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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 Nov 30. 2019

나 혼자 웃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나



나는 웃음의 역치가 낮은 편이다. 작은 것에도 까르르 잘 웃고, 누군가와 대화를 주고받을 때도 기본적으로 웃음을 띠는 편이다. 작은 것에도 까르르 잘 웃는다는 것은 작은 것에도 상처를 잘 받고 작은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의미가 함께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모든 오감의 역치가 낮은 편인 것 같다. 대화를 할 때 웃는 것은 아마도 고객응대를 많이 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굳어진 것 같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많이 할수록 웃는 일이 줄어든다. 웃음의 역치가 한참이나 낮은 데도 불구하고 웃을 일이 참 없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웃을 일을 만드는 일이 늘어났다. 웃긴 예능을 본다든지, 귀여운 동물들의 움직임을 찾아본다든지, 웃긴 책이나 일러스트를 본다든지 등등. 나만의 웃음을 잃지 않는 법을 애써 찾는 중이다. 




아침 출근길은 특히나 더 웃음기가 사라진다. 하도 많은 취업준비를 해봐서 아침 출근길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또 막상 출근을 시작하면 그 어색한 아침 공기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오늘도 아침 출근길 조금이나마 생기를 불어넣고자, 평소 좋아하는 예능인 '나 혼자 산다' 재방송을 틀었다. 이 예능을 보면 나는 그렇게 웃음이 난다. 패널들의 소통이나 혼자 사는 일상들이 나의 일상과 비슷하기도 하고, 때로는 허당미로, 때로는 누구에게나 있는 찌질함으로, 때로는 엉뚱한 발상으로 공감을 주고 즐거움을 준다. 오늘도 너무나 즐거운 모습들에 지하철 출근길을 잊을 만큼 방송 내내 웃음꽃이 만발했다. 드디어 내려야 할 역에 거의 도착했다. 오늘은 그나마 즐거운 금요일이었고, 예능으로 예열된 아침 에너지로 오늘도 잘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리려고 준비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큰소리를 쳤다. 


"아침부터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좋다고 웃어!!!!!!!!!! "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싹 사라졌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만 쳐다보며 웃었다. 내가 한 행동이 그렇게 타인에게 기분을 상하게 할 일인가? 내가 좋은 일이 있어서 싱글벙글했던 것이 아니라 나도 웃을 일이 없어서 웃음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짜증을 불러일으킬만한 일인가? 타인과 웃으며 이야기했다면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였고 이어폰도 끼고 있었는데 내가 만만해 보이나? 별 이상한 사람이네 라고 넘기며 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며 하루를 망쳐놨다. 내가 너무 크게 웃었던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혼자만 인지 하지 못했나? 내가 평소에 잘 웃는 것도 남들은 저렇게 생각할까? 웃음이 헤프다고 생각할까? 

회사에 도착하니 왠지 오늘따라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웃는 게 나쁜 것처럼 느껴졌고 하루 종일 웃음끼 없는 얼굴로 그동안의 나의 행동을 곱씹으며 하루를 보냈다. 


나는 원래 감정에 참 예민하다. 누군가 화가 나 있으면 나까지 그 화가 전달되어 기분이 좋지 않고, 누군가 울면 나까지 슬퍼지고, 누군가 웃으면 따라 웃게 되고, 쉽게 감정에 동요된다. 이런 점이 타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감정들이 내 마음에 이입되어 큰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곤함을 주기도 한다. 그런 나에게 타인의 비난은 매우 큰 상처로 다가온다. 이제는 그런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지만, 이게 완벽하게 상처를 안 받기는 참 어렵다. 

그 아저씨는 무언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어서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언짢았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꼭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전달해야 했을까. 그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한마디였겠지만, 나는 하루 종일 감정이 상한 채로 힘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단 몇 초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몇 시간의 스트레스로 전달되었다. 


나도 물론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가 있을 것이다. 오늘처럼 기분이 푹 꺼진 나는 아마 표정으로 다른 이에게 불쾌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워낙 감정에 예민한 탓에 타인에게 마음 상하지 않게 표현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런 호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수롭지 않게 막 대한다든가, 대수롭지 않게 자기 할 말을 막 한다든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놓는다든가. 나는 그렇게 하려고 해도 그렇게 쏟아놓고 나서 또 타인의 감정이 어떨지 전전긍긍하느라 스트레스받을 것을 알기에 잘 못하는데 타인들은 잘만 하더라. 그렇게 타인에게 상처 받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제는 쉽게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으려고 한다. 쉽게 웃지 않으려고 웃음을 많이 넣어두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웃을 일이 너무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누구나 깊은 수렁에 빠져보거나 오래 병마와 싸워보면 똑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런데 경험하지 않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볼 수는 없을까.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기 이전에 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을지 한 번은 생각해보고 내뱉을 수는 없을까. 성인이라면 이 정도의 생각은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실수는 할 수 있지만 매번 실수만 한다면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처벌받아야 할 나쁜 것이지 않을까. 감정은 누구나 소중하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지 우울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고운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가는 말이 곱다고 우습게 보고 아무 말이나 쏟아내는 세상이 아니라.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차가운 세상이 아니라 타인에게 사랑과 따뜻함을 줄 수 있는 훈훈한 사회가 되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치부해야 할까? 


잔뜩 감정에 얽매여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집으로 돌아와 나의 힐링푸드 배달 떡볶이를 시켰다. 역시 스트레스에는 매운 떡볶이지. 오늘도 나의 힐링 방법으로 하루를 달래 본다. 



'그래, 잘 버텼다!!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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