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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용준 Aug 10. 2021

'모가디슈' 실화와 허구의 균형감각

'모가디슈'는 실화를 영화화했지만 실화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1980년대 한국은 UN 가입 승인을 받지 못한 국가였다.’ 도입부 자막의 설명으로 시작하는 <모가디슈>는 역사적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다. UN 가입국이 되기 위해 가장 많은 투표권을 가진 아프리카 국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로비가 본격화되고 1987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도 처음 외교관이 파견된다. 그리고 <모가디슈>의 주배경이 되는 1991년은 소말리아 내부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이 극심한 내전으로 번진 해였다.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22년간 독재를 이어오던 시아드 바레 대통령에게 반기를 반군 세력 USC(통일소말리아회의)이 수도 모가디슈까지 입성하며 각국의 대사관마저 약탈의 대상이 되고 남한과 북한 대사관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영화 <모가디슈>에서는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자막이 등장하진 않지만 도입부 설명처럼 실제로 벌어진 당대의 역사적 사건을 스크린에 재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1991년 당시 방송사 뉴스나 신문에서도 비중 있게 보도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던 ‘남북 합동 탈출 작전’은 88 서울올림픽 이후로 국제 사회에서 남북 간의 대결 구도가 더욱 첨예해진 당대의 시대상을 염두에 뒀을 때 예나 지금이나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전하는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야말로 영화보다도 영화 같았던 사건이 비로소 영화화된 것이다. 

<모가디슈>는 <베를린>과 <군함도> 이후로 지역명을 제목으로 내건 류승완 감독의 세 번째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모가디슈라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제시되는 영화이기도 한데 소말리아의 지난한 내부 정세와 복잡한 국제 정세가 뒤엉킨 가운데 UN 가입을 위해 한국 정부와 북한 정부가 이국에서 펼치는 첩보전 무대가 된다는 점에서는 <베를린>과 유사하지만 영화의 제목으로 활용된 지역 자체가 병풍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을 넘어 메인 캐릭터에 가까운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군함도>를 연상시킨다. 각각의 작품에 걸린 평가를 떠나 <베를린>이나 <군함도>와 마찬가지로 <모가디슈> 역시 시대적 이데올로기로 분열하고 충돌하는 한민족의 아이러니를 주된 테마로 내세울 수 있는 영토의 영화인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는 <모가디슈>가 그리는 재난 탈출 영화라는 장르적 외피에 이질적인 개성을 부여한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 집중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말처럼 <모가디슈>는 재난과 탈출이라는 장르적 풍경과 행위의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에 역점을 둔 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서로를 경계하던 남북 대사관 직원들과 관계자 가족들이 이국에서의 생존을 위해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어서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제시된다. 지구 반대편의 먼 이국에서도 유효한 남북의 장벽은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도 공고하다. 생명을 위협하는 물리적 환경 안에서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체제의 알력이 생명을 위협하는 실질적 공포를 압도하는 심리를 함께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정황을 묘사하는 과정에서는 실화를 온전히 반영하지 않은 영화적 선택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동시대 남북 관계의 거리감을 반영한 설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 사건을 재현한 영화에서는 남북 대사관의 일원들이 함께 탈출하게 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부각되는데 해당 사건을 보도한 당시 기사에서 인용한 남한의 강신성 대사의 말에 따르면 공항에서 마땅한 탈출 방안을 찾지 못하고 머물던 북한 대사관 일행 14명을 위로하며 함께 탈출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한 뒤 자국 공관으로 함께 귀환했다고 한다. <모가디슈>는 이런 진술과 달리 반군에 의해 약탈당한 대사관을 버리고 피신한 북한 대사관 일행이 남한 대사관으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을 그린다. 전형적인 갈등 양상을 묘사한 것이다.

이는 극후반부의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적 선택으로 보인다. 서로 대립하던 존재들 간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먼저 제시하고 이념적 대립을 극복한 구성원들이 한 덩어리가 돼서 극렬한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풍경의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킨다는 서사적 전략이 엿보인다. 그 과정에서 사실과 허구를 교차 편집하듯 짝패를 이루는 캐릭터를 구성한 모양새다.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빌린 남한 대사 한신성(김윤석)과 북한 대사 림용수(허준호)가 사실성을 대변하기 위해 재현된 캐릭터라면 실존하지 않았던 남한 참사관 강대진(조인성)과 북한 참사관 태준기(구교환)는 허구를 강화하기 위해 고안한 캐릭터일 것이다. 


