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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원도감자 Sep 06. 2024

프롤로그. 여자친구 도시락 싸주는 남자

 한 끼 식사를 두 그릇부터 시작하는 그는 0.8인분만 먹어도 배불러하는 여자친구를 좋아한다. 자기가 2.2인분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튀김 두 조각이나 밥을 조금 남기면 그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반만 먹고 수저를 내려놓을 때면 말이 달라졌다. 그는 내가 두 조각 남기는 건 좋아해도 반을 남기는 건 싫어했다. 젊을 때 소식하면 나중에 몸이 아프다고 했다.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소식하는 것보다 더 싫어하는 건 내가 끼니를 거르는 것이었는데, 나는 이런 일로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들은 적이 별로 없었어서 좀 신기했다.

우리 집은 맞벌이 가정에 부모님이 바쁘셔서 어릴 적부터 아침을 챙겨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방학 때면 동생들 아침밥을 챙겨 먹인 적은 있어도 나는 안 먹었다.

반면에 대만은 아침식사를 워낙 중요하게 여겨 대학생들이 강의 도중 밥을 먹어도 이해하는 나라이다. 그만큼 아침에 진심인 나라에서 나고 자란 이 남자는 내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걸 걱정스러워했다. 그는 툭하면 내게 대만에는 '저녁은 가난하게, 아침 점심은 부자처럼' 먹어야 된다는 말이 있다며 잔소리를 했다. 이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웃겼던 건 그는 저녁도 엄청 먹는다.


 2020년 하반기, 전염병으로 혼란한 시기에 그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다. 당시에 대부분의 강의가 비대면이었기에 그는 우리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화구가 하나인 좁은 자취방에서 어떻게든 밥을 해 먹느라 둘 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랐었다.

나는 코시국에도 전공특성상 대면 강의가 많아 학교에 계속 나가야 했다. 하루는 아침 일찍 나가는 내게 그가 오늘 점심은 어떻게 먹을 거냐 물었다. 나는 손에 든 프링글스 통을 짜잔 하고 보여주었다. 그는 집 무너진 비버처럼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 왔는데 그가 비장하게 말했다. 점심에 나가 있는 날엔 내가 도시락 싸줄 거니깐 꼭 다 먹고 와!

그렇게 그가 만든 도시락을 얻어먹는 날들이 시작됐다.



포도, 키위, 마라계란조림, 창잉터우

두시콩이 빠진 창잉터우(蒼蠅頭). 파리머리볶음이라는 파격적인 이름의 이 요리에는 다행히도 파리 머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마늘쫑과 돼지고기 그리고 두시콩이라는 작은 콩이 들어가는데 작고 검은 두시콩이 마치 파리의 머리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두시콩 구하기가 힘든데다 마침 내가 콩을 좋아하지 않아 파리머리가 빠진 창잉터우를 먹는다. 계속 퍼먹게 되는 밥도둑 반찬이다.

그는 모든 도시락에 과일 한 가지는 꼭 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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