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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Dec 11. 2024

국제연애하면 좋은 점

얼마 전 브런치에서 통계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통계에는 내글을 읽은 분들이 어떤 검색어로 검색해 내 글에 유입되었는지도 나와있었다. 도시락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찾은 사람이 많았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국제연애', '국제연애 장점', '대만 남자' 등등의 키워드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게 궁금하셨구나 싶어 국제연애의 좋은 점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미리 말하면 진지한 이야기보단 그냥 유치한 얘기들이다.  




그와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대만 남자는 어떠냐, 대만 남자랑 사귀면 좋냐는 질문이다. 여기에 더해 한국남자와 다른 점은 무엇이냐고도 묻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항상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그가 내 첫 남자친구이자 유일한 연애 상대이기 때문에 비교군이 아예 없어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대만에서 장기간 살아본 적도 없으니 대만 남자들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내가 깊게 아는 대만 남자는 오직 남자친구뿐이었다.  


그렇지만 연애초반부터 남자친구의 친구들을 자주 만나며 대만 남자들이 대체로 어떤 성향인지 알것 같긴 했다. 대만남자들은 대체로 수줍음이 많고 온화했다. 또 대만의 보통 연인관계는 여자가 주도하고 남자들은 여자친구의 의견을 따라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친구 커플들과 함께 놀았을 때, 그의 여사친들은 나에게 대만 남자는 절대 고백을 먼저 안 한다고 말했다. 자기 남자친구도 자기를 1년 동안 짝사랑 하면서 맴돌길래 답답해서 자기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고 했었다. 이런 점은 한국과는 좀 다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대체적인 분위기 외에 한 나라의 남자들을 모두 어떻다고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다. 특히나 대만사람들은 자신의 개성대로 사는 편이라 가치관도, 성격도 한국보다 훨씬 각양각색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대만 남자가 한국 남자와 어떤 점이 다르냐 물으면 어떻다 대답하기 난처해져 그냥 선호하는 패션이 다르다고 한다. 처음 대만 길거리에서 눈에 띈 것은 남자들이 민소매를 많이 입는다는 것이었다. 남자친구도 가지고 있는 민소매티가 오천개정도 있는데, 대만이 11월에도 더운 나라이기에 남자친구가 가벼운 옷을 선호하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가끔은 굳이... 그렇게나 딱 붙는 민소매를 입어야 할까 하는 의문은 있었다. 그렇지만 남자친구는 민소매를 입은 스스로의 모습을 정말 좋아했다. 그가 민소매를 입고 나에게 어떻냐고 물어보면 나는 그의 겨드랑이도 바람을 쐬어야겠지 하는 마음으로 늘 최고로 멋있다고 대답했다. 또 불법적인 일로 돈을 버는 사람만 살 것 같은 체인목걸이도 대만 남자들의 애정템이다. 한 번은 그의 목에 걸린 금목걸이를 보고는 기겁했는데 그는 지금도 그때 내가 멋있어서 놀란 줄 알고 있다. 대만 남자랑 연애하려면 패션에 관해서는 조금은 흐린 눈이 필요하다.


그런데 쓰다 보니깐 의도치 않게 단점을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돌아와서 남자친구가 대만인이라 좋은 점은 대만 남자의 특징뿐만 아니라 대만 사람의 특징으로 넓혀 살피면 딱 한 단어가 떠오른다. 나는 대만 사람들을 만나볼수록 그들이 정말 순수하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남자친구를 알아가면서도 단지 연인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라는 걸 자주 느꼈다. 가끔 그의 생각들을 가만히 듣다보면 이렇게 순진한 남자가 있다니..! 싶으면서 그가 나에게 만큼은 상처받지 않도록 잘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하루는 친구를 만나 국제연애에 관한 질문을 받고 온 날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도 궁금해져서 남자친구에게 너는 여자친구가 한국사람이어서 좋은 점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그에게서도 나와 비슷한 답이 나왔다.  


"나는 감자의 좋은 점이 한국사람의 보편적인 특징인지는 잘 모르잖아. 그리고 감자가 첫 여자친구이기도 하고... 그래서 잘 모르겠어."

하긴. 내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그가 잠시 후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르는게 있는 듯 했다. 뭘까 기대한 것도 잠시...

"아! 나는 한국여자랑 연애해서 매 끼니마다 국수 말고 밥을 먹을 수 있어!"

이게 무슨 밥 같은 소리니.

"그게 무슨 말이야..."

"대만은 밥만큼 국수나 빵을 주식으로 먹잖아. 근데 나는 빵이랑 국수는 별로 안 좋아하고 마침 감자는 항상 식사를 밥으로 하잖아? 그래서 나는 데이트할 때 항상 밥 먹을 수 있어. 만약에 대만 여자랑 데이트할 때마다 밥 먹으면 싫어할거야."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진심이야...?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보내니 그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맞잖아... 한국여자들은 대만만큼 국수 잘 안먹잖아..."


그러다 그는 내 눈빛을 보고 안되겠다 싶었는지 머리를 쥐어짜내서 한가지 장점을 더 찾아냈다.

"감자야, 한국 여자들은 남자친구 많이 안 혼내지?"

"글쎄...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대만 여자들은 진짜 남자친구 많이 혼내! 가끔은 통화하면서 혼내다가 전화로 혼내니깐 화가 안 풀린다고 영상통화로 바꿔서 다시 걸 때도 있어."

응?


"반성하는 얼굴을 보면서 화내야 화가 풀린다고. 내가 예전에 감자한테 친구랑 놀다가 그 친구 여자친구한테 같이 혼났다고 했었잖아. 그게 그때야. 걔가 맨날 자기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다주는데 우리랑 노느라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영상통화로 같이 혼났어."


