된다. 우리는 데이트로 돈 쓸 일이 없을 때 돈을 벌어놓자는 각오로 열심히 과외도 하고 알바도 했다. 각자 월급을 받으면 잔고를 보여주며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는 곳간을 자랑했다.
시간은 흘러 여름이 되었고 곧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아직 백신 1차도 맞지 못한 터라 이번 여름방학에는 만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그 와중에 대만은 올해 안에 외국인 무비자 관광을 재개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선포를 했고 우리의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고 있었다.
언젠가 그와 얘기하다가 말했다. 여름되니깐 00이 후드집업 생각나. 딱 작년 이맘때쯤에 내가 맨날 뺏어 입었었는데...!
나는 추위를 많이 타고 그는 더위를 많이 탔기에 우리가 여름에 집에 있을 때는 항상 그가 만족하는 온도로 에어컨을 틀어두고 나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옷을 뺏어 입기도 했다. 특히 그의 후드집업은 항상 내가 입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그거 보내줄게!
응? 너는 어떻게 하려고?
나는 다른 옷 입으면 되지! 이제는 한국에서 카페 취식도 가능하니깐 감자는 카페에서도 에어컨 많이 쐴 거잖아. 그때 그 옷 입어.
그렇게 그의 옷이 택배로 왔다. 후드집업 하나만 보내줄 줄 알았는데 내가 좋아하던 그의 옷이 여러 개 왔다. 냄새를 맡아보니 그의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나서 울컥했다. 그 후드집업은 여름이 다 갈 때까지 한 번도 안 빨고 조심히 입었다. 내가 그 옷을 입고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고 하자 그가 말했다.
나도 감자 옷 입고 싶은데..! 난 보내달라고도 못해.
왜? 보내주면 되지!
내가 감자 옷 입으면 감자 옷 다 터지잖아...
에고 불쌍하당... 나는 너 옷 입을 수 있는데...
여름 내내 그의 눈은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원래는 4시간에 한번 넣던 약이 2시간으로 주기가 줄었다. 또 다른 약이 추가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눈에 좋다는 영양제나 온열안대를 보내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눈 찜질을 하고 안연고까지 처방받으며 보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상태가 더 안좋아졌다.
정말 컴퓨터 모니터 때문인가 하는 마음에 그는 방학기간 동안 시골 친척집에서 핸드폰, 컴퓨터, 티비를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 화면을 차단하고 자연에서 일주일 넘게 살아봤지만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그냥 체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떨어져 있는 시기가 반년을 넘어가자 갑자기 그가 살짝 돌아버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가 굉장히 진지하게 운을 떼었다.
감자야. 국제부부들은 배우자 비자로 들어올 수 있잖아? 그런데 우리는 연인이어서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어.
응 맞지...
감자는... 나랑 평생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지?
응!
나도 감자랑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야.
뭔데..... 뭔데 이렇게 비장하지? 싶던 차에 그가 말했다.
그러니깐, 우리 지금 혼인신고를 하자!
응???
농담이어야 하는 얘기를 진심으로 하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 얼굴을 찹찹 쳐줄 수가 없어서 모니터를 두드리면서 정신 차리라고 하자 그의 이성이 돌아올락 말락 하는듯했다. 그는 혼인신고는 정말 안되냐고 몇 번 묻고 안된다고 하자 시무룩한 얼굴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드디어 백신을 접종하게 되었지만 2차까지 접종하는 사이 새 학기가 시작됐다.
어쨌든 이제 2차까지 백신을 접종했으니 겨울방학 때 관광비자를 열어주는 나라에서 보면 됐다. 그런데... 문제는 겨울방학까지 그 달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감자야, 우리 그냥 지금 제3국에서 24시간 정도만 1박 2일로 보더라도 잠깐 보자. 귀국해서 자가격리 할 때는 격리하면서 비대면 수업 들으면 되잖아.
나는 잠시 망설였다.
대면 수업도 있잖아. 그건 어떻게 해...?
그냥... 결석하자.
그럴까?
응. 난 괜찮은데 감자는 괜찮아?
응. 괜찮아!!!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다. 삐끗하면 둘 다 그 학기 전체를 날릴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나는 전공특성상 학기가 날아가면 1년 전체가 날아갔다. 하지만 이미 가출한 이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열심히 비행기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가 혼자 돌았을 때는 내가 말렸는데 같이 돌아버리니 말릴 사람도 없었다.
대만인과 한국인에게 관광비자를 내어서 국경을 열어주고, 백신 접종 증명이 되면 자가격리가 없는 나라들을 찾았다. 대부분 신혼여행 등 관광지로 유명한 곳들이었다. 처음 행선지는 괌. 하지만 비행기표가 취소되었다. 후에 또 항공사에서 안전한 날이라며 잡아준 푸켓행도 좌절되었다. 마음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는 영상통화 도중에 계속 안약을 넣었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눈이 빨개졌다. 가끔은 20분 정도 통화를 하다 보면 눈 뜨는 게 힘든지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더 이상 그의 눈에서 빨갛지 않은 흰자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안구건조증은 두통으로까지 번졌다.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낫냐는 남자친구의 질문에 의사는 전공을 묻고는 모니터를 안 보는 분야로 전공을 바꾸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벌써 4학년이라고 하자 인생은 길다고 했다고 한다. (해결책이 정말 화끈하다...)
