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잔잔한 마음을 채워주셨던 외할머니, 치매를 앓고 계시는 외할머니
이 글을 발행하기까지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은 화가 가득해 예민해지고 어느 날은 우울감이 가득해 원망이 가득한 글들이 채워졌다.
조금은 담백하게, 감정에만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마음을 담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발행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어렵고 힘들다고 느끼는 마음이
단순한 감정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슷한 경험의 글들을 보고 위로를 많이 받았었는데,
나의 경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공감되는 경험이었기를 글을 쓰며
간절히 바래 본다.
때로 같은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기에...
치매를 앓고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얼마 전 우리집으로 오셨다.
이제는 한 달 남짓 꽤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동안
마음에 여러 번 태풍이 불었고 머릿속에 여러 번 번개가 번쩍였다.
(이렇게 묘사하면 모든 번뇌가 잘 포장이 되려나)

지금도 언제 불어올지 모르는 마음의 변화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물 흐르듯 잘 흘러가기를 바라며
열심히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요앙보호사인 엄마께서 몇 년을 걸쳐 보살피고 계시는 외할머니.
어릴 적 엄마가 바쁠 때마다 나를 보살펴 주셨고,
명절이면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준비해 놓고 맞이해 주셨고,
준비한 용돈을 만날 때마다 쥐어 주셨고,
대학을 들어갈 때는 입학등록금도 보태 주셨고,
내 이름 석 자면 언제나 지금도 여전히
함박웃음으로 맞이해 주시는 외할머니.
아무것도 해드리지 않아도 고마워하시고
무슨 말을 해도 공감해 주시는 외할머니.
항상 작은 일까지도 정성스럽게 나를 위해 걱정을 끊임 없이 하시는 외할머니.
어린 시절부터 아낌없이 받아온 사랑을 생각해 보면
아픈 외할머니를 보살펴 드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치매'를 앓고 계시는 외할머니를,
그리고 보살피는 엄마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은
모든 좋은 추억을 하나하나 지워 버리는 가혹한 처사일 때가 많다.
외할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아 기어서 다니셔야 한다.
좋지 않은 무릎에 조금이라도 큰 움직임을 해야 할 때면
큰 소리로 '아야아야'소리를 지르신다.
목청만 들었을 때는 가끔 젊은 사람보다도
힘이 좋으신 것 같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큰 목청으로 갑자기 노래가 하고 싶으시면
집 바깥 저멀리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시기도 한다.
좋지 않은 무릎으로 화장실로 이동하시기가 힘드시기에
이동식 변기가 놓여진 할머니가 계신 우리집 안방은 화장실 겸 침실이다.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우시기에 실수하시는 화장실 이슈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상치 못한 때에 진동하는 화장실 냄새도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음식을 잘하셨던 예민한 입맛을 갖고 계시기에
식사를 챙겨드리려면 이것저것 간도 잘 맞춰야하고
메뉴 변화에도 엄마가 신경을 계속 써야 한다.
이가 불편하시기에 식사를 하실 때면 아무래도 주변으로 음식물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청소도 이곳저곳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귀가 잘 안 들리시기에 TV를 보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시기도 하고,
대화를 하려면 귀에 대고 가장 큰 소리로 소리를 질러야 할 때도 있다.
잘 들리지가 않는 불편으로 오해를 하실 때도 있지만 무심코 넘어가야 한다.
갑자기 떠오른 옛날 기억으로
좋지 않은 말들을 내뱉으셔도,
없는 일을 지어내셔도
병의 증상이라고 생각하고 참아야 한다.
말씀하시는 것을 좋아하셔서 옛날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었는지
옛날에 얼마나 아들 딸들을, 손자 손녀들을 사랑으로 보살폈었는지
추억이자 무한한 고생담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실 때면
마음을 뒤덮고 있는 불편한 마음이 더 불편해지지만
심심한 외할머니의 넋두리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겨야 한다.
케어하는 엄마를 하루종일 아기처럼 찾는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외할머니도... 그 외할머니를 모시는 엄마도...
바라보는 손녀이자 딸의 입장에서
불편하고 우울한 기분이 몰려드는 것을 애써 물리쳐야 한다.
환자가 아닌 케어하는 엄마보다도
낯빛이 좋아 보이는 외할머니를 보며
편히 음식을 잡수시고 마음 편히 주무시는 모습을
눈을 흘기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이어 외할머니까지 치매라는 질병을 밀접하게 바라보다 보니
다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무서운 마음도 애써 물리쳐야 한다.
친가 외가의 각자의 입장 차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이기에
다 이해가 되면서도 또 이해가 안 가는 복잡한 마음을 참고 넘겨 버려야 한다.
단순하지 않은 이 복잡 미묘한 상황들이 뒤엉켜
마음에 드는 감정도 덩달아 시시때때로 흔들리고 요동치지만
모두가 힘든 상황이기에
홀로 잘 다독이고 인내하고 이겨내야 한다.
예민한 외할머니는 요양원 적응을 어려워 하셨기에 강제로 내보내지시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엄마는 오랜 세월 외할머니를 직접 보살피면서
한 해 한 해 시간을 함께하고 계신다.
그러는 동안 엄마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위가 안 좋아지고, 관절이 약해지고, 무릎 뒤쪽으로 낭종도 찾아왔다.
엄마의 연세가 많아지신 탓도 있겠지만
간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더 와닿는 요즘이다.
가족을 간병한다는 것,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은 어디까지가 최선일까...
90대를 훌쩍 넘기신 외할머니를 케어하고 계시는 엄마가
좀 더 자유로워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부모님이기에 잘 떨쳐내기 어렵겠지만 모든 걸 간병하는 데 쏟아내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본인의 삶도 좀 더 건강하게 즐겁게 살아내셨으면 좋겠다.
이 기간이 얼마나 짧을지 한없이 길어질지 알 수 없기에...
남이 아닌 가족이기에 그 간병을 해내는 과정은
오해와 원망, 사랑과 안쓰러운 연민이 뒤엉켜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서로의 마음에 쌓인다.
모두가 더 힘든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여정을 하루하루 보내시는 외할머니의 마음이 좀 더 평안하기를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이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처 받지 않기를
시간은 열심히 흘러가기에 이 모든 과정이 지혜롭게 흘러가기를 조용히 기도하며
오늘도 모두에게 어려운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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