강대진과 태준기는 가장 첨예한 갈등을 드러내는 캐릭터로 남북한의 이념적 대립을 온전히 대행하는 역할처럼 보인다. 심지어 두 인물의 격투 신은 극적 흐름 안에서 하나의 볼거리를 이루긴 하지만 맥락 안에서 보자면 다소 낭비적인 측면도 있는데 두 인물의 극렬한 갈등과 충돌이 묘사되는 양상은 한편으로 남북 이데올로기 갈등을 부각해 극적인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상업영화적 선택으로 보인다. 동시에 소말리아 내전 상황의 위협에 갇힌 남한과 북한의 이방인들 사이에서 불거진 내부의 충돌은 직선주로에 놓인 이야기 구조를 좀 더 입체적인 비선형 구조의 감정선으로 층위를 쌓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란 시간을 버는 것이다.


모가디슈까지 입성한 반군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도시의 풍경 속에서 분위기는 고조된다. <모가디슈>의 본격적인 서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전까지의 과정은 그 순간에 다다르고자 시간을 효과적으로 유예하는 방편처럼 느껴진다. 실화와 달리 남북 간의 갈등을 삽입하는 것도 그러한 방편 중 하나였을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갈등 구도는 극후반부의 클라이맥스를 끌어올리는 데에도 일정 부분 감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의도가 읽혀서 종종 평면적으로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화와 허구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면서도 나름의 균형감각으로 이야기는 거듭 전진하는 인상이다. 


한편으로는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과 북으로 반목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타고난 이들이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돌린 등을 마주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동시대 역사의 아이러니를 체감하게 만든다. 냉전시대의 해묵은 이데올로기가 21세기에도 선명한 한반도에서 1991년의 모가디슈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의 역사로 소환되는 것이다. <모가디슈>가 20세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실제 정서를 비틀어서라도 동시대 온도를 반영하고자 한 영화처럼 보이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짙은 애수를 남기는 결말부의 여운은 어쩌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남북문제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짓눌리고 가려진 개개인의 연대와 교감이라는 가능성을 향한 바람처럼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가디슈>의 하이라이트이자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후반부의 카체이싱 신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라는 인장을 찍는 명장면이다. 남북 대사관 직원들이 나눠 탄 네 대의 차가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반군과 정부군을 차례로 맞닥뜨리며 생사의 고비를 넘는 장면의 박진감은 지금까지 한국영화 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로코 현지에서 100% 로케이션 촬영을 마친 만큼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기도 하지만 현지의 열악한 사정을 극복하는 것도 촬영의 관건이었다. 특히 시속 30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없었던 현지의 구형 차량으로 속도감 있는 카체이싱 신을 연출하기 위해 역동적인 카메라 쇼트를 구상하고 편집에 공을 들이는 동시에 그에 어울리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만들어내기 위한 사운드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총알을 막기 위해 책과 모래주머니를 잔뜩 붙이고 매단 차량 외관은 현실적인 긴장감이 생생하게 반영된 동시에 영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독창적인 미장센으로 회자될 그림이다.


소재 자체만 보자면 벤 애플렉의 <아르고>가, 각각 남한과 북한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우정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가, 지옥도 같은 이국을 탈출하는 카체이싱 신에서는 <매드맥스>가, 서로 다른 이념으로 대립하는 인물들이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게 된다는 면에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스파이 브릿지>가 떠오르는 영화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는 앞서 나열한 영화들을 연상시킬 뿐, 아류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모가디슈>는 류승완 감독의 새로운 성취이자 전환점이라 해도 좋을 작품처럼 보인다. 전작 <군함도>의 실패를 만회하며 새로운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해외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된 200억 규모의 상업영화는 그 자체로 만만한 도전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가디슈>가 보여준 균형감각은 대작을 지향하는 한국 상업영화가 참고할 또 하나의 사례처럼 보인다. 분명한 성취다.


('예스24'에서 운영하는 패션 웹진 <스냅>에 연재하는 칼럼을 재편집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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