그는 두통약도 달고 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 희망을 안고 싱가포르를 경유하는 자카르타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그날만을 기다리는데 출발 열흘쯤 전에 남자친구가 말했다.
감자야. 나 영수증 복권에 당첨됐어!!
진짜?! 얼마!!!
200원!
대만달러로 200원이면 한국돈으로 8천 원이었다.
200원... 우와아...! 축하해!!!
그러자 그가 말했다.
이건 그냥 복권 당첨이 아니야.
그럼 뭔데?
항상 당첨이 안됐었는데 지금 갑자기 당첨됐다는 건 틀림없이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만난다는 징조야! 나 이 돈 감자 만날 때까지 안 쓸 거야. 이건 우리 부적이니까!
그는 평소 대만인들은 필요 이상으로 미신을 많이 믿는다며 자기는 그런게 유치하다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벽에 그 소중한 200원 지폐를 붙여놓고 부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하지만 부적의 효험은 꽝이었나 보다. 우리는 짐까지 다 싸놓고 직전에 티켓이 취소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그 돈을 영원히 봉인해 놓겠다고 했다. 나는 계속 보면 속상하니 그러지 말고 빨리 먹을거라도 사 먹으라고 했고 그는 그 길로 과자를 사 먹었다. 그는 그냥 8천원 당첨돼서 과자 냠냠 사먹은 사람이 됐다.
뭐 사먹었어?
초코 과자...
맛있었어?
응...
그럼 됐다!
불행히도(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지만) 학기중 우리의 만남은 줄줄이 무산되었고 곧 방학을 앞두게 되었다. 나는 그의 눈보다도 두통이 자꾸 걱정되었고 매일 그에게 오늘은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언젠가 그가 말했다.
그냥 만성 두통을 달고 산다 생각하면 편해. 이명 환자들은 이명을 일상의 배경음으로 받아들이고 산대. 나도 그러면 되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난 머리 아픈 거 별로 신경 안쓰여.
하지만 여자친구 입장에서 그렇게 쿨하게 거둬질 수 있는 걱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겨울방학에 처음 우리를 좌절케했던 괌에서 드디어 만났다. 4번째 시도만이었다. 공항에 가는 길에서도, 비행기를 타서도 갑자기 내리라고 하면 내려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대만에서 비행기를 못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만나면 공항에서 바로 울고불고할 줄 알았는데 처음 본 남자 같아서 왠지 머쓱했다. 나는 그의 눈부터 확인했다. 눈은 역시 새빨개져있었다. 하지만 그는 왠지 머리는 하나도 안아프다며 이렇게 머리가 멀쩡 한 건 너무 오랜만이라고 정신이 맑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의 눈의 실핏줄이 점점 가라앉았다. 실시간으로 호전되는 걸 보면서 이게 이렇게 빨리 분장 지우듯이 없어질 수 있는 건가? 싶었다.
여행 내내 그에게 물었다.
눈 아픈 건 좀 어때?
너무 신기해. 두통도 없고 눈도 안 아파.
정말?
응. 너무 신기해. 감자가 나한테 뭐 했어?
내가 더 신기해!!! 하얀 흰자 보는 게 얼마만이야..!
여행이 끝나갈 때쯤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나... 감자 없어서 아팠나봐.
응?
눈 아프고 머리 아픈 거, 감자부재로 인한 병인가봐.
그럼 어떡해?
감자가 내 옆에 있어야지!
그렇지만... 이제 우리 곧 헤어져야 되잖아.
그러니깐 우리는 빨리 한 땅에 살아야 돼!
나는 일주일간의 만남을 끝으로 그를 대만에 보내며 그가 돌아가고 나서 다시 눈이 아프면 어떻게 하나 그 걱정이 제일 컸다. 하지만 그를 그렇게 괴롭혔던 안구건조증은 그가 대만에 돌아가서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반년째 눈이 멀쩡하자 혹시나 해서 버리지 않았던 보안경도 버렸고 안구건조증과 완전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가끔 그때 21년을 회상하며 얘기한다.
그때 우리가 동시에 머리가 돈것도 이상하고, 그렇게 괴롭히던 안구건조증이 귀신같이 사라진것도 이상해...
그러게 우리 그때 진짜 뭐에 홀렸었나?
지금 생각해도 참 미스테리한 일이다.
브런치 스토리는 30회까지만 연재가 가능한가 봅니다. 다음 주에는 브런치를 마무리할 마지막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소소한 일상이 담긴 글을 찾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