시트콤이야...? 왜 너 혼자만 그런 재밌는 일 겪는거야.


황당해서 내가 그게 뭐냐고 웃으니 그는 대만남자들은 그런 광경을 집에서부터 많이 보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그렇게 화내도 크게 기분 나쁘지 않다고, 그냥 반성하는 표정을 짓고 그 순간을 모면한다고 말했다. 나는 나에겐 천사 같은 그의 누나가 가끔 본인의 남자친구에게는 포청천처럼 화내는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어서 그때가 떠올라 더욱 웃겼다.


그러니까 종합하면... 내가 대만인인 그를 만나서 좋은 건 그가 순수한 영혼이라는 것이고, 그가 한국인인 나를 만나 좋았던 건 데이트할 때마다 매번 밥을 먹고 영상통화로 혼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우리가 서로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어서 주는 보편적인 장점이 있다기보다는 국제연애 자체에서 오는 특별함은 있는 것 같다.

제일 큰 장점은 서로의 서투름에서 오는 필연적인 귀여움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가 내 나라의 언어를 쓸 때 실감한다. 그가 구사하는 한국어의 수준이 3살 아이의 수준일 때는 3살 아이가 말하는 것만큼 귀엽고, 10살 어린이의 수준일 때는 또 그만큼 귀엽다. 그가 쓰는 한국어에 예상치 못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다.

한번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지나가듯이 맛은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사장님, 이런 맛이 어디에 있어요?"

사장님께서 그 말뜻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이에 그가 비장하게 다시 말했다. "이런 맛은 이 장소에만 있어요!"

조금 창피해지면서도 귀여웠다. 나는 그가 한국어로 진지하게 무슨 얘기를 할 때 이런 그의 서툰 표현에 뜬금없이 웃겨서 얼굴은 진지하게 듣는 척하면서 속으로 웃음을 꾹 참을 때가 많았다.


나도 대만에서는 내가 외국인이기에 종종 귀여움을 받았다. 그의 가족들과 함께 장을 보러 간 대만의 마트에서 한 코너에 고구마가 한가득이길래 고구마가 정말 많다고 말하자 그의 가족들 모두가 동시에 웃었다. 내가 갸우뚱해서 방금 말한 문장이 틀렸냐고 묻자 그의 부모님께서 문장 자체는 맞지만 그냥 귀엽게 들린다며 웃으셨다.


나는 장녀라 누군가에게 귀여움을 받는 편은 아니었어서 그 말이 너무나 생소했다. 처음에는 민망해서 연신 아니라고만 했지만 어느순간부터는 즐기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귀여움을 받거나, 나로 인해 누군가가 웃게 되는 건 꽤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남자친구나 그의 가족들이 내 말에 뜬금없이 웃음이 터질때 좀 뻔뻔하게 생각했다. 음... 왜지... 나 또 귀여웠나보네....



하루는 내 친구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적이 있었다. 친구가 유리병으로 가둬놓고 뒷처리는 차마 하지 못하고 집에서 뛰쳐나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마침 그때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옆에서 듣더니 가서 치워주겠다고 했다. 대만은 기후 특성상 벌레가 굉장히 많다. 바퀴벌레는 아주 흔해서 대만 사람들은 바퀴벌레를 성가시다고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쓰다 보니 이것도 대만남자의 장점이라고 하면 할 수 있겠다. 남자친구는 벌레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비행능력이 있는 바퀴벌레도 눈하나 깜짝 하지않고 손으로 낚아채 잡는다.)

친구 집에 가는 길에 내가 말했다. "난 웬만한 벌레는 괜찮은데 바선생은 아직도 너무 소름끼쳐."

그러자 남자친구가 갸우뚱했다.

"응? 바선생?"

"응! 바퀴벌레가 바선생이야."

"왜 바선생이라고 불러?"

그러게! 왜인지 나도 궁금해졌다.

"그냥...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 너무 두려운 존재라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다 말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바퀴벌레를 보면 선생님 제발 진정하세요... 이런 마음이라 그런 거 아닐까?"


그러자 남자친구가 갑자기 빵 터져서 웃었다. 도대체 뭐가 재밌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그는 길 한복판에서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었다.

"누가 그런 이유로 바퀴벌레를 선생님이라 불러?!"

"...한국인들이!"


그가 웃는 걸 보며 그게 그렇게까지 웃긴 일인가 싶어 내가 더 신기했지만 어쨌든 그가 저렇게 신나게 웃는다면 엔돌핀도 분비되고 잘된 일이지 싶었다.

희한한 포인트에서 귀여워하고 귀여움 받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웃을 일이 많아지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국제연애의 최대 장점이다.





키위, 샌드위치

밥만 좋아하는 그가 드물게 도시락으로 빵을 싸줬던 날이다. 대만인들은 꼭 매끼니 밥을 먹진 않는다. 국수도 많이 먹고 빵도 끼니로 쳐서 먹는다. 대만에서 아침식사로 제일 유명한 음식중에는 총좌빙이라고 하는 밀가루반죽에 여러 재료를 랩처럼 싼 음식이 있다. 또 대만식 바게트를 두유에 담궈서 먹기도 한다.


하루는 대만에서 아침을 사먹다 의아해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이 정도 양으로 00이 배가 채워졌다고? 10대때는 지금보다 더 먹었을텐데?”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당연히 두개 먹었지! 엄마가 밥값 많이 나온다고 나 진짜 싫어했어!”


역시 그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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